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눈] 여성 게이머의 자리

오지현 바이오IT부 기자


유독 여성 소비자가 환영받지 못하는 시장이 있다. 게임이 그렇다. 여성 게이머(게임 이용자)들은 서비스를 이용하는 고객이면서도 게임 운영사나 게임 내에서 맞닥뜨리는 남성 게이머로부터 배제되는 경험에서 자유롭지 않다.

최근 카카오게임즈의 12세 이용가 모바일 롤플레잉게임(RPG) ‘가디언 테일즈’는 “걸레 같은 X”이라는 비속어를 수정했다는 다소 황당한 이유로 뭇매를 맞았다. 몰래 진행된 ‘잠수함 패치’가 문제라는 일부 남성 유저 항의에 게임사가 공식적으로 사과하며 결국 ‘페미니스트 사냥’에 굴복한 또 하나의 사례가 됐다. ‘남초’ 일변도인 게임 커뮤니티에 가려진 여성 게이머들의 의견과 목소리는 아무도 듣지 않았다.


인게임 성차별 문제 역시 방치되고 있다. 실시간 대전 게임에서 승률을 올리기 위해서는 음성채팅을 통한 ‘브리핑(상황 보고)’이 중요하다. 하지만 여성 게이머는 여성이라는 사실이 드러나는 순간 성희롱·성차별 발언에 노출되기에 자유롭게 게임을 즐기는 데 상당한 제약을 받는다. 여성 게이머의 역할이 수동적이라고 비하하는 ‘혜지’ ‘X르시’ 같은 멸칭도 게임 내에서는 일상적으로 사용된다.

여성 게이머 수는 적지 않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국면에서 가파르게 상승하는 추세다. 지난 7일 발표된 한국콘텐츠진흥원 조사에서 남성 응답자의 73.6%, 여성 응답자의 67.3%가 게임을 한다고 답해 성비 차이가 미미했다. 10대의 경우 그 격차는 더욱 좁아졌고 모바일 게임에서는 여성 유저 비중이 남성을 앞질렀다. 최대 시장인 중국에서도 전체 게이머 인구 중 54.6%(3억5,700만명)가 여성으로, 남녀 비율이 역전된 것으로 나타났다.

게임은 상상력을 기반으로 무엇이든 구현할 수 있기에 특별한 공간이다. 게임 속 캐릭터는 총을 쏘고 하늘을 날고 마법을 시전한다. 게이머들은 현실의 각종 제약에서 벗어나 새로운 에너지를 얻는다. 현실의 도피처인 게임에서조차 반복적으로 차별을 경험한다면 여성 게이머가 설 자리는 점차 좁아질 수밖에 없다. 게임 안에서 여성 게이머들이 ‘보통 사람’만큼만 자유롭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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