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민에 돈풀기도 이제 끝... 소득 불평등 더 커진다

재난지원금 지급에 가계소득 증가 '착시'
소득격차 4.23배로 소폭 개선됐지만
재난지원금 효과 걷어내면 8.4배로 되레 악화
'약발’ 사라지는 3분기 가계소득, 분배지표 의문

정동명 통계청 사회통계국장이 20일 오전 세종시 정부세종청사에서 2020년 2/4분기 가계동향조사 결과 브리핑을 하고 있다./연합뉴스

올해 2·4분기 가계소득 증가와 소득분배 개선은 긴급재난지원금의 반짝 효과에 기인한 일종의 착시라는 분석이 나온다. 근로·사업·재산소득이 사상 처음으로 일제히 감소했지만, 긴급재난지원금 등 각종 정부 보조금이 포함된 공적이전소득이 127.9%나 급증해 위태로운 가계소득을 지탱했기 때문이다.

취약 계층인 소득 하위 20%의 근로소득도 역대 가장 큰 폭으로 줄어드는 등 타격이 심각했지만, 긴급재난지원금이 가까스로 추가 감소를 막았다. 뒤집어 말하면 긴급재난지원금의 약발이 사라지는 3·4분기 가계소득과 분배 상황은 큰 폭으로 악화할 가능성이 높다는 전망이 제기된다.

20일 통계청이 발표한 ‘2020년 2·4분기 가계동향조사’에 따르면 가구당 월평균 근로소득(-5.3%), 사업소득(-4.6%), 재산소득(-11.7%)은 동반 감소했다. 이는 통계 작성을 시작한 2003년 이후 모든 분기를 통틀어 처음이다. 2·4분기 고용 악화에 따른 취업자 수 감소,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에 따른 자영업 경기 부진 등이 복합적으로 영향을 끼친 데 따른 결과로 보인다.

그럼에도 가구당 월평균 소득이 전년 대비 4.8% 증가할 수 있었던 것은 긴급재난지원금 등 각종 정부 보조금 효과 때문이다. 2·4분기 이전소득(98만 5,000원)은 전년 대비 80.8% 증가했는데 이 가운데 긴급재난지원금을 포함하는 공적이전소득(77만7,000원)은 127.9%나 증가했다. 이 또한 2003년 통계 작성 이래 역대 최대폭 증가다. 정부는 2·4분기에 긴급재난지원금, 저소득층 소비쿠폰, 긴급고용안정지원금, 저소득층 구직촉진수당 등의 정책을 폈다.


특히 소득 하위 20%(1분위) 가구의 월평균 근로소득은 48만5,000원으로 지난해 대비 18.0%나 줄어드는 등 감소 폭이 가장 컸다. 코로나19 여파로 일감 자체가 줄어들며 임시·일용직 종사자 비중이 높은 1분위 가구가 직격탄을 맞은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분위가 낮을수록 긴급재난지원금, 즉 공적이전소득이 전체 소득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커지는 탓에 1분위 전체 소득은 8.9% 증가할 수 있었다. 긴급재난지원금 등 각종 정부 보조금이 일시적으로 방패막이 돼준 셈이다.

분배 지표도 긴급재난지원금 효과를 걷어내면 큰 폭으로 악화했다. 균등화 처분 가능 소득 5분위 배율은 4.23배를 기록해 지난해(4.58배) 대비 0.35배 개선됐다. 소득 5분위 배율은 소득 최상위 20%(5분위 계층)의 평균 소득을 소득 최하위 20% (1분위 계층)의 평균 소득으로 나눈 값으로, 그 수치가 클수록 소득분배가 불균등한 것으로 해석된다. 하지만 긴급재난지원금 등 공적이전소득을 제외한 시장 소득 기준 5분위 배율은 8.42배로 지난해 동기(7.04배) 대비 1.38배나 악화했다. 강성진 고려대 경제학과 교수는 “긴급재난지원금은 물론 정부 재정 지출, 즉 이전소득이 소득분배 개선에 일정 부분 영향을 준 것이지만, 문제는 지속 가능하지 않다는 점”이라고 지적했다.

한편 가구당 월평균 소비 지출은 291만 2,000원으로 전년 동 분기 대비 2.7% 증가했다. 코로나19 여파로 사람들이 집에 머무는 시간이 길어지며 식료품·가정용품 등에서의 소비가 늘어난 반면 자녀 학원비 등 교육, 그리고 여가 부문 소비가 줄었다는 게 특징이다. 식료품, 비주류 음료 지출은 45만 4,000원으로 20.1% 증가, 가정용품·가사서비스 지출은 18만 원으로 21.4% 증가했다. 교육 지출은 16만 8,000원으로 29.4%, 오락·문화 지출은 17만 4,000원으로 21.0% 감소했다.

결과적으로 가구당 월평균 소비 지출은 지난해 대비 소폭 올랐으나, 소득 대비 소비 비율을 나타내는 평균 소비성향은 67.7%로 지난해 대비 2.5% 하락했다. 100만원을 벌면 지난해 2·4분기에는 70만원 이상을 썼는데, 올해 2·4분기에는 67만원만 쓰는 데 그쳤다는 뜻이다. 13조원 규모의 긴급재난지원금 지급에도 불구하고 소비 증가분이 크게 늘어나지 않고 가계가 씀씀이를 줄이는 등 그 효과가 생각보다는 미미했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나아가 2·4분기 1인 가구 월평균 소득은 233만8,918원으로 전년 대비 2.4% 감소했는데 2인 가구 이상을 표본으로 한 가계동향조사에 이 같은 1인 가구 통계까지 합치면 가계소득, 소득분배 실제 지표는 더욱 좋지 않을 것이라는 분석도 나온다./세종=하정연기자 ellenaha@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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