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6년 11월 ‘대한뉴스’에 간첩식별요령이 소개됐다. 건전지를 다량으로 사는 사람, 동네 사람에게 이유 없이 친절한 사람, 달러를 소지하고 일정한 직업 없이 돈을 많이 쓰는 사람, 공동변소나 한강 인도교에 낙서하는 사람 등은 간첩으로 의심할 만하다는 것이다. 현재 관점에서 보면 어이가 없지만 당시엔 이 같은 사례에 해당하는 사람들이 종종 어디론가 끌려가 곤욕을 치렀다. 국내뿐만 아니라 미국이나 유럽에서도 수상한 자 취급을 당했다.
책은 김정인 춘천교대 교수 등 역사학자 8인이 집대성한 간첩 조작 역사서다. 책은 간첩을 낳은 분단 사회의 비극을 먼저 설명한 후 북한 남파공작원의 유형과 활동, 남한 공안 기구의 탄생 과정 등 정리했다. 이어 월북자 가족, 재일 한인, 재유럽·미국 한인, 나북귀한 어부 등 피해자 유형, 피해 지역 등으로 나눠 조작 간첩 사건의 진실을 소개한다.
세월이 흐르면서 관심도가 낮아지고 있지만 조작 간첩 사건은 국가가 개인에게 저지른 폭력이자 범죄다. 평범한 시민들을 간첩으로 둔갑시켜 개인과 주변인들의 삶을 무참하게 짓밟고, 국민 통제 장치로 활용했다. 책에는 울릉도 간첩단 조작 사건의 피해자인 최규식 선생의 생전 발언이 실려 있다. “사건 전에는 나와 상관없는 일이라 신경 쓰지 않았다. 하지만 사건을 겪으면서 생각이 완전히 달라졌다. 누구나 역사의 피해자가 될 수 있다” 2만원.
/정영현기자 yhchung@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