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북 임실군 강진면에 있는 섬진강댐이 방류를 하고 있다. 주요 댐의 홍수 수위 관련 기준이 오래돼 기후변화를 제대로 반영하지 못하고 있어 개선이 시급하다는 지적이 제기된다./연합뉴스
정부가 전국적인 집중호우로 피해를 당한 지역에 대해 조사위원회를 꾸려 댐 운영 등 원인조사에 나섰다. 이와 함께 이번 홍수를 기후변화로 인한 결과로 보고 홍수관리대책단을 조직해 대책을 마련하기로 했다. 하지만 지난 2018년 국토교통부로부터 업무를 넘겨받으면서 물 관리 일원화를 추진한 지 2년이 지난 뒤에야 기후변화에 따른 홍수대책을 수립하는 것은 뒷북행정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환경부는 17일 브리핑에서 ‘댐관리조사위원회’를 구성해 섬진강댐·용담댐·합천댐 운영에 대한 조사를 시작한다고 밝혔다. 민간전문가 5인으로 구성된 댐관리조사위는 이번 집중호우 기간에 방류량, 방류시기 및 기간, 방류통보 여부 등 운영이 적절하게 이뤄졌는지 살펴볼 예정이다. 조사 결과 운영관리에 문제가 있었다는 사실이 드러나면 관련 법령에 따라 조치할 방침이다.
조명래 환경부 장관이 17일 오후 세종시 정부세종청사에서 댐 운영관리 전반 조사 중, 근본적 대책 마련 착수 계획을 발표하고 있다. /연합뉴스
기후변화에 따른 홍수대책도 수립하기로 했다. 18일 국장급을 단장으로 하는 ‘기후위 대응홍수대책기획단’을 출범시키고 현 상황의 문제점을 진단하는 동시에 근본적인 홍수관리대책을 마련한다. 앞으로 홍수 규모가 얼마나 커질지 예측해 법령 개정을 추진하기로 했다. 이와 함께 피해지역 복구지원 계획도 발표했다. 오는 9월 말까지 하천·하구에 있는 쓰레기를 처리하고 특별재난지역으로 선포된 지방자치단체를 대상으로 60억원 수준의 댐 용수 및 광역상수도 물값 감면을 추진한다. 조명래 장관은 “집중호우와 관련해 신속하고 객관적인 조사를 실시하겠다”며 “이번 홍수를 계기로 앞으로의 기후변화나 이상기후에 대비한 지속가능한 홍수관리대책을 마련하겠다”고 말했다.
정부가 댐 운영 관리 조사에 나선 것은 한국수자원공사 등 관리기관의 수위 조절 실패로 수재가 발생했다는 지역 주민들이 항의가 타당하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기상청 예보보다 더 많은 비가 와서 어쩔 수 없이 방류량을 늘렸다고 핑계를 댄 수자원공사는 이번 수재에 대한 책임을 피하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댐 운영 실태 조사부터 한 뒤 4대강의 홍수예방효과 조사에 나서기로 한 만큼 장마가 끝나기도 전에 홍수 조절 기여 여부를 실증·분석하라고 한 문재인 대통령의 지시가 성급했다는 지적도 나온다. 물관리 일원화 대책이 시급한 상황에서 구체적인 방안이 빠졌다는 비판도 제기된다.
8일 남원시 금지면 귀석리 금곡교 인근 섬진강 제방이 무너지면서 주변 마을이 물에 잠겨 있다. /연합뉴스=전북소방본부 제공
60년전 댐 홍수기준, 기후변화 대응 못해 |
한국수자원공사 등에 따르면 1965년 완공된 섬진강댐의 계획홍수위(EL.m)는 197.7m, 상시만수위 196.5m, 홍수기제한수위는 196.5m로 1961년 설계 당시 기준을 그대로 사용하고 있다. 계획홍수위는 홍수조절을 위해 유입홍수를 저장할 수 있는 최고수위, 상시만수위는 농업용수 등 이수(利水) 목적으로 활용되는 최고수위를 말한다. 홍수기제한수위는 홍수 우려가 큰 매년 6월21일부터 9월20일까지 유지해야 하는 최고수위다.
