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의 파운드리 전경. 삼성은 파운드리와 팹리스 간에 미약한 협업 생태계를 강화하는데 힘을 쏟고 있다. /사진제공=삼성전자
‘퓨리오사AI’는 인공지능(AI) 반도체 설계(팹리스) 스타트업이다. 현재 30명가량 되는 석·박사급 연구원들이 자율주행차나 데이터센터 내 AI에 적용되는 고성능 칩을 개발하고 있다. AI칩은 아직 뚜렷한 글로벌 강자가 없다. 이제 막 커지는 시장이라 그래픽처리장치(GPU) 최강자 엔비디아·AMD를 비롯해 ‘칩질라’로 불리는 인텔, 반도체 설계자산(IP) 업체 암(ARM), ‘특허괴물’ 퀄컴 등 기존 강자와 신흥기업들이 뒤섞여 경쟁 중이다. 그런데 퓨리오사AI는 지난해 글로벌 기업이 대거 참여한 성능 테스트(MLPerf)에서 뛰어난 성적을 냈다. 스타트업 3곳을 포함해 총 9곳이 기준을 통과했는데 퓨리오사AI도 이름을 올렸다. 그 결과 지난해 말 1,000억원 미만 기업가치로 평가됐던 회사는 7개월이 지난 현재 그 이상의 몸값으로 수백억원이 넘는 규모로 시리즈B 투자유치를 시작했다.설립 4년 차인 퓨리오사AI의 활약은 메모리 중심으로 자란 국내 반도체 생태계에는 고무적인 소식이다. 설계 등 비메모리에서도 역량을 갖춘 스타트업들이 하나둘 등장하고 있음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삼성전자(005930)의 파운드리·팹리스 협력 생태계 강화 노력, 4차 산업혁명과 맞물린 정부 차원의 시스템반도체 육성 방안 등이 차츰 성과를 내고 있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반도체 설계 플랫폼 업체 세미파이브도 주목받는 기린아다. 지난 7월 300억원이 넘는 투자를 이끌어낸 이 회사는 ARM의 대척점에 있는 ‘리스크파이브(RISC-V)’라는 오픈소스 기술을 응용해 낮은 비용으로 반도체 설계를 하도록 도와준다. 지난해 설립된 신생기업이지만 시장에서 평가하는 가치는 1,000억원을 훌쩍 넘는다. 최근 ARM이 중소벤처기업부와 IP를 국내 스타트업에 무료로 개방하기로 협약을 맺은 것도 세미파이브와 같은 기업의 성장 때문이다.
파두(Fadu) 역시 낸드플래시 기반의 저장장치인 솔리드스테이트드라이브(SSD) 컨트롤러를 개발하고 있다. 이 컨트롤러는 삼성·인텔 등과 비교해도 뒤지지 않는 것으로 알려졌다. 파두는 SK와 국내 사모투자펀드(PEF)에서 투자를 받고 조만간 기업공개(IPO)도 준비하고 있다. 반도체 업계의 한 임원은 “전도유망한 팹리스들이 본격적으로 성과를 내면 앞으로 삼성 파운드리와의 협력도 한결 강화될 것”이라며 “질적으로 반도체 산업의 도약이 시작되는 계기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박호현기자 greenlight@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