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불어민주당 이해찬 대표가 지난 10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연합뉴스
집권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이 습관적으로 4차 추가경정예산안 카드를 꺼내 들었다. 전 국민을 대상으로 12조원 이상의 재난지원금을 물쓰듯 펑펑 뿌리더니 재정여력이 부족해지자 또 추경을 검토하기로 한 것이다.
과거 재난지원금 이슈가 불거졌을 때 홍남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더 어려운 상황을 대비해 재정여력을 비축해야 한다”면서 소득하위 70%로 한정해 지원금을 지급해야 한다고 역설했지만 여당은 전 국민으로 대상을 확대했다. 4차 추경 얘기가 돌자 관가에서는 “홍 부총리의 판단이 옳았다”는 평가가 나온다.
민주, 4차추경 공식화에…김종인도 "수해 복구에 쓸 예산이 없다"
이해찬 민주당 대표는 10일 수해대책과 관련해 “예비비 지출이나 추경 편성 등 필요한 제반 사항과 관련해 고위 당정협의를 열겠다”며 4차 추경을 공식화했다. 야당도 동조하는 분위기다. 김종인 미래통합당 비상대책위원장은 이날 기자들과 만나 “그동안 돈을 많이 써서 예산이 남은 게 없다”며 “수해 규모가 너무 커 추경을 하지 않을 수 없다”고 말했다.
기재부는 “예비비와 기존 편성 예산을 활용하는 것이 우선”이라며 신중한 반응을 보였지만 민주당이 밀어붙일 태세여서 곤혹스러워하는 모습이다. 문제는 현금복지를 명분으로 돈을 마구 풀다 보니 이번 수해처럼 정작 긴급한 상황이 발생했을 때 재정여력이 고갈된다는 점이다.
수해 대응 추경까지 이뤄지면 이는 올해 네 번째 추경이 된다. ‘추경 중독’이라는 말이 나오는 이유다. 문재인 정부 들어 추경은 한 해도 거르지 않고 이뤄졌다. 집권 첫해인 지난 2017년 사상 처음으로 일자리 추경(11조2,000억원)을 편성한 데 이어 2018년 청년일자리 추경(3조8,000억원), 2019년 미세먼지 및 경기대응 추경(5조8,000억원)을 내놓았다. 올해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에 대응한다며 48년 만에 세 차례에 걸쳐 총 59조원 규모의 추경을 단행했다. 여기에는 전 국민 긴급재난지원금 지급을 위한 추경 12조2,000억원도 포함돼 있다. 또 다른 문제는 재원이다. 불과 한 달 전 국회 본회의를 통과한 35조원 규모의 역대 최대 코로나19 대응 3차 추경은 23조원가량의 적자국채를 찍어 재원을 조달했다. 12조원 넘게 들어간 전 국민 재난지원금 지급 같은 선심성 대책도 빚 3조4,000억원을 내서 추진했다. 그 과정에서 재정 건전성은 무너져내렸다. 국내총생산(GDP) 대비 국가채무비율은 올해 처음 40%를 넘어서며 43.5%로 오르게 된다. 재정 건전성이 빠르게 악화하는 와중에 재정 투입이 불가피한 자연재해까지 덮치면서 재정 부담이 가중된다는 지적이다.
수해 대응 예비비 2조도 안남아…추경땐 또 적자국채 불가피
결국 국채를 추가로 발행해야 하는데 이미 올해 예정된 적자국채 규모가 97조6,000억원에 달한다. 애초 계획보다 37조원이나 많다. 한국재정학회장을 지낸 최병호 부산대 경제학과 교수는 “국가 재정이 과도하게 정치적으로 운용되고 있어 매우 염려스럽다”고 말했다..
기재부, 예비비·기존 예산 활용 우선한다지만…정치권 발언에 곤혹
홍 경제부총리는 이날 자신이 주재한 기재부 확대 간부회의에서도 “기정(확정) 예산, 재해대책 예비비 지원 등 재정 지원에 ‘속도전을 벌인다’는 자세로 신속히 대응해달라”고 주문했다. 이날 정치권에서 흘러나온 4차 추경 편성 관련해서는 한마디도 언급하지 않았다. 사실상 정치권의 4차 추경 편성 요구를 일축한 것이라는 해석이 나왔다.
지난 10일 전남 구례군 구례읍 오일장에서 중장비가 최근 폭우로 불어난 물에 잠겨 쓰레기가 된 각종 물품을 걷어내고 있다. /연합뉴스
무엇보다 기재부는 재난대응 주무부처인 행정안전부가 수해 피해 규모와 복구 예상액을 파악하고 있지만, 현 단계에서는 추경 없이도 대응이 가능할 것으로 보고 있다. 기재부의 한 관계자는 “현재 시점에서는 기정 예산 이·전용과 예비비 등을 통해 조치가 가능한 수준”이라고 설명했다. 가용한 예비비와 기존 편성 예산 중 불요불급한 사업 예산을 전용하면 수해 복구에 쓸 수 있는 재원이 더 늘어날 수 있다고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
시기적으로도 부담스러운 게 사실이다. 기재부는 법상 다음 달 3일까지 내년도 예산안을 국회에 제출해야 한다. 이달 말 국회 제출을 목표로 하고 있는 기재부로서는 본예산과 함께 추경안 심사까지 해야 하는 부담이 있다. 4차 추경안이 제출된다 하더라도 본예산과 함께 심사가 이뤄져야 하는 등 애로점이 적지 않다.
전문가 “집권여당 아마추어식 재정운용방식 심각” 지적도
홍 부총리는 재난지원금 지급 대상을 둘러싼 논란이 한창이던 지난 4월 “코로나19 영향을 예단할 수 없는 만큼 더 어려운 상황에 대비해 추가 재정여력을 축적해놓는 것이 필요하다”며 전 국민 지급에 반대했다. 그는 재정여력과 국채발행 규모 등을 감안해야 한다며 소득 하위 70% 지급 입장을 고수했다. 전 국민에게 지급해야 한다는 정치권 압박에 맞선 소신 대응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하지만 여권의 압박에 12조원이 넘는 재정이 투입돼 전 국민 지급이 이뤄졌다.
이번 수해 지원을 위한 4차 추경이 이뤄지면 추가적인 적자국채 발행이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35조1,000억원 규모의 3차 추경 때도 재정여력이 바닥나 23조원가량의 적자국채를 찍어 재원을 마련했기 때문이다. 앞서 재난지원금 지급을 위한 2차 추경 때도 3조4,000억원의 적자국채를 발행했다. 과거 2002년 태풍 ‘루사(4조1,000억원)’와 2006년 태풍 ‘에위니아(2조2,000억원)’ 때는 각각 4조1,000억원과 2조2,000억원 규모로 추경이 편성된 적이 있다.
빚이 늘어나는 것에 대한 우려 없이 재정지출을 한 결과 재정 건전성은 무너져내렸다. 국내총생산(GDP) 대비 국가채무비율은 올해 처음 40%를 넘어서며 43.5%로 오르게 된다. 재정 건전성이 빠르게 악화하는 와중에 재정 투입이 불가피한 자연재해까지 덮치면서 재정 부담이 가중된다는 지적이다. /세종=한재영기자 jyhan@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