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중국 때리기’ 가속화로 미중 갈등이 최고조로 치닫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미 행정부가 휴스턴 중국 총영사관을 폐쇄하고 마이크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은 닉슨기념관에서 ‘중국 포용정책 폐기와 중국 공산당 정부와의 전면대결’을 선언했다. 미국의 중국 기업 배제 정책은 화웨이에서 틱톡·위챗 운영 업체들에 이어 알리바바로 확대하는 것이 검토되고 있다. 이런 가운데 문재인 대통령은 남북대화 재개 등을 위해 외교안보라인을 개편했다. 급변하는 동북아 정세 속에서 대한민국은 어디로 가야 할까. 김성한 고려대 국제대학원장은 미국과 중국의 기술패권 전쟁이 30년가량 이어질 것으로 예상하면서 “우리는 남북관계만 바라보지 말고 국제사적 대변환기에 대처할 수 있는 전략적 고민을 많이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첨단기술 분야의 협력은 중국보다 미국과 함께한다는 입장을 분명히 해야 한다”면서 “전문가를 활용할 때는 이념적으로 편을 가르지 말고 총동원해 나라의 방향을 설정해야 한다”고 했다. 17일 고려대 서울캠퍼스 국제대학원장실을 찾아 급변하는 한반도 주변 정세와 남북관계에 대해 들어봤다.
김성한 고려대 국제대학원장이 17일 서울경제와의 인터뷰에서 “우리가 경제발전과 민주화를 이룰 수 있었던 것은 국민의 근면함과 한미동맹 때문”이라며 “대한민국의 번영과 안정을 위해서는 미국을 적극 활용해야 한다”고 역설하고 있다./오승현기자
-미국이 중국을 전방위로 몰아붙여 미중 갈등이 고조되고 있는데.
△미중관계는 과거 미소냉전처럼 되지 않을 것이다. 미국과 중국의 경제가 상호의존 관계로 긴밀히 연결돼 있기 때문이다. 경제적 의존을 좀 줄일 수는 있지만 이른바 디커플링(분리), 즉 글로벌가치사슬(GVC)로부터 중국을 퇴출하는 것은 힘들 것이다. 미국이 동맹국과 힘을 합쳐 중국을 군사적으로 고립시키고 압박하는 전략 정도는 가능하다. 다만 첨단기술 부분에서는 미국이 우방과 기술동맹을 맺고 기술패권에 대한 중국의 도전을 억제하는 전략을 분명하게 추진할 것 같다. 첨단기술은 경제는 물론 군사·안보 분야에까지 영향을 주는 가장 중요한 변수이기 때문이다. 그 과정에서 중국의 반발도 만만치 않을 것이다.
-미중 대립이 더 격화하면 결국 어떻게 될 것으로 보는가.
△기술패권을 둘러싼 미중 간 다툼은 30년전쟁이라고 본다. 현재로서는 이의 결과를 예단하기 어렵다. 현재 중국의 국내총생산(GDP)은 미국 GDP의 65%가량에 이른다. 미국은 중국이 미국 GDP의 50%에 접근했을 때 제어했어야 했다. 그때가 대략 2007년·2008년 즈음인데 금융위기와 맞물려 미국이 타이밍을 놓쳤다. 중국과의 격차를 다시 벌리려면 시간이 걸린다.
-우리는 중국과의 관계에서 어떻게 대처하는 것이 바람직한가.
△중국을 다루는 것은 한국 외교의 최대 과제 중 하나다. 요즈음 ‘미국과 중국 사이에서 선택해야 할 때가 다가오고 있다’는 얘기가 많다. 하지만 한국은 1953년 미국과 동맹을 맺으면서 이미 선택했다. 한국은 한미동맹을 기반으로 세계 10대 경제대국으로 올라섰고 민주화도 이뤘다. 그렇지만 모든 이슈에서 미국과 입장이 똑같을 수는 없다. 군사·안보 분야가 아닌 기후 변화·환경·해상구조 등 사안별로 중국과 잘 협력해나가야 한다. 다만 첨단기술 분야의 협력은 중국보다 미국과 함께한다는 입장을 분명히 해야 한다.
