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미를 일로 바꾸는 비법을 알려주마

오페라는 어렵다는 편견 깨려고 전직 은행원이 쓴 <운동화 신고 오페라 산책> 한형철 작가 인터뷰
콘텐츠라는 살을 붙였더니 나만의 직업이 생겨

직업을 만드는 사람들이 있다. 한형철 작가가 그렇다.


그의 직업은 오페라 해설가. 음악을 전공한 적도, 오페라 관련 일을 해본 적도 없다. 그저 오페라가 좋아서 오래 듣고 즐겼다.


30여년 간 다녔던 직장에 한파가 몰아닥쳤고 직장을 나와 제 2의 인생을 도모한 지 1년 끝에 찾아낸 세상에 없던 직업이 오페라 해설가다. 취미를 승화시켜 직업으로 만들어낸 케이스다.


한 작가처럼 취미를 직업으로 변환시킨 사람들을 가끔 마주하게 된다. 남들이 하지 못한 일을 하는 사람들에겐 자기만의 비법을 갖고 있기 마련이다. 그를 만나 자세한 이야기를 들어봤다.




<운동화 신고 오페라 산책>의 한형철 작가


-자기 소개 부탁 드린다.


“2017년 명예퇴직했다. 직장생활 때부터 취미로 즐기던 오페라를 더 깊이 파서 지금은 오페라 관련 강연을 하고 있다. 최근엔 <운동화 신고 오페라 산책>이란 책을 냈다.”



-오페라.. 대학에서 전공을 하셨거나 오페라 관련 일을 해오셨던 것인가.


“그렇지 않다. 전 직장이 은행이었다. 30여년 간 금융업무만 했다. 오페라는 그저 취미였다.”



-자, 기본적인 질문부터 해보자. 나 같은 일반인들에게 단어로서 오페라가 익숙하긴 한데, 설명하려고 하면 하기가 어렵다. 오페라는 무엇인가.


“음악과 연기, 무대장치가 한데 어우러진 복합예술이다. 발상지는 이탈리아다. 턱시도와 드레스를 갖춰 입은 가수들이 무대에 올라 이탈리아어로 된 노래를 부르면서 서사를 표현한다. 주로 그리스 비극이 이야기의 축이다. 가수가 부르는 노래를 아리아라고 부르는데 클래식 장르의 음악이 쓰인다.”



취미를 일로 바꾸는 비법을 알려주마!" 직업을 만드는 사람, 오페라 해설가 한형철 작가를 라이프점프TV에서 만나보았습니다. 더 자세한 인터뷰 내용은 '라이프점프' 홈페이지에서 읽으실 수 있습니다.



-업무 관련해서 우연찮은 기회에 오페라를 감상한 적이 있다. 이런 말씀 드리기 겸연 쩍은데, 좀 많이 지루하고 큰 감동은 못 받았던 것 같다.


“(하하)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렇게 생각한다. 무엇보다 사람들이 오페라를 부담스러워 하시기 때문이다. 오페라라고 하면 왠지 격식을 차려야 하고 어렵고 까다로울 것 같고, 이런 선입견이 있다.


그런데 알고 보면 오페라가 그렇지 않다. 와인과 같다고 할까. 예전에 와인은 대기업 회장님만 즐기는 그런 제품이라고 생각했었지. 멀게만 느껴졌던 와인이 지금은 동네 마트에 진열돼 팔린다. 오페라도 조금만 이해하게 되면 친숙해질 수 있다.“



-한국의 오페라 시장은 어떤 수준인가.


“오페라의 본산인 이탈리아를 예로 들어보자. 이탈리아 남부 시칠리아에 마시모 극장이란 곳이 있다. 영화 대부3의 마지막 장면의 배경으로 유명한 곳인데, 이 극장은 연중 10여개 작품을 상연한다. 밀라노 스칼라좌에는 대략 연중 20여개 작품을 볼 수 있다.


반면 우리나라는 국립오페라단에서 연중 5~6개 작품이 상연되는데 그만큼 시장 크기가 작다고 볼 수 있다.



-한 작가님은 어떻게 오페라 세계에 빠져들게 된 건가.


“딱히 특별한 이유는 없다. 어쩌다 접하게 된 오페라의 매력에 나도 모르게 빠져들었다고 할까. 처음에는 낯설고 이해도 잘 안되고 그랬는데 이상하게 큰 호기심이 들었다. 그때부터 극장을 찾아다니면서 오페라를 즐겼다. 그러다가 이탈리아, 프랑스, 스페인 같은 유럽 현지에 가서 오페라 찾아보고 그랬다.




