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비냐 노비냐…소송으로 본 조선시대 신분전쟁

■ 나는 선비로소이다·나는 노비로소이다
임상혁 지음, 역사비평사 펴냄


조선시대에도 현재와 마찬가지로 각종 소송이 끊이질 않았다. 특히, 노비 관련 소송이 많아서 조선 전기에는 임금이 넌더리를 낼 정도였다고 한다. 신분제 사회 조선에서 노비는 재산으로 취급됐고, 명문가의 경우 노비를 얼마나 거느리고 있는지에 따라 부의 척도를 가늠했다. 반대로 노비는 평생 상전에게 신역을 바쳐야만 하는 신세로 벗어나고 싶은 신분의 굴레이자 멍에였다.

실제 사건을 중심으로 조선시대 법과 소송을 다룬 책 2권이 나왔다. 두 책은 모두 조선시대 신분확인 소송이라는 민사소송을 주제로 한다. ‘나는 선비로소이다’는 조선 중기 실존인물인 유학자 송익필이 노비소송에 휘말리는 과정을 주요 소재로 삼아 조선의 법 제도와 정치에 대해 서술한다. 조선 최고의 유학자 반열에 올랐던 송익필이 어떻게 노비 신분으로 떨어지게 됐는지를 당시의 정치적 상황과 연계해 설명하고 있다.


송익필은 예학(禮學)의 대가이자 최고 유학자로 사림의 추앙을 받았으나 소송에 휘말려 노비 신분으로 추락한 비운의 인물이다. 송익필과 그의 집안을 노비로 만든 사건은 1585년(선조 18) 안씨 집안이 송씨 일가가 자기네 노비라고 주장하는 소장을 제출하면서 시작된다. 송익필의 할머니는 감정이라는 이름의 여인으로, 안돈후의 비첩인 중금의 자식이었다. 조선 신분제에선 부모 중 한 사람이 노비이면 그 자녀는 노비이므로 감정도 노비 신분을 갖고 태어났다. 소송은 안씨들이 주장하듯 감정이 자기네 노비 신분으로 태어났으므로 후손인 송씨들도 노비인지를 쟁점으로 다루고 있다.

이 소송은 1521년 신사무옥으로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송익필의 아버지 송사련의 고발로 안돈후의 아들 안당은 교수형에, 안당의 두 아들은 능지처참에 처해졌다. 송사련은 이 사건 이후 당상관에 오르며 30년간 득세했다. 이를 계기로 안씨는 송씨 집안을 불구대천지원수로 여겨 복수를 준비한다. 책은 두 집안 간 판결문 ‘안가노안’을 통해 당시의 법과 정치를 읽고, 법과 법리 적용의 타당성을 묻고 있다. 1만8,000원.


‘나는 선비로소이다’가 조선시대 법과 소송에 대한 심화학습이라면 노비제 사회 문제를 다룬 ‘나는 노비로소이다’는 전통시대의 법과 소송에 대한 입문서적 성격이다. 다물사리라는 여인과 이지도라는 남자가 벌이는 소송을 소재로 조선시대 신분제도, 소송절차, 법 제도에 대해 설명한다. 조선시대 대부분의 소송은 자기가 노비가 아니라고 주장하면서 벌어지는데, 이 사건은 자신을 노비라고 주장하는 데에서 시작된다. 10년 전 나온 이 책은 후속작인 ‘나는 선비로소이다’가 나오면서 재출간됐다.

조선시대 판결서는 소를 제기하는 소지, 원고와 피고의 최초 진술, 소송 당사자들의 사실 주장과 제출된 증거, 판결 등 재판의 전 과정이 기록돼 있다. 실존 인물들의 사건을 중심으로 증거조사와 신문을 통해 밝혀나가는 이야기는 한 편의 추리소설과도 같다. 1만6,000원.
/최성욱기자 secret@sedaily.com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