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헤지펀드 엘리엇 로고. /홈페이지 캡처
우리 정부와 투자자-국가 간 소송(ISD) 중재 중인 글로벌 헤지펀드 엘리엇이 우리나라 법무부에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경영권 승계 의혹 관련 검찰 수사기록을 요구했다가 기각당한 것으로 나타났다. 수사기록을 공개할 경우 현행법상 피의사실공표에 해당한다는 법무부의 주장을 중재재판부가 수용한 것으로 풀이된다.
19일 상설중재재판소 홈페이지 내 엘리엇-한국정부 간 ISD 코너에 올라온 ‘절차명령 14호’ 문서를 보면 엘리엇은 지난 6월 12일 한국 법무부에 비공개 문서 7개의 제출을 요청했다. 엘리엇이 요구한 자료는 문서들은 이 부회장 구속영장 청구서, 삼성 미래전략실의 ‘M사 합병추진안’, 삼성바이오 상장계획안 등이다. 검찰이 수사 과정서 확보한 것으로 보이는 것들이다. 국정농단 관련 이 부회장의 파기환송심 재판장인 정준영 서울고법 부장판사에 대한 기피 재항고신청서도 요청했다.
엘리엇은 이들 문서가 중재의 핵심 사안에 대한 중요한 문서라고 말했다. 특히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이 경영권 승계 목적에서 벌어진 일이고 한국 정부가 이를 적극 승인했다는 근거라고 주장했다. 또한 합병 당시 주가 방어에 따라 엘리엇이 입은 손실을 입었다는 주장을 뒷받침할 수 있다고 봤다. 검찰의 수사 내용과 엘리엇의 ISD 제소 논리가 비슷하다는 일부의 주장에 따라 수사기록을 참고하려던 게 아니냐는 지적이 가능한 부분이다.
하지만 중재재판부는 엘리엇의 요청을 수용하지 않았다. 이 문서들이 중재와 관련성이 있다고 보이지만 아직 수사가 진행 중이라 공개할 경우 한국 법률상 피의사실 공표죄에 해당한다는 법무부의 주장을 수용한 결과다. 법원이 이 사건에 대해 아직 판단하지 않았다는 점도 고려했다.
다만 이 부회장을 기소한 뒤나 늦어도 법원의 판결 후 엘리엇이 이들 문서를 다시 제출토록 요구할 가능성은 충분해 보인다. 그때는 법무부도 방어할 근거가 사라진다. 오현석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겸임교수는 “현 시점에선 엘리엇이 재차 요청한다 해도 법원의 판단을 기다려야 한다는 입장을 내놓을 가능성이 있다”며 “ISD 중재가 최종 결정까지 오랜 기간이 걸리는 만큼 그 사이에 법원의 판결도 충분히 나올 수 있다”고 말했다. 앞서 중재재판부는 올 2월 엘리엇이 요구한 문형표 전 보건복지부장관과 홍완선 전 국민연금공단 기금운용본부장의 직권남용 사건 재판기록을 제출하라고 결정한 바 있다.
/박준호기자 violator@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