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통가 가전 장사, 제습·건조기가 살렸다

긴 장마에 에어컨 반토막났지만
제습기·건조기·의류관리기 불티
전체 가전 판매 되레 늘거나 선방
늦더위 땐 에어컨 추가 매출도 기대


긴 장마로 올 7월 에어컨 장사를 망친 가운데서도 전자제품 양판점과 이커머스의 가전 부문 담당자들의 표정이 의외로 의연하다. 에어컨을 못 판 대신 제습기와 의류건조기, 의류관리기 등 ‘장마가전 3총사’의 판매가 급증해 전체 가전 매출이 크게 줄지 않았거나 오히려 늘었기때문이다. 여기에 다음 주부터 찾아오는 폭염이 길어질 경우 에어컨 막판 매출도 만만치 않을 수 있다. 희망대로 될 경우 ‘에어컨도 잘 팔고 장마가전도 잘 판’ 여름이 될 수 있다는 예상이 나온다.

13일 롯데하이마트에 따르면 이 회사는 7월1일부터 8월11일까지 제습기 판매가 지난해 같은 기간에 비해 57% 증가했다. 의류건조기는 56%, 의류관리기는 64% 판매가 늘었다. 긴 장마로 눅눅한 습기를 참을 수 없어 이들 제품을 급히 구매한 소비자가 특히 많았다.

대신 장마로 열대야가 오지 않아 에어컨 판매는 줄었다. 롯데하이마트 측은 “제습가전 매출이 의미있게 신장했다”면서도 “그래도 에어컨 부진에 따른 매출 감소를 충분히 커버할만한 수준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국내 최대 전자상거래 사이트 G마켓에선 7월 에어컨 판매가 지난해 같은 달에 비해 59%나 줄었는데도 전체 가전 매출은 오히려 전년보다 7% 증가했다. 제습기가 29%, 의류건조기가 47%, 의류관리기는 25% 각각 증가했기 때문이다.

티몬에서는 7월 마지막 주 제습기 판매 대수가 에어컨의 10여 배를 넘었다. 이 회사 역시 에어컨 판매가 크게 줄었지만 제습기 덕에 전체 계절 가전 카테고리의 판매액은 지난해 보다 늘었다. 티몬 관계자는 “내부 분류 상 의류건조기는 계절 가전 카테고리에 있지 않지만 의류건조기까지 포함시킬 경우 올 여름 날씨 관련 제품 판매량은 지난해를 크게 넘어선다”고 말했다.


당초 유통업계는 올해 에어컨 판매가 대단히 좋을 것으로 기대했었다. 실제로 4~5월엔 혜택을 받고 에어컨을 미리 구입하는 소비자가 많았다. 이어진 6월 초엔 예년보다 빠르게 무더위가 찾아왔고 때마침 역대급 무더위가 예보되면서 소비자들이 에어컨 소비를 서둘렀다.

그러나 7월들어 상황이 반전됐다. 100년만의 폭염은커녕 역대 최장 장마가 찾아오면서 열대야가 사라지자 가전양판점을 비롯한 온·오프라인 가전 업체 바이어들의 표정이 일시에 굳었다. 그도 그럴 것이 에어컨의 최대 성수기는 7~8월인데 그 중에서도 7월이 가장 중요한 달이기 때문이다. 롯데하이마트 관계자는 “에어컨 판매가 겨울과 봄으로 분산되긴 했지만 그래도 날씨를 봐 가며 사는 소비자가 여전히 많아 7월이 가장 중요하다”고 말했다.

상황을 반전시킨 제품이 바로 장마 가전 3총사다. 제습기와 의류건조기, 의류관리기가 올 여름 필수 가전의 반열에 올랐고 결과적으로 전체 가전 판매는 큰 타격을 받지 않았다.

업계는 올 여름 에어컨 장사도 아직 끝난 게 아니라고 보고 있다. 다음 주부터 본격적인 여름 더위가 시작되는데다 예년과 달리 에어컨 판매에 유리한 환경이 조성돼 있기 때문이다.

롯데하이마트 관계자는 “긴 장마 뒤의 폭염은 습기가 많아 더 덥다”면서 “여기에 코로나19로 여행이 제한돼 집에 있는 시간이 많아 늦여름에 에어컨을 사는 가정이 많을 수 있다”고 기대했다. 이밖에 올해는 코로나19로 각급 학교 방학이 짧고 분산돼 있어 집에 있는 아이들을 위해서라도 막판에 에어컨을 사는 가정이 꽤 있을 것으로 업계는 보고 있다.

한편 올해 가전양판점은 예상과는 달리 좋은 시기를 보냈다. 코로나19로 온라인 학습이 시작되면서 노트북 판매가 대거 늘었고 ‘집콕’ 영향으로 영상가전이, ‘집밥’ 영향으로 주방가전도 판매가 증가했다. 여기에 정부가 으뜸효율 가전제품 환급제를 시작한 것도 유리하게 작용했다.

가전 양판점 업계 관계자는 “긴 장마에 에어컨이 잘 안 팔려 상승세에 찬물이 끼얹어질 것으로 봤는데 제습기와 건조기가 실적 하락을 막아주고 있어 다행으로 여기고 있다”고 말했다. 이커머스 업계 관계자는 “8월 후반기 에어컨 매출이 터져줄 경우 올 여름은 좋았던 계절로 기록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맹준호기자 next@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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