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면우 세종연구소 부소장
2020년은 후세의 역사가들로부터 변환의 시점으로 기억되리라 생각한다. 종전의 지식으로는 예상하기 힘든 일들이 한꺼번에 일어나고 있기 때문이다. ‘변환’이란 이처럼 종전의 경험이 제시하는 예상치를 넘어선 일들이 발생하고 그에 따라 기존의 질서나 제도에 변화가 갑자기 또는 점차적으로 일어나는 것을 의미한다. 현재 우리가 겪고 있는 2020년이라는 시점은 이러한 변환의 다양한 조짐들을 보여준다.
현재 세계를 강타하고 있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가 이러한 변환의 조짐을 예시하는 대표적인 예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전 세계적으로 1,800만명 이상의 확진자와 70만명 이상의 사망자를 발생시킨 코로나19로 인한 사회적 거리두기는 근대 이후 본격 추진된 자본주의의 세계화 추세에는 역행하는 격리사회의 모습이나 치타슬로(슬로시티) 운동을 연상케 한다. 예상외의 전개라는 측면에서는 올여름 한국을 비롯한 동북아 지역을 덮쳐 수백 명의 사상자를 낳고 있는 집중호우도 변환의 조짐이라고 할 수 있다. 온난화에 의한 기상이변이 어제오늘의 일은 아니지만 최근에는 그 변동의 폭이 매우 커 종래의 통계로는 극히 곤란한 지경에 이르러 기상관계자들을 곤혹스럽게 만들고 있다.
국제질서의 관점에서는 갈수록 심각해지는 미중관계의 갈등을 변환의 중요 조짐으로 꼽을 수 있다. 갈등적 미중관계의 양상도 새로운 것이지는 않지만, 영사관 폐쇄라는 조치를 서로 주고받는 모습은 사태가 단순히 험한 말을 주고받는 단계는 이미 지난 심각한 상태임을 보여주는 중요 징표라고 하겠다. 물론 이마저도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재선을 위한 전략에 의해 발생하는 부수적이고 임시적인 상황으로 치부할 수도 있겠지만, 현재 미국 내 반중 모드가 화웨이 장비나 코로나19 책임론만이 아니라 홍콩보안법 등까지 포함해서 제기되고 있다는 점에서 그 불만이 무역수지와 같은 경제적 레벨이 아닌 보다 근본적인 가치 문제와 연관돼 있음을 알 수 있다. 결코 단시일 내에, 또는 대통령선거 이후에 그칠 사안이 아닌 것으로 보인다.
특히 최근 들어 동중국해의 센카쿠열도에서 빈번하게 전개되는 중국 공선의 공격적인 출몰과 이에 대한 미국과 일본의 우려는 미중 갈등이라는 변환의 조짐이 소위 말하는 세력전이전으로 연결될 개연성을 높이는 것이라고 하겠다. 냉전의 붕괴 이후 미국과 일본은 동아시아의 기존 질서를 안정적으로 유지하기 위해 방위협력을 꾸준히 진행해왔다. 근자에는 평시도 아니고 전시도 아닌 ‘회색지대’를 노리고 변화를 추구하는 세력에 대응하는 ‘심리스(끊김 없는)’ 전략을 추진 중인데, 이러한 우려가 결코 기우가 아니었음을 최근의 상황전개가 보여주고 있다.
2020년은 국제관계나 자연환경과의 교류라는 관점에서 공히 변화의 시점이고 그 변화의 유무에 따라 기존 질서의 주도세력에도 변화가 생기는 불확실성의 위기국면이라는 것이다. 이러한 위기국면에 있어 가장 경계해야 하는 첫번째는 분열이다. 그리고 이러한 분열을 초래하는 대표적인 두 가지가 있는데, 그 첫번째는 다양성을 인정하지 못하고 자기주장만을 펼치는 독선주의다. 과학기술의 총아라고 할 수 있는 소셜미디어가 의견의 다양성을 수렴해 통합하는 장치가 아니라 독선을 강화하는 장치로 전락한 것은 시대의 아이러니다. 불완전한 인간에 있어 다양성 인정은 그나마 상승발전의 기초이다. 두번째는 막연히 잘될 것이라는 기대감이다. 각자가 추구하는 목표가 있는데 그것들을 최대한 아우를 수 있는 방안에 대한 철저한 고민 없이, 예를 들어 ‘같은 민족’이라거나 ‘같은 지역’을 운운하는 것은 미신을 믿는 전근대적인 습속이다. 이성적 전략 없이는 천운도 따르기 어렵다는 것이다. 운양호사건 이후 145년 역사의 한국근대는 시련 속에서 경제성장만이 아닌 민주화라는 성공을 일궈냈다. 그러한 시련과 성공이 헛되지 않도록 현재의 한국과 세계를 가능하게 했던 체계를 어떻게 하면 지킬 수 있는지 고민할 것을 작금의 변환시대는 요구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