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진권 국회도서관장이 3일 서울경제와 인터뷰하고 있다. 현 관장은 “재정을 풀어 고용을 늘리는 것은 일자리 정책이라기보다는 복지 정책”이라며 “정부 개입을 최소화하면 얼마든지 민간에서 좋은 일자리가 만들어진다”고 강조했다./권욱기자
정부가 재정지출을 확대하면서 재정 건전성 악화 우려가 나온다. 한국경제연구원은 최근 내놓은 ‘국가채무의 국제비교와 적정 수준 보고서’에서 “국제통화기금(IMF)이 권고하는 국제기준을 적용할 경우 2018년 우리나라 국내총생산(GDP) 대비 국가채무비율이 106.5%에 이르렀다”고 밝혔다. 중앙·지방정부 부채(D1) 비율은 35.9%에 그친다. 하지만 여기에 공공기관 부채를 더한 D2와 공공기관 외에 공기업 부채를 더한 D3를 넘어 공무원·군인연금 충당부채까지 포함한 D4까지 집계할 경우 국가채무비율은 100%를 훌쩍 넘는다는 분석이다. 현 정부가 일자리 정부를 표방했는데도 고용사정은 더 나빠지고 있다. 지난 6월 실업자(122만8,000명)와 실업률(4.3%) 모두 같은 달 기준 통계 작성 이후 최고치였다. 15~29세 청년 실업률은 10.3%로 치솟았다. 한국재정학회장을 지낸 현진권 국회도서관장을 3일 만나 재정·일자리 문제의 해법과 국회도서관의 입법 지원 활동 등에 대해 들어봤다. 현 관장은 “재정지출이 과하다는 지적에 정부가 귀를 기울일 필요가 있다”며 “속도 조절과 함께 적재적소에 배분하고 있는지 등을 더 고민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현 관장은 이어 “재정을 풀어 고용을 늘리는 것은 일자리라기보다는 복지 성격이 강하다”며 “정부 개입을 최소화하면 얼마든지 민간에서 좋은 일자리가 만들어진다”고 지적했다. 그는 “민간 경제를 활성화하기 위해 가장 중요한 것은 의욕을 꺾지 않는 것”이라며 “간섭하고 제약하면 안 되고, 북돋아줘야 하는데 그렇지 않다면 가만두는 게 최고”라고 강조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 대응을 이유로 재정을 쏟아부으면서 국가채무비율 상승을 둘러싼 논란이 벌어지고 있다.
△국가 재정은 정부의 가장 중요한 역할로 볼 수 있다. 케인지언 경제학에서 얘기했듯이 국가가 어려운 시기에 처했을 때 균형예산에 집착하는 것보다 적자예산을 편성하는 게 경제적 어려움을 해결할 수 있는 중요한 정책수단이라고 할 수 있다. 때에 따라서 적자재정을 펴고, 경제가 좋을 때는 인플레이션이 발생할 수 있기 때문에 조금 덜 하는 게 낫다. 코로나19 위기는 역사적으로 봤을 때 제1·2차 세계대전과 같은 의미다. 총으로 싸움만 안 할 뿐이지 전 세계의 파급 효과를 보면 제2차 대전에 못 미친다고 할 수 없는 상황이다. 그렇기 때문에 정부 역할이 커질 수밖에 없다.
-그렇더라도 재정 확대가 과하다는 지적이 많다.
△정부의 역할이 커질 수밖에 없는데, 문제는 정부가 개입을 어느 정도로 하느냐다. 이번에 정부가 국민들에게 재난지원금 같은 것을 준 것은 대한민국 역사상 전례가 없는 일이다. 정부가 모든 국민에게 이런 지원금을 나눠주는 것은 아마 5,000년 역사에서 처음일 것이다. 하지만 돈이라는 것은 항상 조심하자는 말을 많이 하면 할수록 좋은 것이다. 그래서 재정집행도 언제나 조심스럽게 접근해야 한다. 다시 말해 비용에 비해 효과가 제대로 있느냐 하는 부분을 항상 염두에 둬야 한다는 것이다. 외부 전문가들이 재정을 조심해서 아껴 쓰자고 주장하는 것을 정부는 새겨들을 필요가 있다. 국민의 세금을 쓰는 것에 대해 잔소리를 할 수밖에 없고, 정부도 부정적으로 들을 이유가 없다.