김성한 고려대 국제대학원 원장이 서울경제와 인터뷰하고 있다./오승현기자
-중국의 부상과 더불어 일본의 부상도 점쳐지고 있다.
△일본 문제는 정말로 풀기 어렵다. ‘미국과의 관계만 잘 유지하면 일본은 저절로 따라올 것’이라는 주장이 있다. 잘못된 판단이다. 미국은 한미동맹이건 미일동맹이건 한미일 삼각안보 협력의 틀에서 바라본다. 한미동맹이 아무리 좋아도 한일관계가 좋지 않으면 굉장히 불안하고 불완전한 안보협력 관계가 된다는 것이다. 따라서 한일관계에서 과거사 문제를 꾸준히 다뤄나가더라도 안보협력은 별도 트랙에서 협력하는 게 옳다.
-일본이 장차 아시아에서 미국의 역할을 대신할 수 있다고 보는가.
△트럼프 대통령은 미군을 본토에 주둔시키다가 미국의 사활적 이해관계가 걸린 문제가 생겼을 때 압도적 수송능력을 동원해 신속히 개입하는 ‘역외균형전략(offshore balancing strategy)’을 선호한다. 일본은 이를 굉장히 걱정한다. 아시아 주둔 미군이 감축되거나 철수할 때 그 전략적 공백을 누가 메울 것인가 하는 측면에서다. 일본이 군비를 꾸준히 늘리고 일본 내에서 핵무장 얘기까지 나오는 이유다. 이는 일본이 군국주의로 나아간다는 뜻이 아니고 주권국가로서 자국의 안위를 지키려는 것이다. 일본 입장에서는 북한도 문제지만 중국이 거대한 장벽이다. 한국의 입장도 비슷하다. 주한미군이 빠질 경우 중국과 더 친하게 지낼지 일본과 힘을 합쳐 역내 세력 균형을 유지할지 굉장히 깊이 고민해야 한다. 대답은 명확하다. 한국이 같은 민주주의 국가와 협력하지 못한다면 스스로 모순을 드러내는 것이다. 일본과의 관계를 실용주의적 관점에서 빨리 재정립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강제징용 피해 배상,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지소미아) 등 일본과의 갈등이 깊어질 수 있는 현안들이 많다.
△정말 답답하다. 징용배상 문제는 신일본제철이 항고해 일단 한 템포 늦춰졌지만 현금화로 이어지면 한일관계는 걷잡을 수 없게 된다. 대승적 결단이 필요하다. 한일 간 주요 파이프라인을 가동하고 한일정상회담도 추진해야 한다. 한일관계는 위안부·징용공·교과서·독도 등 과거사 문제가 뒤얽혀 있어 총체적으로 풀어야 한다. 1998년의 ‘김대중·오부치 선언’ 같은 것이 나와야 한다. 보궐선거·대통령선거가 다가오는데 한일관계·남북관계의 정치화가 이어지면 치유가 더욱 힘들어질 것이다. 이낙연 전 총리 등 일본을 잘 아는 분들이 나서 한일관계 회복 방안을 제시하고 일본에서 상당히 긍정적인 평가를 받았던 ‘문희상 방안(한일 기업+국민 기부로 징용피해 배상)’의 불씨도 살려야 한다.
-우리가 독립하고 공산세력을 막아내는 과정에서 미국의 도움을 많이 받았는데 일부에서는 한미동맹을 소홀히 여긴다.