섬진강댐은 초과 시 안전 문제가 생길 수 있는 계획홍수위와 홍수이기 때 물을 최대한 채울 수 있는 홍수기제한수위 차이가 1.2m에 불과하다. 물이 급격히 유입됐을 때 조절할 수 있는 여유가 거의 없는 셈이다. 댐이 최대한 저장할 수 있는 물의 99.3%를 농업용수나 생활용수 등 이수 목적으로 사용할 수 있도록 하면서 홍수에 대비해 물을 조절할 수 있는 용량은 0.7%에 불과한 기형적 구조다. 댐 특성에 따라 다르지만 섬진강댐의 홍수조절용량은 3,200만㎥인 반면 계획홍수위와 홍수기제한수위 차이가 7.7m인 소양강댐의 홍수조절용량은 5억㎥다.
7~8일 집중호우 당시 섬진강댐은 전날인 6일까지 홍수기제한수위보다 불과 3m 낮은 193.46m 수준에서 수위를 조절했다. 지난해까지 섬진강댐은 7~8월 수위를 180~185m 수준으로 유지했다. 결국 댐 수위가 순식간에 계획홍수위를 넘기면서 붕괴 위험이 생기자 평상시(5일 기준 119.7㎥)보다 10배 많은 초당 1,868㎥를 방류해 피해를 키웠다. 수자원공사는 기상청 예보보다 많은 비가 내렸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방류를 늘렸다고 책임을 회피했지만 실제로는 한계치까지 물을 꽉 채워 운영하다가 댐 운영에 실패한 것이다.
섬진강댐과 동시에 수해가 발생한 합천댐 역시 1982년 설계 이후 기준 수위를 바꾼 적이 없다. 합천댐 홍수조절공간은 3m 수준이다. 이번 집중호우 때도 홍수기제한수위(176m)를 불과 1m 남긴 채로 운영했다. 용담댐은 비교적 최근인 2001년 완공됐지만 설계는 1990년부터 이뤄졌다. 홍수조절공간은 4m로 다른 댐에 비해 여유로운 편이지만 집중 호우가 오기 전부터 이미 홍수기제한수위(261.5m)를 넘긴 상태였다.
안전 문제 때문에 댐 설계 과정에서 정한 뒤 바꿀 수 없는 계획홍수위와 달리 홍수기제한수위는 조절 가능하지만 바꾼 사례가 거의 없다. 정부의 한 관계자는 “설계 당시 기상자료를 종합적으로 검토해 홍수기제한수위 등 기준 수위를 정하는데 한 번도 바꾼 적이 없다”며 “섬진강댐은 오래전 개발한 댐이기 때문에 최근과 같은 극한상황에 대응하기 어려운 측면이 있다”고 말했다. 정부도 댐의 홍수 관련 기준이 시대 흐름과 기후환경 변화를 제대로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을 알고 있다는 얘기다.
전문가들은 섬진강댐의 홍수기제한수위를 최근 기후 변화에 맞게 낮출 필요가 있다고 조언하고 있다. 농업용수 등 이수 공간도 현실적으로 조절해야 한다는 분석도 나온다. 개발 등으로 농경지가 크게 줄면서 농업용수 수요가 감소했는데도 과거 기준에 맞춰 용량을 확보하고 있다는 것이다. 박창근 가톨릭관동대 토목공학과 교수는 “농업용수 등 이수에 너무 많이 신경을 쓰다 보니 치수 공간이 줄어들어 댐을 운영하는 입장에서는 불안감을 느끼는 상황”이라며 “농업용수에 대한 정확한 수요 예측을 통해 적정한 용량을 확보한 뒤 탄력적으로 운용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정세균 국무총리가 집중호우 피해 현장 점검으로 13일 오후 전북 진안 용담댐을 방문해 현황을 보고받은 뒤 댐을 바라보고 있다.계속된 집중호우로 용담댐이 방류량을 늘리면서 하류 지역에 있는 충남 금산군은 인삼밭 침수 및 제방 유실 등 큰 침수 피해를 입었다. /연합뉴스
물관리 일원화 구체방안 없이 변죽만 울려 |
/조지원기자 jw@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