-재정준칙 법제화와 재정건전화법 제정 등을 서둘러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오는데.
△재정에 수반되는 모든 비용은 전부 국민의 세금이다. 혈세를 아껴 쓰자는 것은 어쩌면 원론적인 이야기이다. 원론적 이야기를 항상 되새기면서 재정을 집행하는 것이 장기적 관점에서 나은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 특정 단계의 재정적자 수준이 타당한가, 타당하지 않는가 하는 점에 대해서는 나중에 시간이 지나고 데이터가 모였을 때 판단이 가능할 것이다. 정부 입장에서는 때에 따라서 재정지출이 과도하다는 전문가들의 지적이 섭섭할 수 있다. 그렇더라도 현시점에서 재정을 아껴 쓰고 효과를 끌어올리자는 차원에서 접근하는 것이 국가 자원의 효율성을 높이고 낭비를 막기 위해 바람직하다.
-속도 조절이 필요하다는 말인가.
△그렇다. 코로나19 위기 상황인 지금은 돈을 써야 할 시기인 것은 맞다. 하지만 재정지출이 과하다는 지적에도 귀를 기울일 필요가 있다. 이를 고깝게 듣지 말고 새겨서 속도 조절을 하고 적재적소에 배분할 수 있을지 등을 더 고민해야 한다. 추상적이지만 돈을 아껴 쓰자는 것은 어느 시기에도 적용될 수 있다. 국민 세금이기 때문에 한 푼이라도 아껴 써야 하는 것은 언제라도, 어떤 상황에서도 당연한 일이기 때문이다.
-6월 기준 실업률이 통계 작성 이후 최고일 정도로 일자리 문제가 심각하다.
△일자리는 민간에서 나와야 한다. 정부에서 재정을 풀어 고용을 늘린다는 것은 일자리 정책이라기보다는 복지 정책이라고 얘기하는 게 맞을 것 같다. 물론 실업이 심각한 시기에 정부가 재정을 통해 일자리를 만들어야 하는 어려움도 있다. 일자리는 기본적으로 민간에서 부가가치가 창출된 일부를 고용으로 전환함으로써 나오는 것이다. 일자리를 많이 만든다는 것은 민간 경제가 활성화된다는 것과 같은 말이다. 민간 경제 활성화를 위해 가장 중요한 것은 의욕을 꺾지 않아야 한다는 것이다. 기업도 인간과 같이 지금보다 좀 더 많은 돈을 벌려고 하는 본능이 있다. 그래서 가만히 두면 좀 더 자기가 가지고 있는 지식과 정보 내에서, 쉽게 얘기해 돈 많이 버는 활동을 할 수밖에 없는 본능을 갖고 있다.
-정부는 어떤 역할을 해야 하는가.
△민간, 즉 기업이 열심히 경제활동을 하려는 본능을 절대 꺾지 말아야 한다. 간섭하거나 제약하면 안 되고 오히려 북돋아줘야 한다. 그렇지 않는다면 가만두는 게 최고다. 마음대로 하도록 말이다. 지금 정부가 그런 측면에서 제대로 하고 있는지 한번 평가해볼 필요가 있다. 대통령도 일자리를 가장 큰 목표로 얘기했지만 정부가 예산 투입을 많이 한다고 해서 일자리가 창출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기업이 더 열심히 일할 수 있는 그런 환경을 만들어주고, 때에 따라서는 예산을 지원해줘 기업 활동에 필요한 마중물 역할을 해주는 것도 중요하다. 결론적으로 민간이 마음껏 경제활동을 할 수 있는 환경만 조성해주면, 다시 말해 개입을 최소화하면 얼마든지 좋은 일자리도 만들어지고 경제 전반에도 활력을 불어넣을 수 있다.
-정치가 경제의 발목을 잡아서는 안 된다고 얘기했는데 무슨 뜻인가.
