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여울 작가
‘거의 다 왔다’는 아름다운 거짓말이 필요할 때가 있다. 힘겨운 치료를 받으며 고통에 떨고 있는 환자에게 의사들은 말한다. 거의 다 왔다고. 조금만 더 버텨보자고. 너무 오래 걸어서 발가락에 물집이 잡히고 땀이 비오듯 쏟아지며 눈앞이 캄캄해지는 순간에도, 사람들은 위로해준다. 이제 거의 다 왔다고. 조금만 더 힘을 내자고. 매번 아까운 점수 차이로 중요한 시험에 떨어지는 사람에게, 주변 사람들은 말한다. 이제 거의 다 왔다고. 조금만 더 힘을 내면 좋은 결과가 있을 거라고. 사실 정말 거의 다 온 것은 아니지만, 목표지점이 아직 제대로 보이지도 않지만, 그래도 시작조차 하지 않는 것보다는 훨씬 나을 때. 우리는 이런 말로 스스로를 위로했던 것이 아닐까. 이제 정말, 진짜로 거의 다 왔다고.
하지만 ‘거의 다 왔다는 거짓말’이 우리를 더 힘들게 할 때도 있다. 예컨대 외진 시골길을 걸어가며 목적지를 찾을 때는 동네 주민들의 ‘이제 거의 다 왔다’는 말은 참말이지 위로가 안 된다. 우리 도시인에게는 너무도 험난하고 머나먼 길을, 시골 어르신들은 ‘별 것 아닌 거리’로 인식하기 때문이다. 그들은 어쩌면 그렇게 강인하고 느긋한 것일까. “그리 멀진 안혀. 쪼매만 더 가봐.” 이런 구수한 사투리를 들으며 바짝 힘을 내어 걸어갔지만, 아직 1시간이나 더 걸어가야 할 때도 있었다.
바로 이 ‘거의’가 우리를 미치게 한다. 거의 어떻게 할 뻔했다는 것. 시험에 거의 붙을 뻔했다는 것, 거의 사랑을 고백할 뻔했다는 것, 질병이 거의 다 나을 뻔했다는 것. 이 모든 ‘거의’가 우리를 잠 못들게 한다. 조금만 더 노력하면 될 것도 같은데, 노력만으로는 안 되는 일들이 훨씬 더 많기에, 바로 그 ‘거의 다 왔다’는 희망적인 느낌이 곧 절대로 뛰어넘지 못할 장애물로 변신할 때도 있다. 수영선수가 거의 자신의 최고기록을 깰 뻔했지만 그후 기록이 나아지기는커녕 좀처럼 슬럼프에서 벗어나지 못할 수도 있고, 획기적인 신약의 개발이 거의 성공 단계에 진입했다가 최종 임상실험 단계에서 실패할 수도 있으며, 어려운 취직이나 입학 시험에서 수없이 힘든 관문을 거친 훌륭한 인재가 최종면접에서 떨어질 수도 있다. 바로 이 ‘거의 할 뻔했다’는 사실이 우리의 고통을 더욱 가중시키기도 한다. 인생에선 거의 그 ‘한 끝 차’가 운명을 가르니까. 그 한 끝 차의 가차 없는 냉혹함이 우리를 슬프게 한다. 하지만 큰일이 닥쳤을 때야말로 우리가 바로 그 ‘거의’의 명운을 시험해야 할 기회이기도 하다.
바로 그 ‘거의 다 끝난 것만 같은’ 시점이야말로, 가장 힘든 시기이자 우리의 힘을 결정적으로 시험하는 순간이다. ‘거의 ~할 뻔했다’는 아슬아슬함이 우리를 미치게 할지라도. ‘거의 다 해낼뻔 했지만, 결과적으로 다 해내지 못했다’는 절망감이 우리를 아프게 할지라도. 거의 해낼 뻔했다는 것이야말로 우리가 도전을 멈추지 않는 불타는 젊음의 소유자임을 증언함을 잊지 말자. 도전도 열정도 없는 단조로운 삶 속에는 ‘아깝다, 거의 다 해낼뻔 했는데’하는 안타까움 자체가 깃들지 못하니까. 일이 좀처럼 잘 풀리지 않을 때, 나 또한 희망을 잃어가는 나 자신에게 이렇게 말한다. 이제 정말 거의 다 왔다고. 지금이야말로 너의 잠재력을 실험할 시간이라고.
거의 다 끝나가는 순간, 그때가 바로 우리의 잠재력이 최대한 발휘되는 시간이다. 거의 다 왔다 싶은 순간, 우리의 숨은 실력이 최대한 발휘되고 우리 인간성의 가장 밑바닥이 드러나고 또 우리가 지닌 가장 좋은 것들도 드러나게 된다. 한여름에도 마스크를 써야 하는 지금 이 상황이 답답한 우리 모두에게도, 거의 다 왔다는 따스한 위로를 건네고 싶다. 눈부신 꿈을 향해 전진하고 있는 당신에게, 쓰라린 고통의 한가운데서 씨름하고 있는 당신에게, 나는 말하고 싶다. 거의 다 왔다고. 거의 그 아름다운 끝이 보인다고. 당신은 이미 지금까지 최선을 다했으니, 당신에게 반드시 좋은 일이 일어날 거라고. 그러니 이제 조금만 더 힘을 내자고. 저 장애물을 뛰어넘기만 한다면, 이 고통을 잘 참아내기만 한다면, 거짓말처럼 아름다운 삶의 풍경이 아름답게 펼쳐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