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감절벽’에 내몰린 일본 조선업계가 한국과 중국을 따라잡기 위해 ‘합병’ 카드를 꺼내들었다. 덩치를 키워 경쟁력을 높이겠다는 것이다. 한국의 조선업 합병과 지원에 반발하며 견제구를 던져온 것과 정면 배치되는 행보다.
6일 닛케이와 조선업계에 따르면 일본 쓰네이시조선소는 지난달 31일부터 미쓰이E&S 조선과 자본제휴 협의를 진행하고 있다. 협의의 주요 골자는 쓰네이시가 미쓰이E&S의 자회사인 미쓰이E&S조선의 지분을 인수하는 것이다. 양사는 연내 합의를 마치고 오는 2021년 10월 합병 절차를 마무리한다는 계획이다.
두 회사는 중형 벌크선과 탱커를 주력으로 건조하는 일본 중형 조선소다. 일본 내 4위인 쓰네이시조선소와 8위 미쓰이E&S가 합병하면 가와사키중공업을 밀어내고 단숨에 3위 조선사로 도약할 것으로 전망된다. 이들 조선소가 힘을 합치기로 한 것은 일본 조선업이 한국 조선업에 따라잡힌 뒤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102년 역사의 조선기업인 미쓰이E&S의 경우 수년째 영업손실을 면치 못하면서 최근 상선 건조를 중단하기로 결정했고 지난 6월 특수선사업을 미쓰비시 중공업에 넘기기로 했다. 클락슨리서치에 따르면 일본의 수주량 점유율은 2015년 28%에 달했지만 지난해 13%까지 떨어졌다. 일본의 올해 1~6월 국가별 누계 수주 실적도 57만CGT로 1위 중국(351만CGT·61%)과 2위 한국(118만CGT·21%)에 크게 못 미친다.
한국과 중국 조선업계의 ‘대형화’가 일본의 합작 움직임 불쏘시개가 됐다는 분석도 나온다. 현대중공업의 대우조선해양 인수로 세계 1위 조선소가 등장하게 돼 일본 조선업계에 위협적이라고 보는 것이다. 중국은 지난해 말 양대 조선사인 중국선박공업집단공사(CSSC)와 중국선박중공집단공사(CSIC)가 합병을 마쳤다. 앞서 일본 최대의 조선 업체인 이마바리조선과 2위 업체인 재팬마린유나이티드(JMU)가 지난해 11월 합작사 설립에 나선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일본 정부는 자국 조선업계의 입지가 좁아지자 대규모 금융지원까지 마련하고 있다.
국내 조선업계에서는 이 같은 일본의 자국 산업 보호 조치들에 곱지 않은 시선을 보내고 있다. 산업은행과 한국 정부의 지원 등을 거론하며 세계무역기구(WTO)에 한국을 제소했던 일본이 자가당착에 빠졌다는 것이다. 조선업계의 한 관계자는 “한국에 시장질서 왜곡이라며 지적했던 지원을 자국 산업에 똑같이 적용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한동희기자 dwise@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