△우리 사회에서 한미동맹에 대한 시각은 양분돼 있다. 산업화 세력들은 한미동맹의 중요성을 높이 평가하지만 민주화 세력들은 자주성을 강화하며 동맹을 좀 축소하자고 한다. 우리가 경제발전과 민주화를 이룰 수 있었던 것은 우선 우리 국민이 근면하고 열심히 노력했기 때문이다. 또 다른 요인은 북한과의 대치상황에서 안보 걱정을 덜어준 한미동맹이다. 한미동맹을 경시하고 남북협력만으로 계속 번영하고 동북아에서 안보 걱정 없이 살아갈 수 있을까 하는 근본적 질문이 제기된다. 베트남은 독립과 통일을 자기 힘으로 이뤄 승자라고 간주하지만 우리는 피해자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외세에 대한 시각이 피해자 중심주의로 흐르는 측면도 있다. 그래서 미국도 일본을 비호하는 세력이라고 하는 시각이 일부 있다. 이런 시각에서 탈피해 대한민국의 번영과 안정을 위해 미국을 활용한다고 생각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김성한 고려대 국제대학원 원장이 서울경제와 인터뷰하고 있다./오승현기자
-현재 북한은 핵 보유를 인정받으려 하고 문재인 정부는 비핵화보다 북한과의 대화 재개에 신경을 쓰고 있으며 미국은 대선 전까지 북한이 사고만 치지 않게 관리하려 한다는 분석이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중국 때리기’를 재선전략에 열심히 활용하고 있지만 북한은 그렇지 않다. 북한과의 관계를 개선하려 해도 국제사회를 만족시키면서 트럼프 대통령의 큰 외교적 성과까지 거두기는 쉽지 않기 때문이다. 따라서 북한 문제는 해결보다 당분간 관리 차원에서 진행될 것이다. 10월 3차 북미정상회담의 가능성도 낮아졌다.
-문재인 정부의 새로운 외교안보라인이 남북대화 재개에 초점을 맞추고 짜였다는 얘기가 있는데.
△북한은 다탄두 대륙간탄도미사일(ICBM)까지 완성하는 단계에 있다는 외신 보도가 나오는 상황이다. 북한과 협력 가능한 분야를 찾는다고 해도 변죽만 울릴 가능성이 높다. 비핵화라는 근본 문제를 다루지 않고 외곽만 때리는 남북협력은 별 의미가 없다. 지금은 오히려 미중 간에 첨예한 갈등구조가 형성되고 있다. 앞으로 어떤 분야에서 미국과 협력하고 어떤 분야에서 중국이 섭섭해하지 않도록 관계를 잘 유지·발전시킬지 상당히 신경 써야 할 시기다. 또 한일관계 개선을 위해 과거사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지 머리를 싸매야 할 때다.
-우리 정부는 입법까지 해서 대북전단 살포를 막으려 한다.
△말이 안 된다. 한국은 자유민주주의 체제로 헌법이 종잇장에 불과한 북한과는 전혀 다르다. 표현의 자유를 억압하는 법제화로 북한 정권의 구미에 맞추는 행동을 보인다면 이는 국격에 관한 문제다. 대한민국이 과연 미래 한반도의 주인으로서 자격이 있는지 근본적인 질문을 제기할 수밖에 없다. 설령 법제화로 대북전단 살포를 막는다고 해도 북한 정권은 고마워하기보다 우리를 더 우습게 볼 것이다.
-노무현 정부는 적어도 한미동맹의 중요성을 인정해 이라크 파병과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을 결단했지만 문재인 정부는 그런 문제의식이 없다는 지적이 있는데.
△이라크 파병과 한미 FTA는 구별해서 볼 필요가 있다. 노무현 정부는 당초 미국에 이라크 파병을 할 테니 대북한 정책을 유연하게 해달라고 했다가 한미관계에서 홍역을 치른 뒤 파병했다. 한미 FTA는 노무현 정부의 최고 업적 중 하나다. 이념보다 국익·실용주의를 적절히 가미했기 때문에 그런 정책이 나올 수 있었다. 그러나 현 정부는 ‘노무현 정부의 업적을 계승한다’고 하지만 이념과 실용의 배합에서 이념이 너무 많은 부분을 차지하는 것 같다. 앞으로는 실용주의 관점에서 대미·대일관계를 개선해나가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오현환 논설위원 hhoh@sedaily.com
1960년 서울에서 태어나 서울사대부고와 고려대 영문학과를 졸업했다. 고려대에서 정치외교학석사 학위, 미국 텍사스대(오스틴)에서 정치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외교안보연구원 교수를 지내다가 고려대 국제대학원 교수로 자리를 옮겼다. 2012∼2013년 외교통상부 제2차관을 지냈다. 현재 고려대 국제대학원 원장과 일민국제관계연구원 원장을 맡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