시칠리아 마시모극장 앞에서 한형철 작가


-오페라는 보통 이탈리아어 같은 외국어로 노래를 부르던데, 가사를 해석할 수 없는데 감동을 느끼기가 쉽지 않을 것 같다.


“좋은 지적이다. 오페라를 어렵다고 생각하는 가장 큰 이유가 바로 언어장벽이다. 그런데 잘 생각해보라. 사춘기 시절 한번 쯤은 팝음악에 빠졌던 경험이 있을 거다. 그때 그 가사를 다 이해해서 팝을 즐겼던 것은 아니지 않나.


외국어로 된 오페라를 본다고 해서 그 언어를 모르면 감동이 줄어드는 것은 아니다.


신기하게도 가수의 감정선, 무대장치가 전달하는 극의 분위기, 이런 것들로도 충분히 오페라가 표현하고자 하는 희로애락을 충분히 감지할 수 있다.


영화 <귀여운 여인>에 보면 이런 장면이 나온다. 리차드 기어가 줄리아 로버츠를 데리고 오페라 극장에 가는데 그때 줄리아 로버츠가 말한다. “이탈리아어도 몰라요.” 라고. 그때 남자는 이렇게 대답한다. “몰라도 상관 없어요. 이건 음악이에요. 선율을 느끼면 됩니다. 그건 누구나 할 수 있어요.”


리처드 기어처럼 오페라를 받아들일 수 있게 설명해주는 역할, 그것이 내가 하고 있는 오페라 해설가다.



-오페라 해설가라는 직업이 따로 있는 건가.


“관련 법령이 정하는 직업군에 따로 있는 것은 아니다. 어찌 보면 내가 만든 직업이다.


명예퇴직 후 어떤 신문사에 오페라 관련 글을 기고한 적이 있다. 그때 자기소개를 어떻게 할까 하다가 오페라 해설가를 떠올렸다. 숲에 가면 숲해설가가 있고 궁에 가면 역사해설가가 있는 것처럼 일반인의 눈에서 오페라를 쉽게 받아들일 수 있게 설명해주는 역할이라고 보면 된다.“



-직장을 다니면서 이 직업을 준비했던 건가.


“직장 다니면서? 전혀 그렇지 않았다. 퇴직 시점 되면 그때 고민해볼까, 하는 생각에 그저 일만 했지. 직장생활 힘들어서 ‘때려 치워야지’ 말하고 다니는 사람 치고 퇴사 후를 준비하는 사람, 한 번도 못 봤다. 직장 다니면서 무언가를 준비하는 분들은 정말이지 훌륭한 사람들이다.“



-은행원에서 오페라 해설가로의 전환이 쉽지는 않았을 것 같다.


“초기 우여곡절이 참 많았다. 사실 은행을 관두고 제2 인생을 살아보기 위해서 이것저것 많은 것을 시도해봤다. 누구나 그렇듯 일단 아내와 해외여행부터 갔다 왔다. (하하) 그런데 곰곰이 생각해보니깐 몸은 너무 건강하고 아무래도 오래 살 것 같은데 뭐라도 먹고 살 준비를 해야 할 것 같았다.


가장 먼저 했던 것은 금융관련 강사 자격증을 취득하는 거였다. 열심히 수강해서 자격을 갖췄는데 장벽이 생기더라. 강사 자리를 알아서 찾아서 일하라는 건데 나랑 비슷한 처지인 사람들이 너무 많았다. 이렇게 해서는 인생 2모작으로 안 되겠다 싶어서 바리스타 자격증을 따기로 했다. 자격증 따고 보니깐 이것도 인생 후반을 걸기엔 무리인 것 같았다.


진짜 기술을 배워보자란 생각이 들어서 남부기술교육원에서 목공을 배웠다. 입주비용이 저렴한 곳에 공방을 얻어서 해보자란 생각을 했는데 혼자 하기엔 막막하겠다 싶어서 이것도 접었다.


그러다가 생각해낸 것이 오페라 해설가 일이었다.




한형철 작가는 퇴직 후 일자리 마련을 위해 금융상담사, 커피 바리스타, 목공기술 등을 준비했다.


-은행 퇴직자분들 중에서 금융관련 일을 하시는 분들이 많은데 왜 작가님은 그러지 않으신 건가.


“아까 말했듯 금융관련 일을 생각하지 않은 것은 아닌데 일찌감치 이쪽 일과는 단절하자고 결심했다. 내가 은행을 나온 시점이 2017년인데 그때 은행권에서만 대략 1만여명이 직장을 나왔다. 쉽게 말해서 금융관련 일을 찾는 수요가 너무 많았다. 이 바글바글한 시장에서 경쟁해봤자 큰 의미가 없을 거 같다고 판단했다.”



