넘치는 글로벌 유동성으로 안전·위험자산을 가리지 않고 전방위적으로 자산가격이 오르는 가운데 올해 금과 ‘성장주’의 상승률이 다른 자산들을 압도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대응을 위해 공격적인 금리 인하가 단행되며 안전자산인 국채의 투자 수익률이 위험자산인 주식을 앞서는 기현상도 벌어졌다. 자산배분 전문가들은 코로나19가 주춤한 가운데 앞으로 초저금리 환경에서 점진적인 경기회복이 이뤄지면 더 이상 국채 랠리가 이어지기 힘들기 때문에 금과 주식의 비중을 확대하는 것이 낫다는 분석을 내놓았다.
29일 삼성자산운용과 블룸버그에 따르면 올 들어 지난 27일까지 각 자산군 가운데 최고 수익률을 낸 것은 금이었다. 뉴욕상업거래소(NYMEX)에서 거래되는 금 선물 근월물 종가 기준으로 이 기간에 25.78%가 올랐다. 그 뒤를 선전종합지수(24.5%)와 코스닥지수(19.63%), 나스닥지수(18.04%)가 이었다. 중국에서 기술주들이 주로 상장된 선전증시의 급등과 ‘팔스닥’ ‘만스닥’이라는 별명이 붙을 정도인 코스닥과 나스닥의 인기는 성장주 쏠림으로 해석된다.
그러나 전체 주식시장은 채권시장에 뒤지는 성적을 거뒀다. 미국 국채 대표지수 격인 바클레이스미국국채지수의 경우 올 들어 9.48%의 수익률을 기록했다. 또 바클레이스회사채지수도 같은 기간 8.06%의 수익을 냈다. 이는 미국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500지수의 연초 대비 상승률 1.36%를 크게 앞서는 수치다. S&P500지수는 올 3월 저점 이후 46.8%나 급등했음에도 코로나19 이전 상황을 회복한 수준이다.
한국도 마찬가지였다. 한국 국공채 역시 KIS국공채종합지수 기준으로 3.31% 올라 올 들어 1.2% 상승에 그친 코스피지수의 수익률을 웃돌았다.
요컨대 올 3월 코로나19의 충격으로 미국·중국·한국 증시 등이 폭락한 후 ‘V자’ 반등 궤적을 그리며 거의 연초 수준으로 돌아왔으며 그 사이 안전자산인 채권이 초강세 랠리를 펼친 셈이다.
특히 4월 이후에는 안전·위험자산 가릴 것 없이 동반 상승하는 상황도 이례적이다. 이상원 삼성자산운용 리서치팀장은 “금리가 떨어지면서 장기국채의 몸값이 뛰었다”며 “이와 함께 주식 같은 위험자산에 대한 요구수익률도 낮아졌으며, 특히 미래 이익에 대한 기대가 큰 성장주 밸류에이션 부담도 낮아졌다”고 설명했다.
유동성 장세에서 부진을 면치 못하는 자산도 있다. 하이일드채권, 신흥국 및 유럽 등 선진국 증시는 여전히 연초 수준을 회복하지 못하고 있다. 중국증시는 연초 대비 플러스를 기록 중이지만 베트남(-17.58%), 인도(-7.25%) 등은 반등세가 약했다. 특히 미국의 전통산업이 주로 포진한 다우존스지수는 연초 대비 -5.6%의 부진한 성적을 내고 있다. 또 실물경기를 그대로 반영하는 상업용 부동산과 유가는 자산군 중에서 꼴찌 수익률을 기록했다.
전문가들은 앞으로 채권의 추가 랠리가 힘들 것으로 예상하는 반면 금과 주식의 상대적인 매력도는 계속 부각될 것이라는 전망을 내놓았다. 골드만삭스는 최근 향후 12개월 내 금값 예상치를 온스당 2,000달러에서 2,300달러로 상향 조정했다. 낮은 실질금리와 여전히 불안한 경기는 투자자들이 금으로 더 몰리는 요인이라는 분석이다.
주식도 여전히 성장주 중심의 강세가 이어질 것으로 전망된다. 다만 경기가 하반기에 점진적으로 개선되면 경기회복의 혜택을 더 크게 보는 성장주들이 부각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유승민 삼성증권 글로벌투자전략팀장은 “실질금리가 낮게 유지될 것으로 전망돼 채권 가격이 하락하지는 않겠지만 추가 상승도 힘들다”며 “반면 대체 투자처를 찾기 힘든 만큼 주식의 상대 매력도는 여전한 가운데 경기방어적 성격이 강했던 ‘언택트’ 기업보다는 반도체·전기차 등 경기에 민감한 성장주에 대한 관심이 커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한편 상업용 부동산 시장이나 유가 등 실물경기와 밀접한 자산군에 대한 전망은 아직 밝지 않다. 또 무역과 원자재 비중이 높은 신흥국 증시 역시 달러 약세의 온기가 퍼지기에는 경기회복 속도가 빠르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강대진 한화운용 글로벌운용팀장은 “개별 자산군 비중을 리밸런싱할 정도의 경기변화는 아직 감지되지 않는다”며 “국채에서 회사채로 비중을 조절하는 등 지금까지 랠리를 펼친 자산군 내에서 좀 더 수익률이 높은 쪽으로 포트폴리오 조정이 필요한 정도”라고 말했다.
/이혜진기자 hasim@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