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네시아 자카르타에 때 아닌 “KB가 인수해라”라는 집회가 열렸다. 인도네시아 부코핀은행(Bank Bukopin) 인수를 추진 중인 KB국민은행을 응원·지지하는 집회인데 민족주의가 강한 인도네시아에서는 상당히 이례적인 일이 벌어졌다. 집회 참가자들은 국민은행을 통해 유동성 위기를 겪은 부코핀사태가 조속히 해결돼야 한다며 최대주주였던 보소와그룹에게 책임있는 자세로 문제를 해결하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미 이달 말 67%의 최대주주 지위를 확보하게 되는 국민은행으로서는 지역 여론의 지지세를 얻으며 인도네시아 진출에 탄력이 붙는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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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족주의 강한 인도네시아에 '국민은행'지지·응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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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일 금융권에 따르면 최근 인도네시아 학생연합회(The Republic of Indonesia Student Association, IMRI) 소속 수백 여명이 인도네시아 금융당국(OJK)과 대통령 궁에서 잇따라 집회를 열고 부코핀은행 사태의 조속한 해결을 주장했다. 인도네시아에서는 지난 6월 이후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등을 통해 “(부코핀은행)유동성 위기가 심각하다”, “자금이 묶여 돌려받기 힘들 것” 등의 소문이 빠르게 퍼졌다. ‘현금 인출’을 원하는 고객이 몰리면서 부코핀은행 본사를 비롯해 일부 영업점들이 현금 인출 인원을 하루 150명으로 제한해 새벽부터 긴 줄이 만들어졌고, 시내 곳곳의 부코핀은행의 현금인출기 작동이 중단되기도 했다. 그나마 국민은행이 부코핀은행 인수절차를 서두르면서 ‘뱅크런’상황은 진정되고 있다. 집회 참가자들은 보소와그룹이 부코핀 은행의 회생을 위한 의지도 없을 뿐만 아니라 유동성 위기를 해결하기 위해 필요한 구조조정까지 방해했다고 비판했다.
인도네시아 부코핀은행 외경. 사진/부코핀은행 홈페이지
학생들의 시위는 부코핀은행이 인도네시아 경제와 서민 생활 안정에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다는 점을 강조한 것으로 해석된다. 실제 부코핀은행은 50년 이상의 업력에 자산 기준 인도네시아 14위의 중형은행으로 리테일 기반이 탄탄하다. 인도네시아 전역에 450개 지점에 862개 ATM기 등의 영업네트워크를 보유하고 있고 연금대출과 조합원 대출 등에서 안정적인 시장 지위를 가지고 있다. 인도네시아를 동남아시아 거점지역으로 삼아 리테일을 강화하려는 국민은행의 경영전략과도 부합한다. 이미 국민은행은 2018년 부코핀은행 지분 22%를 취득해 2대 주주가 됐다.
구분 | 현황 |
자산 | 8조6,500억원(현지14위) |
순이익 | 200억원(2019년) |
영업망 | 450개 지점. 862개 ATM기 |
부코핀은행 현황 |
올해들어 부코핀은행의 유동성 문제는 꾸준히 제기됐다. 올해 1·4분기 자본적정성비율(CAR)은 12.59%로 지난해(13.29%)보다 감소했다. 순안정자금조달비율(NSFR)은 3월 기준 100.84%로 규제 하한선(100%)을 겨우 넘겼다. 유동성커버리지비율도 115.67%로 지난해 같은 기간 128.43%보다 감소했다. 상황이 심각해지자 국민은행이 부코핀은행 경영권을 가져오는 방안이 부상했고, 지난 6월 국민은행이 2억달러(2,415억원)를 부코핀 은행 에스크로 계정에 입금하면서 사실상 경영권을 넘겨받는 작업에 들어갔다. 이 과정에서 국민은행의 부코핀은행 지분은 22%에서 33.9%로 올랐다. OJK도 ‘뱅크런’사태 등을 막기 위해 국민은행에 최대한 유리한 협상 조건을 만들었다. 현지법상 외국계 금융사 경영을 하려면 구조조정 차원에서 현지 부실은행 2곳을 인수하도록 하는 가이드라인이 있지만 OJK는 이를 면제해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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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은행 인수에 '피치'도 부코핀 신용등급 상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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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은행은 현재 지분율을 67%까지 높이기 위해 마무리 작업을 진행 중이다. 제3자 배정 유상증자를 통해 신주를 매입하고 이달 중으로 주주총회, OJK 승인 등 절차를 순차적으로 거치면 확고한 최대주주 지위에 올라서게 된다. 때마침 글로벌 신용평가사 피치가 부코핀 은행에 신용등급을 ‘AA-’에 ‘긍정적 관찰 대상’으로 지정했다. 피치는 “추가 자본이 투입돼 예금 손실로 인한 유동성 문제를 피할 것”이라며 “국민은행의 인수를 통해 부코핀은행의 평판 리스크를 억제할 수 있다”고 했다. 아울러 “부코핀은행을 통해 국민은행도 빠르게 성장하는 신흥 시장 진출에 발판이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송종호기자 joist1894@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