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이 4일 오후 청와대 위기관리센터에서 열린 집중호우 대처 긴급상황점검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연합뉴스
“과열 현상을 빚던 주택 시장이 안정화되고, 집값 상승세가 진정되는 양상을 보이기 시작했다. 앞으로 대책의 효과가 본격화되면 이런 추세가 더욱 가속화되리라 기대한다.”
10일 청와대 수석·보좌관 회의에서 나온 문재인 대통령의 발언을 두고 야권에서는 “대통령이 감이 없다”며 맹렬한 비판이 쏟아져 나왔다. 정부의 부동산 해법이 서서히 효과를 나타내고 있다는 문 대통령의 자평이 실제 현실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한 결과라는 것이다.
김종인 미래통합당 비상대책위원장은 이날 당 원내지도부와 함께 섬진강 일대 수해 지역을 둘러본 뒤 기자들과 만나 ‘집값이 진정 양상을 보이기 시작했다’는 문 대통령의 발언을 놓고 “일시적으로 그렇게 보이는 것이지 집값이 무슨 안정이냐”며 “대통령 본인이 그냥 감이 없다”고 맹폭했다.
그는 ‘보유세 부담이 다른 선진국보다는 낮다’는 문 대통령의 진단에 대해선 “뭘 몰라서 하는 이야기”라며 “그렇게 비교하면 안 된다. 세금은 나라마다 역사적 발전을 거쳐 돼 있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문 대통령이 ‘부동산 시장 감독기구 설치를 검토하겠다’고 밝힌 데 대해서도 “부동산 시장 감독기구를 만들어봐야 아무런 소용없다”며 “다른 나라 예를 들어도 맞는 게 하나도 없다. 누가 대본을 써주니 그대로 읽는다”고 비판했다.
아울러 정부·여당을 향한 쓴소리도 내놨다. 김 위원장은 “그 사람들은 기존 세입자만 생각한다”며 “새로 들어올 임차인은 (임대인이) 높은 가격을 불러도 낼 수밖에 없는데, 그런 부분에 대한 개념이 없다”고 꼬집었다.
통합당에서는 “(문 대통령의 발언을 듣고) 귀를 의심했다”는 논평이 나왔다. 김은혜 미래통합당 대변인은 문 대통령의 수보회의 직후 논평을 내고 “절망하고 있는 국민 앞에서 부동산대책이 효과를 나타내고 있다는 자평에 할 말을 찾지 못하겠다”며 “부동산 정책만큼은 자신이 있다는 올 초 연설에서 단 한 발짝도 후퇴할 수 없는 다른 사연이라도 있는 것이냐. 청와대가 외로운 성, 구중궁궐이 되어가는 듯 하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미래통합당 김종인 비상대책위원장이 11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부동산ㆍ수해 등 현안 관련 질문에 답변하고 있다. /연합뉴스
원희룡 제주도지사도 전날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부동산 문제에 대한 대통령 이야기를 듣고는 제 귀를 의심했다. 문 대통령은 자화자찬에 오도된 현실인식을 그대로 드러냈다”고 탄식했다.
그는 ‘집값 상승세가 진정되는 양상을 보이기 시작했다’는 문 대통령의 발언을 꼬집어 “대한민국 이야기가 맞느냐”고 물었다. 그러면서 “어떻게 최소한의 자기반성과 성찰도 없느냐”며 “지난 주말 우중에도 서울 한복판에 정부의 부동산 대책에 분노하는 사람들이 모였다. 그건 보고 못 받으셨느냐. 뉴스는 안 보시느냐”고 강하게 질타했다.
원 지사는 “‘집 팔 기회를 드리겠다’ ‘잘 되고 있다’ ‘잘 될 것이다’ 대통령 취임 후 3년여 동안 반복되는 돌림노래가 이제는 지겹다”며 “실력은 모자라도 선의는 있겠거니 했지만 이제는 그 의지조차 의심스럽다”고 덧붙였다.
통합당 소속 김근식 경남대 교수도 한마디 거들었다. 그는 10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글을 올려 “지난해 11월 (문 대통령이) 국민과의 대화에서 ‘부동산 정책만큼은 자신있다’고 호언장담하더니 부동산 폭등으로 엉망이 되어 당시 화면이 조롱거리로 회자된다”며 “(그런데) 최근 부동산 정책 실패로 국민들 아우성과 여당지지도 급락하는데도 또다시 다른 나라 이야기하듯 하다”고 쏘아붙였다.
그러면서 “대통령이 오늘 자신 있게 정리한 주택주거정책 4대 목표도 실상은 전혀 다른 딴소리 뿐”이라며 “‘불로소득 환수’는 실거주자와 1주택자에게 세금폭탄으로, ‘투기수요 차단’은 실수요자 대출규제로 내집 마련 사다리 걷어차기로, ‘공급물량 확보’는 재건축 재개발 규제하다가 뒤늦은 억지 공공임대 추진에 노원 상암 과천 등 수도권 반대로, ‘세입자 보호’는 도리어 전세실종으로 전세의 월세화와 세입자 축출로 나타났다”고 비판했다.
이어 “이게 현실인데 구중궁궐에서 달나라만 보고 계시느냐. 국민들이 어떤 생각인지, 실제 현실은 어떤 상황인지, 세상 민심 좀 제대로 보시라”며 “달빛기사단에 사로잡혀 달나라에 살면 안 된다. 제발 지구로 돌아오시라”고 호소했다.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도 문 대통령의 향해 “상황 인식과 판단에 중대한 오류가 있다”고 대립각을 날카롭게 세웠다. 그는 11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글을 올려 “어제 집값이 안정되고 있다는 대통령의 발언은 이 정권의 부동산정책 실패로 크게 상처받은 국민 가슴에 염장을 지르는 것”이라고 지적한 뒤 “청와대는 신문도 안 보고 여론 청취도 안 하느냐”며 목소리를 높였다. /조예리기자 sharp@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