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쿄 시부야 일대 전경
일본의 부동산 회사들은 특정 지역을 기반으로 성장한 경우가 많습니다. 이를테면 미쓰이 부동산은 니혼바시, 미쓰비시지쇼는 마루노우치, 모리빌딩은 롯폰기를 기반으로 하고 있습니다. 또 사철이 발달한 일본은 민간 철도 회사들이 역세권 주변에 많은 땅을 가지고 있어 해당 지역을 기반으로 대형 부동산 회사로 성장하는 경우를 볼 수 있는데요. 1922년 철도 회사로 시작한 도큐 그룹의 계열사인 ‘도큐 부동산’이 대표적입니다. 도큐 그룹은 100년 가까이 시부야 지역을 기반으로 해서 사세를 확장했습니다. 도큐 그룹은 현재 200개가 넘는 계열사를 거느리고 있는데 그 중에서도 도큐 부동산이 시부야 지역 도시재생 사업을 이끌고 있습니다.
‘도큐 부동산’이 주도한 도시재생이 부활시킨 시부야 ‘비트 밸리’
라인이 입주해 있는 시부야 히카리에
도큐 부동산의 터전인 시부야는 일본 정보기술(IT) 산업의 중심지이기도 합니다. 구글·라인·DeNA 등 글로벌 IT 기업들과 스타트업들이 몰려 있는 시부야는 일본의 실리콘밸리로 ‘비트 밸리(Bit-Valley)’라는 이름으로 불립니다. 시부야 비트 밸리는 2000년대 초반 IT붐이 일면서 벤처 기업들이 몰려들어 전성기를 맞았지만 한 때 침체기를 겪기도 했습니다. 사무실 공간이 부족해 IT 기업들이 다른 지역으로 떠나고, IT 버블이 꺼졌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굴곡을 겪기도 했던 시부야 비트 밸리는 최근 완벽하게 부활했습니다. 특히 도큐 부동산이 큰 역할을 했습니다. 도큐 부동산은 2012년 ‘시부야 히카리에’ 준공을 시작으로 시부야 지역에서 다수의 도시재생 사업을 추진하면서 대형 오피스 빌딩을 공급했습니다. 가장 최근인 지난해에는 ‘시부야 스크램블 스퀘어’를 준공하기도 했죠. 도큐 부동산 주도로 추진된 시부야 재개발 사업으로 IT 기업들이 다시 시부야로 몰려들면서 시부야 오피스 시장은 다시 전성기를 맞았습니다. 부동산중개업체 미키쇼지에 따르면 시부야구의 평균 임대료는 도쿄 5대 도심인 치요다구·쥬오구·미나토구·신주쿠구·시부야구 중에서 가장 높습니다. 참고로 라인은 시부야 히카리에에 입주해 있습니다.
도큐 부동산이 재개발해 2019년에 준공한 ‘시부야 스크램블 스퀘어’ 전망대
코로나19 이후 180도 달라진 시부야 오피스 시장 분위기
그런데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로 시부야 오피스 시장의 분위기가 180도 달라졌습니다. 코로나19 이후 기업들이 재택근무를 확대하면서 사무실 수요가 줄고, 기존에 입주한 기업들도 사무실 면적을 줄이고 있기 때문입니다. 특히 IT 기업들이 밀집된 시부야 지역이 더 큰 타격을 입고 있습니다. 미키쇼지에 따르면 지난 6월 도쿄 5대 도심 중 시부야구의 오피스 공실률이 3.38%로 가장 높았습니다. 시부야구의 공실률은 코로나19가 본격적으로 확산되기 전인 지난 2월 1.87%에서 1.51%포인트나 올랐습니다. 반면 치요다구(1.39%), 쥬오구(1.44%), 미나토구(2.33%), 신주쿠구(2.24%)의 공실률은 시부야에 비해 낮은 수준입니다. 특히 스타트업들이 많이 입주해 있는 시부야 중소형 빌딩의 공실률이 급상승 했다고 합니다. 한 오피스 중개인은 니혼게이자이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시부야에서는 7월 들어 임대료를 20%나 낮추는 경우도 보인다”고 분위기를 전했습니다.
위기 속에서 반전 노리는 ‘도큐 부동산’
도큐 부동산이 재개발 중인 시부야역 일대 준공 후 모습
이 같은 시부야 오피스 시장의 침체가 도큐 부동산의 실적에 부정적인 영향을 줄 것이라는 우려가 나오고 있습니다. 도큐 부동산의 자산이 시부야에 편중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니혼게이자이신문에 따르면 도큐 부동산이 소유하고 있는 전체 오피스 빌딩 면적의 약 36%가 시부야 지역에 집중되어 있습니다. 시부야역 주변 20층 이상 대형 오피스 빌딩 12개 중 절반이 도큐 부동산 소유라고 합니다. 도큐 부동산을 넘어 도큐 그룹 전체 실적에 악영향을 줄 것이라는 우려도 나옵니다. 도큐 그룹 전체 매출에서 부동산 산업이 차지하는 비중은 20%지만 영업이익은 40%로 가장 비중이 크기 때문입니다.
도큐 부동산의 위성 오피스
다만 일각에서는 코로나19가 도큐 그룹에 오히려 기회가 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옵니다. 미쓰비시지쇼, 모리빌딩 등 다른 대형 부동산 회사들은 기본적으로 도쿄 핵심 도심을 거점으로 하고 있지만 도큐 그룹은 시부야뿐만 아니라 전통적으로 교외 지역에 관심을 가지고 개발에 적극적으로 참여해왔기 때문입니다. 도큐그룹은 시부야에 거점을 두고 있는 도큐 부동산과 교외 지역 개발을 주로 맡고 있는 도큐가 있습니다. 이에 코로나19 이후 재택근무가 확산되고, 전염병에 취약한 도심을 벗어나 교외 지역에 위치한 위성 오피스 수요가 늘어나면서 도큐 그룹이 수혜를 볼 수 있다는 겁니다. 참고로 도큐는 옛 도큐전철이 ‘전철’을 떼고 이름을 바꾼 회사입니다. 전철이 아닌 부동산 사업에 좀 더 집중하겠다는 의지를 담고 있습니다.
도큐 그룹이 라이즈 프로젝트라는 이름으로 도시재생 사업을 추진한 후타코타마가와 지역
실제 도큐는 우리나라 판교와 유사한 후타고타마가와 지역에서 라이즈 프로젝트라는 이름의 지역재생 사업을 추진하는 등 일찍부터 교외 지역에 관심을 나타냈습니다. 참고로 일본을 대표하는 IT 기업 중 하나인 라쿠텐은 도쿄 시나가와에서 후타고타마가와로 본사를 옮겼습니다. 또한 도큐 그룹은 시부야 역과 요코하마시 사이를 연결하는 철도를 운영하고 있으며, 해당 노선의 역세권 주변 땅을 많이 가지고 있습니다. 박희윤 현대산업개발 개발운영사업본부장은 “재택근무 확산이 도큐 그룹 입장에서는 오히려 기회”라며 “교외 지역에 많은 땅을 보유한 도큐 그룹이 코로나19 이후 훨씬 더 각광을 받게 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니혼게이자이신문도 코로나19 이후 도큐 그룹이 교외 지역 개발 사업을 더 빠르게, 더 많이 추진할 필요성을 느끼고 있다고 전했습니다.
/고병기기자 staytomorrow@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