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선욱 "베토벤 음악에 대한 익숙함 지우고 새 소리로 다시 채웠죠"

■ 피아니스트 김선욱 이메일 인터뷰
9월 베토벤 후기 소나타 리사이틀 무대
십수년 탐구·연주한 베토벤임에도 불구
‘청력 잃고 어떤 소리 상상했을까’ 다시 고찰
“새로 느낀 흥분·감동 관객에게 전달하고파”

오는 9월 베토벤 후기 소나타로 관객과 만나는 피아니스트 김선욱/사진=빈체로 제공(Marco Borggreve)

피아니스트 김선욱에게는 ‘베토벤 스페셜리스트’라는 수식어가 따라 붙는다. 2006년 영국 리즈 콩쿠르 우승 이후 베토벤 협주곡 전곡·소나타 전곡 연주에 나서며 악성(樂聖)이 완성한 세계에 천착했다. 오는 9월 베토벤 탄생 250주년을 기념한 리사이틀을 앞둔 그는 그러나 “그동안 기억하던 음표들을 머릿속에서 다 지워버렸다”고 말한다. 비워내고 다시 채워넣는 과정은 ‘새로운 흥분’을 안겨줬다. “내가 느낀 흥분과 놀라움을 청중에게 전달하고 싶다”는 그를 서면 인터뷰로 만났다.

김선욱은 베토벤에 대한 진중한 탐구로 유명하다. 2009년 베토벤 피아노 협주곡 전곡 연주, 2012-2013년 베토벤 피아노 소나타 전곡 연주, 2017년 베토벤 3대 피아노 소나타 리사이틀 등 베토벤을 꾸준히 파고들며 독보적인 해석으로 사랑받아왔다.


그런 김선욱이 2020년 베토벤 탄생 250주년을 기념해 이번 공연에서 선택한 작품은 베토벤 피아노 작품 중 최후의 소나타들로 알려진 베토벤 3대 후기 피아노 소나타(소나타 30·31·32번)다. 심해지는 난청 속에서 오로지 감성과 상상력에 의존해 만들어낸 걸작들이다. 김선욱은 “베토벤 후기 작품에는 모든 것을 초월한, 그의 정수가 담겨있다”고 평가한다. “베토벤 초기는 형식과 구조에서 철두철미했고, 중기에는 엄격한 규율과 규범을 깨뜨린 새로운 형식과 자유로운 음악을 추구했어요. 그리고 말년으로 접어들면서 모든 것을 초월한 신념으로 작품을 만들었다고 생각해요. 베토벤의 정수가 담겨있는 게 후기의 이 3개의 소나타죠.”

오는 9월 베토벤 후기 소나타로 관객과 만나는 피아니스트 김선욱/사진=빈체로 제공(Marco Borggreve)

익숙하고 또 익숙한 베토벤이지만, 이번에는 백지 상태로 돌아갔다. 그리고 ‘청력을 잃은 베토벤이 어떤 소리를 상상하며 음표를 적었을까’ 하는 고민부터 다시 시작했다. “예전에는 이 부분을 깊게 고찰하지 않았어요. 이번엔 연습을 시작하기 전에 악보를 살펴보며 베토벤이 적은 음표와 주문을 그의 처지에서 생각하려고 노력했죠.” ‘내가 만약 아무것도 들을 수 없다면’이라는 가정하에 기억 속의 익숙한 음표들을 모두 지우자 모든 음표가 새로 들렸고, 더 강렬하게 다가왔다. 김선욱은 연주를 통해 이 짜릿한 경험을 관객과 공유하고 싶다고 한다.

베토벤은 김선욱이 생각하는 ‘이상적인 예술가’에 가장 부합하는 인물이다. ‘권위에 굴복하지 않고, 어떤 시련이 와도 음악으로 그것을 극복했던 사람’, ‘이성적인 방법으로 사람의 감정을 움직이는 음악’…베토벤과 그의 음악에 대한 김선욱의 표현에는 애정과 존경이 가득하다. 여기에 한층 깊어진 고찰까지 더해졌으니 그 어느 때보다도 기대되는 무대다.

리사이틀은 예정대로라면 지난 3월 열려야 했다. 당시 코로나 확산으로 한차례 취소된 공연이기에 더욱 소중하다. 김선욱은 “바쁘게 살아왔던 우리가 한 박자 쉬면서 ‘정말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다시 한 번 깊게 고민해보는 한 해가 될 것 같다”면서 “조심스럽게, 최대한 안전을 우선시하면서 예술은 계속되어야 한다는 신념으로 앞으로 상황이 호전되기를 희망한다”고 말했다. 리사이틀은 내달 8일 대구를 시작으로 일산(10일), 부산(11일)을 거쳐 13일 서울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마무리된다. /송주희기자 ssong@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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