△정치가 과열됐다는 것은 대부분의 국민들이 공유하고 있는 사실이다. 문제는 그 수준이 어느 정도냐 하는 것이다. 정치의 궁극적인 목표는 국민들이 잘살게 하는 것이기 때문에 국민들의 경제활동에 장애요인이 되지 말아야 한다. 지금 우리나라 현상을 보면 과거에 비해 정치가 경제활동을 하는 데 걸림돌이 되고 있다는 지적이 많다. 그런 부분은 정보·지식을 바탕으로 해서 현실에 대한 정확한 파악이 되면 얼마든지 해소될 수 있다. 하지만 지금은 기업을 포함한 국민들과 정치인들 사이에 정보·지식이 공유되지 않기 때문에 부정적 요소만 부각되는 면이 있다.
-여기에 국회도서관이 기여할 수 있는 부분이 있는가.
△경제학에서 한 국가의 경제발전은 인적자본의 수준에 의해 결정된다는 이론이 있다. 인적자본이라는 것은 결국 국민의 지식·문화 수준으로 바꿔 말할 수 있다. 이는 국회도서관의 기능과 직접적인 연관을 갖고 있다. 가장 중요한 인적자본은 국회의원들이다. 의원들의 지적 수준을 높인다면 좀 더 나은 정책을 개발할 수 있을 것이다. 이렇게 되면 정치가 국민들의 경제활동을 제약하는 경우가 줄어들 수 있다. 가장 위험한 정책이 감성적으로 접근하는 것이다. 누구나 들었을 때 감성적인, 기분 좋은 방향으로 하게 되면 그 법이 일시적으로는 좋은 법같이 보이지만 장기적으로 보면 국민들에게 해를 끼칠 수밖에 없다. 그래서 정보나 전문지식을 지원해주는 게 필요한데, 국회도서관이 이를 도와준다.
-국회도서관의 구체적인 기능을 소개한다면.
△법은 전 국민을 대상으로 진행되기 때문에 입법 방향을 제대로 설정하지 않으면 국민이 피해자가 된다. 의원들이 정교하게 입법하기 위해서는 해외에서 어떤 효과를 낳았는지 등을 면밀하게 조사하고 합리적으로 분석해야 한다. 특히 분석과 자료수집이 바탕이 돼야 좋은 정책을 만들 수 있다. 이런 정보를 제공하는 게 국회도서관의 주요 역할이다. 정확하고 빠른 입법활동 지원을 위해 국회도서관의 디지털화를 추진하고 있다. 5개년 계획으로, 올해부터 매년 150억원의 예산을 투입해 보유 중인 690만권의 서적을 디지털화할 예정이다. 빅데이터 시대에 맞춰 인공지능(AI)을 접목할 계획이다. 의원들의 관심 분야가 각각 다르기 때문에 AI가 판단해 맞춤형 정보를 의원들에게 제공하는 것이다. 일종의 ‘AI 비서관’이라 할 수 있는데 이르면 올해 말부터 그런 기능이 가능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일반 국민을 위한 서비스도 중요할 텐데.
△지금은 정보기술(IT) 시대로 스마트폰을 이용해 정보를 찾는다. 따라서 국회도서관도 전자도서관 중심으로 하고 있다. 집에서 얼마든지 정보를 얻을 수 있고 때에 따라 파일로 받을 수 있는 정보체계를 쌓아놓고 있다. 다양한 정보를 집에서 전자시스템을 통해 받을 수 있으면 더할 나위 없을 것이다. 하지만 책이나 정보는 저작권 문제를 발생시킨다. 법·제도적으로 풀어야 할 과제다.
/임석훈논설위원 shim@sedaily.com
1959년 부산에서 태어나 연세대 공대를 졸업하고 미국 노스캐롤라이나대에서 지역계획학 석사학위, 카네기멜런대에서 정책분석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한국조세재정연구원 연구위원과 아주대 경제학과 교수를 지냈다. 한국재정학회 회장과 자유경제원 원장으로 일했다. 지난해 12월 제22대 국회도서관 관장에 취임했다. 저서로는 ‘포퓰리즘의 덫’ ‘복지논쟁:무엇이 문제이고 어디로 가야 하나’ ‘사회통합의 새로운 패러다임’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