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여름 이례적인 폭우로 막대한 인명·재산 피해가 예상되는 가운데 금융투자업계에서 ‘날씨파생상품’ 도입 논의가 물꼬를 트고 있다. 날씨파생상품은 이상기온이나 폭우·폭설 등 예상치 못한 자연재해에 따른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 맺는 선물·옵션 계약을 일컫는다. 업계에서는 날씨파생상품이 기상현상에 따른 손해를 최소화할 수 있는 대안이 될 가능성이 있다고 봤다. 날씨보험과 달리 보상이 지연될 우려도 적은데다 기온 변동, 강우량 등 일상적인 기상 변화까지 모두 헤지(위험회피)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실제로 날씨파생상품이 자본시장에서 얼마나 잘 팔릴 수 있을지에 대해서는 회의적인 시선도 상당하다.
10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기상청 산하기관인 기상산업기술원과 금융투자협회는 지난 7일 날씨파생상품 도입 가능성을 토론하는 세미나를 열었다. 이날 자리에서는 날씨파생상품의 효용성 등에 대한 논의가 이뤄진 것으로 전해졌다. 이번 세미나는 최근 이례적인 폭우와는 관계가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금융투자업계에서는 날씨파생상품이 올해와 같은 이상기후에 대해 기업들이 효과적으로 대응할 수단이 될 수 있다고 봤다.
파생상품이 거래되려면 기초상품이 반드시 있어야 한다. 날씨파생상품의 경우 ‘날씨파생지수’가 그 역할을 한다. 기업이나 정부기관은 기온·강우량·강설량·적설량 등의 데이터를 기초로 한 지수를 기반으로 선물·옵션·스와프 계약을 맺는 방식으로 기상 관련 위험을 줄이게 된다. 가령 겨울에 폭설이 예상되는 경우 지방자치단체는 강설량 관련 지수를 기초자산으로 하는 콜옵션을 사들여 제설비용을 낮출 수 있다.
이미 미국·유럽 등에서는 날씨파생상품 거래가 이뤄지고 있다. 1999년 미국 시카고상업거래소(CME)가 세계 최초로 기온에 대한 선물·옵션 계약을 상장한 후 미국에는 기온·서리·폭설·폭우·허리케인 관련 지수가 구비돼 있다. 유럽파생상품거래소(EUREX)에서도 날씨 관련 지수를 기반으로 한 파생상품 거래가 가능하다. ‘오마하의 현인’으로 불리는 워런 버핏 역시 미 플로리다 주정부와 대규모 허리케인으로 피해가 발생할 때 40억달러 규모의 주정부 채권을 사들이기로 하는 옵션 계약을 맺은 바 있다.
국내에서는 2009년 자본시장법이 제정되면서 도입 논의가 이뤄지기 시작했다. 파생금융상품도 자본시장법상 규율 대상으로 들어오면서 ‘제도권’ 내에서 각종 파생상품 개발이 가능해졌기 때문이다. 2011년 기상청에서 파생상품 도입 관련 타당성 조사 연구를 학계와 민간 기상 분석업체에 의뢰했다. 2012년에는 한국거래소에서 파생상품연구센터가 개설되면서 날씨파생상품 관련 지수 개발에 대한 기대감이 커졌다.
날씨파생상품이 날씨보험을 보완해줄 수 있다는 것 때문이었다. 우리나라에서는 날씨 관련 위험을 줄일 수 있는 금융상품이 날씨보험 외에는 없다. 그러나 날씨보험의 경우 손해액을 산정하는 데 오래 걸린다는 단점이 있다. 반면 날씨파생상품은 자본시장 내 기상 지수 변동과 파생계약에 따라 보상받는 액수가 일정한 만큼 기업이 즉각적으로 재무상 피해를 줄일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또한 날씨보험이 날씨로 인한 ‘손해’만 보상해주는 반면 날씨파생상품은 기온·강우량 등 기상 관련 수치가 ‘일정 조건’을 충족하면 곧바로 이득을 볼 수 있다는 점에서 좀 더 포괄적인 헤징이 가능하다. 특히 지구온난화로 올해와 같은 이상기후 현상이 지속적으로 나타나고 이에 따른 피해액 역시 예측하기 어려워지고 있어 날씨파생상품 관련 도입 논의는 더욱 본격화할 것으로 전망된다.
그러나 날씨파생상품이 출시됐을 때 얼마나 ‘시장성’을 가질 수 있는지에 대해서는 아직 논란이 적지 않다. 금융투자업계의 한 관계자는 “전 세계적으로도 날씨파생상품 상장 수가 기존의 절반 이상 줄어든 상황”이라며 “원유 파생상품 등으로도 충분히 날씨 관련 위험을 헤징할 수 있는데 굳이 국내 기업들이 날씨파생상품을 거래하려고 할지는 의문”이라고 말했다. 날씨보험과 달리 투기수요에 따라 헤징 수요가 왜곡될 수 있다는 것도 한계로 꼽힌다. /심우일기자 vita@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