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성노조의 임금교섭 장기화에 지친 계열사 직원들이 복수노조를 만들어 성과급 선지급에 합의했다. 강성노조의 무작정 버티기식 임금협상에 직원들이 반기를 든 셈이다.
현대중공업그룹 역사상 처음으로 복수노조를 설립한 현대로보틱스가 2019년 성과급 선지급에 합의했다. ‘4사 1노조’의 굴레에서 벗어나며 계열사 중 ‘나홀로’ 교섭에 속도를 내고 있는 것이다. 이에 교섭 피로도가 누적된 현대건설기계·현대일렉트릭 등 다른 계열사의 복수노조 설립 움직임도 가시화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30일 업계에 따르면 현대로보틱스 신(新)노조는 조합원 과반을 확보하며 지난 24일 대표 노조 지위를 얻었다. 신노조는 27일 사측과 사전에 논의한 기준대로 성과급 지급을 요청했고 사측은 이날 지급을 완료했다. 현대로보틱스의 한 직원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과 임단협 장기화로 가계 운영에 어려움이 많았는데 성과급이 단비처럼 지급됐다”고 말했다.
현대중공업그룹의 다른 계열사들은 기존 ‘4사 1노조’ 체계 때문에 지난해 임금협상이 지지부진한 상황이다. 당초 현대중공업이 4사로 분할된 후 노조가 1개 노조를 유지하면서 현대일렉트릭·현대건설기계·현대로보틱스 조합원 모두 현대중공업 노조 조합원으로 남았다. 이 때문에 전체 사업장 협상이 끝날 때까지 조합원들이 기다려야 하는 일이 반복되고 있다. 임금교섭 정체가 수년째 반복되다 보니 조합원들의 불만이 쌓였고 현대로보틱스는 새 노조를 설립해 복수노조 체계를 구축했다. 현재 현대로보틱스 옛노조에 남은 5명을 제외한 120여명의 조합원들은 모두 신노조로 옮긴 것으로 알려졌다.
현대중공업의 2019년 임금협상은 임금과 관계없는 현안해결을 노조가 주장하며 공회전하고 있다. 노조가 주장하는 현안은 지난해 물적분할 임시주총 과정에서 일어난 폭력행위 해고자 4명의 복직, 불법행위 조합원 1,415명에 대한 징계 철회, 30억원 상당의 손해배상 소송 중단 등이다. 사측은 불법행위에 대한 ‘면죄부’는 없지만 현실성 있는 절충안을 제시하며 노조 집행부에 출구도 열어줬지만 노조가 이를 거부했다.
현대중공업 노조 집행부가 강경노선을 고집하고, 새 노조를 설립한 현대로보틱스는 협상 진전을 이루면서 내부갈등 양상도 생기고 있다. 현안 문제로 교섭이 지지부진하자 현안과 임금협상을 분리해서 봐야 한다는 조합원들의 불만이 커지고 있는 것이다. 일각에서는 현대건설기계와 현대일렉트릭도 현대로보틱스에 이어 복수노조를 설립해 현대중공업 노조의 ‘한지붕 네가족’ 체제가 무너질 수 있다는 전망도 내놓고 있다. 현대중공업그룹의 한 조합원은 “복수노조가 답이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상대적 박탈감이 든다”고 말했다.
/한동희기자 dwise@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