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규모 폭발사고가 발생한 레바논 수도 베이루트의 항구에서 4일(현지시간) 버섯 모양의 연기와 불덩어리가 하늘로 치솟고 있다. /트위터 캡처
4일(현지시간) 레바논 수도인 베이루트 항구에서 발생한 대규모 폭발로 인근 거리의 건물들까지 폐허가 되면서 사고현장은 마치 핵폭발이 일어난 것처럼 처참한 모습이다. /로이터연합뉴스
‘중동의 화약고’로 불리는 레바논에서 초대형 폭발사고로 수천명의 사상자가 발생했다. 경제위기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의 여파로 어려움을 겪는 가운데 대형참사가 벌어지면서 레바논의 혼란이 더욱 심해지고 있다. 이번 사고에 대해 일각에서는 테러 가능성까지 거론하고 있어 향후 사고 원인이 외부세력의 공격으로 드러날 경우 정정불안에 시달리는 레바논의 상황을 더욱 악화시킬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로이터통신 등에 따르면 4일 오후6시께(현지시간) 지중해 연안국인 레바논의 수도 베이루트에서 대규모 폭발로 사상자가 수천 명에 달하는 참사가 발생했다. 두 차례 폭발음과 함께 시작된 폭발사고는 위력이 워낙 강해 10㎞ 떨어진 빌딩의 유리창이 깨질 정도였다. 빌딩이 순식간에 무너졌고 항구 주변 상공은 거대한 검은 연기로 뒤덮였다. 요르단 지진관측소는 규모 4.5의 지진과 맞먹는 충격이라고 추정했다. 키프로스 매체들은 레바논에서 최소 160㎞ 떨어진 지중해 섬나라 키프로스에서도 폭발음이 들렸다고 전했다.
인명피해 규모도 큰 것으로 알려졌다. AFP통신은 이번 폭발사고로 사망자가 최소 100여명, 부상자도 4,000여명에 이른다고 전했다. 폭발로 사고현장 접근이 쉽지 않아 사상자는 더 늘어날 것으로 예상된다. 마완 아부드 베이루트 주지사는 5일 AFP통신에 “베이루트 폭발 참사로 25만∼30만명이 집을 잃은 것으로 생각된다”면서 “피해액은 30억∼50억달러(약 5조9,400억원)에 이를 것”이라고 밝혔다.
레바논 당국은 일단 베이루트 항구 창고에 장기간 적재된 인화성 물질인 질산암모늄을 사고원인으로 추정하고 있다. 농업용 비료인 질산암모늄은 가연성 물질과 닿으면 쉽게 폭발하는 성질을 가져 화약 등 무기 제조의 기본원료로도 사용된다. 하산 디아브 레바논 총리는 기자회견에서 “폭발이 발생한 베이루트 항구 창고에는 약 2,750톤의 질산암모늄이 안전조치 없이 6년간 보관돼 있었다”면서 “용납할 수 없는 일”이라고 밝혔다. 일각에서는 이번 사고가 외부공격으로 발생했다는 주장도 나온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백악관 브리핑에서 “공장 폭발 같은 형태의 사고가 아니었다”며 “그들(장성들)이 나보다 더 잘 알 것이다. 그들은 공격이었다고 생각하는 것처럼 보인다. 일종의 폭탄이었다”고 말했다. 레바논에서 수년간 활동했다는 로버트 베어 전 미 중앙정보국(CIA) 요원은 5일 CNN과의 인터뷰에서 “(폭발 영상에서) 오렌지색 화염구를 볼 수 있는데 이는 분명히 군사용 폭발물이 폭발한 것”이라며 참사의 직접적인 원인은 질산암모늄이 아니라고 주장했다.
이와 관련해 레바논의 이슬람 시아파 무장정파 헤즈볼라, 국경 문제로 갈등을 빚고 있는 이스라엘이 이번 사고와 관련해 주목받고 있다. 특히 이번 참사가 유엔특별재판소의 라피크 하리리 전 레바논 총리 암살사건에 대한 판결을 불과 사흘 앞두고 발생하면서 헤즈볼라를 향한 의심의 눈초리가 커지고 있다. 오는 7일 유엔특별재판소는 지난 2005년 하리리 전 총리의 암살을 주도한 혐의로 헤즈볼라 대원 4명에 대한 판결을 내릴 예정이다. 의혹을 받고 있는 이스라엘은 베이루트 폭발과 관련이 없다고 강조하며 레바논에 인도적 지원을 하겠다는 뜻을 밝혔으며 헤즈볼라는 특별한 입장을 내놓지 않았다.
레바논 정부는 사고 수습에 속도를 내기 시작했다. 미셸 아운 레바논 대통령은 베이루트에 2주간의 비상사태를 선포하고 비상 국무회의를 소집하는 등 즉각 대응에 나섰다. /박성규기자 exculpate2@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