-그래서 선택한 것이 세상에 없는 직업인데, 그것을 만들어내는 과정이 쉽지 않았을 것 같은데.


“직장을 다니면서 오페라 관련 모임에 참여했었다. 국립오페라극단에서 운영하는 서울 시민 대상 운영위원회 일이었다. 막연하게 오페라 관련 일을 해볼까 하다가, 가족끼리 남산을 놀러 갔다가 숲해설가를 만나면서 영감을 떠올렸다. 숲해설가도 있는데 오페라해설가는 어떨까, 하고.


이 일을 만들어가는 과정이 정말이지 너무 즐거웠다. 기초자치단체에서 운영하는 문화과정을 알아보니깐 오페라 관련 과정이 하나도 없었다. 백화점 문화센터 중에 오페라 과정이 하나 있는 것을 찾아서 그 과정에 들어가는 것을 목표로 차근차근 준비하기 시작했다.“



-어떤 준비를 했나.


“강연을 하려면 콘텐츠가 있어야 하니깐 기록을 남기기로 했다. 그 시점에 누가 블로그를 추천했다. 그때부터 오페라 관련 글을 쓰기 시작했다. 취미로 즐기던 오페라를 막상 글로 정리하려고 하니깐 아직 내가 부족한 것이 많구나, 싶었다. 그래서 책 찾아서 공부하고 기록에 남기는 과정을 반복했고 블로그에 살이 붙기 시작했다.”



-그렇게 얼마나 준비했던 건가.


“대략 1년 정도 내 콘텐츠를 만드는 작업을 진행했다. 이렇게 오랜 시간 준비했는데 내 강연을 듣고 싶어하는 사람이 한명도 없으면 어떡하지, 란 걱정을 안 한 것도 아니다. 즐길 수 있어서 계속 했던 것 같다.


2018년에 서울시가 운영하는 50플러스재단에 강의개설 신청을 넣었다. 그런데 웬걸 최저 인원이 12명인데 숫자가 모자라서 폐강 통보를 받았다.


아무리 생각해도 멋진 아이템 같아서 (하하) 다시 신청을 했고 13명이 신청을 하셨다. 턱걸이로 강의가 열린 건데 다행스럽게도 수업평가가 좋았다. 20개 강좌에서 내가 강평 1등을 했다.


그 강평을 근거로 심화강좌를 열었고 이후 서울 자치구 여러 곳에서 강연요청이 들어왔다.“






-취미를 일로 만들기 위한 오랜 숙성의 시간, 수강자들과의 친밀한 교류, 이런 과정이 매우 흥미롭다. 가장 중요한 질문일 수 있는데 취미를 일로 바꾸는 과정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일까.


“무조건 콘텐츠다. 다른 답이 없는 것 같다. 자신만의 콘텐츠를 쌓는 것에서 출발해야 한다.


주중에 일하고 주말에 쉬고, 이렇게 단순하게 살아온 게 아니라 자기 인생을 즐겁게 만들기 위해 취미를 즐겨온 분들이라면 누구나 자기만의 직업을 만들 수 있는 자격이 있다.


취미를 글로, 사진으로 기록에 남겨보시라. 어떤 분야에서 자신을 도사라고 생각했던 분들도 막상 글로 남기려고 하면 잘 안 될 거다. 내가 그랬으니깐. 글로 남기려 하다 보면 자기가 아는 것과 모르는 것이 분명해진다.


20년 넘게 취미로 즐겼던 오페라를 나는 퇴직하고 더 깊이, 더 많이 학습을 해야 했다. 말로 할 때는 대충 수습이 되는데 글은 정직하더라. 취미를 일로 전환하고 싶은 분들에게 내가 드릴 수 있는 조언은 단 하나, 자기만의 콘텐츠를 만들어보시라는 것이다.“






-자기만의 콘텐츠를 만들라. 나에게도 기억해두고 싶은 조언이다. 감사하다. 끝으로 이 기사를 통해 책 자랑 좀 해보시라.


“오페라에 대한 선입견, 편견을 없애려고 만든 책이다. 그래서 제목도 운동화, 산책 같은 부담 없는 단어를 선택했다.


솔직하게 말해서 내가 썼지만 엄청난 책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서문에도 썼지만 이 책을 컵라면 덮개로라도 쓰길 바랄 뿐이다.


책에 공을 많이 들였다. 챕터마다 QR코드를 넣었다. 유튜브에 업로드돼 있는 아리아로 바로 연결돼 책을 따라 해설을 들으면서 오페라를 감상할 수 있다.


책 아무 페이지나 펴면 편하게 읽을 수 있게 배치했다. 궁금한 게 더 있다면 구매해서 읽어주시면 감사하겠다. (하하)“



/박해욱 기자 spooky@lifejum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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