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파식적]키리바시


태평양전쟁이 한창이던 1943년 11월20일 남태평양에 있는 타라와섬에서 미군의 대규모 상륙작전이 전개됐다. 미군에게는 이곳이 일본 본토 진격 전에 반드시 점령해야 할 요충지였고 일본군도 전략적 가치를 잘 알고 있어 서로 물러설 수 없는 전투를 벌였다. 양쪽 모두 큰 피해를 당한 가운데 일본도 5,000명 가까운 전사자가 발생하는 희생을 치렀다. 일본군을 제압하고 섬에 상륙한 미군이 잡은 포로는 145명. 이 가운데 128명이 조선인 강제징용 노동자였다. 일본군은 이 섬을 요새화하기 위해 1,000명을 훨씬 넘는 조선인을 강제징용한 것으로 알려졌다.


타라와섬을 포함해 인근 33개 섬은 1979년 영국 보호령에서 벗어나 키리바시공화국이 됐다. 이곳을 처음 방문한 이방인은 영국인 토머스 길버트다. 그의 성 ‘길버트(Gilbert)’를 현지어로 발음한 것이 키리바시다. 키리바시는 1996년 모든 섬을 같은 시간대로 통일한다고 발표했다. 키리바시에는 날짜변경선이 중앙을 통과해 동쪽 키리바시는 서쪽 키리바시보다 날짜가 하루 늦었다. 시간대가 하나로 맞춰지면서 날짜변경선은 키리바시의 가장 동쪽에 있는 캐럴라인섬 오른쪽을 지나가는 것으로 변경됐다. 이때부터 전 세계에서 해가 가장 먼저 뜨는 나라는 피지에서 키리바시로 바뀌었고 2000년 새천년 일출 행사도 가장 먼저 할 수 있게 됐다. 5월 키리바시에는 중국대사관이 문을 열었다. 인구가 10만명에 불과한 이곳에 중국이 눈독을 들이는 것은 미국 하와이로 접근하는 교두보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타네티 마마우 키리바시 대통령이 최근 영국 가디언지와의 인터뷰에서 “우리 섬들을 들어 올리는 전략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구체적인 방법으로는 수로를 준설하고 섬들을 잇는 둑길을 높은 교량으로 교체하는 방안이 거론된다. 키리바시의 가장 큰 고민은 섬들이 조금씩 가라앉는다는 것이다. 키리바시의 섬들은 모두 산호가 쌓여 만들어진 산호섬이다. 산호가 바다의 침식을 받는데다 온난화의 영향으로 해수면이 오르면서 지도에서 사라질 위기에 처했다. 기후변화로 인한 생존 위기는 키리바시만의 문제가 아니다. 지구인 모두가 시급해 해결해야 할 일이다. /한기석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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