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YMTC가 연내 양산 예정인 128단 낸드플래시.
중국이 미국의 제재안에 대응해 한국 인력 빼가기 등에 기반한 다양한 ‘편법’을 바탕으로 자체 반도체 공급망 구축에 힘을 준다. 트럼프 행정부는 글로벌 기업을 대상으로 미국 기술이 활용된 반도체를 중국 화웨이에 공급하지 못하도록 하는 등 반도체 굴기의 선봉인 화웨이를 시장에서 퇴출시킨다는 계획이다. 반면 중국은 파운드리(SMIC)·팹리스(유니SOC)·D램(CXMT)·낸드플래시(YMTC) 등 각 반도체 부문에서 대표 기업을 육성하며 미국 제재를 정면돌파하겠다는 방침이다.
23일 반도체 업계에 따르면 국내 모 헤드헌팅 업체는 중국 현지 기업에서 근무할 반도체 식각(Etching) 전문가를 모집 중이다. 해당 공고에는 ‘외국계 유명기업’에 근무할 석사 및 과장급 이상의 인력을 모집중이며 식각이나 플라즈마 관련 경험을 ‘필수’로 요구하고 있다. 식각은 반도체 회로에 패턴을 그리는 공정으로 최근 반도체 공정이 나노(10억분의 1m) 단위로 미세화 되며 중요성이 보다 높아진 공정이다. 플라즈마는 반도체에 얇은 막을 입히는 공정으로 식각 외에도 증착·이온임플란트·세정 공정 등에 사용된다.
중국 CXMT의 DDR4 D램
또 다른 채용 사이트에는 해외에서 근무할 10나노 DDR4 D램 설계 인력을 충원하며 ‘S(삼성전자(005930)), H(SK하이닉스(000660)) 반도체 관련부서 근무자 우대’라는 항목을 아예 노골적으로 표시해 놓았다. 또 최고조건의 연봉을 비롯해 현지 주택 제공 및 자녀 국제학교 보장 등의 파격적 조건도 내걸었다. 반도체 업계 관계자는 “중국업체들이 반도체 인력 확보를 위해 삼성전자의 중국 시안 낸드플래시 공장이나 SK하이닉스의 우시 D램 공장 인력 등에 계속 접촉을 시도중인 것으로 안다”며 “한국 인력들은 중국 기업으로의 이직과 관련한 ‘리스크’를 충분히 인지하고 있지만 안심할 수 없는 상황”이라고 밝혔다.
업계에서는 이 같은 인력 채용이 결국 중국의 반도체 굴기와 연결돼 있다고 보고 있다. 현재 D램 시장에서는 창신메모리(CXMT)가 연내 17나노급 D램을 양산 예정인 것으로 알려졌으며, 칭화유니그룹 산하의 YMTC는 128단 낸드플래시 제품을 올 연말께 양산한다는 계획이다. 실제 이들 업체가 관련 제품을 연내 양산할 경우 한국 기업과의 기술 격차는 1년이내로 줄어든다. 물론 아직 시제품을 받은 곳이 없다는 이야기가 나오는 만큼 일종의 ‘블러핑’에 불과하다는 분석도 나오지만 중국당국의 ‘묻지마 지원’을 감안하면 안심할 수 없는 상황이다.
최근 미국의 화웨이 제재안이 D램과 낸드플래시 등 메모리반도체 공급 제한으로까지 확대되며 반도체 자급과 관련한 중국당국의 절박함이 상당한 것으로 알려졌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모두 KLA, 램리서치, 어플라이드머티어리얼즈 등 미국 반도체 업체의 장비를 사용하고 있어 미국 제재에 동참해야 하기 때문이다.
SMIC 중국 선전 공장.
특히 중국은 최근 자국 반도체 기업 지원을 더욱 노골화 하고 있다. 중국 국무원은 이달 업력 15년 이상의 반도체 기업이 28나노 이하의 미세 공정을 적용할 경우 최대 10년간 법인세를 면제해주는 방안을 추진중이다. 해당 조건을 만족하는 업체는 중국 1위 파운드리 업체인 SMIC 등 극소수에 불과하다. SMIC는 올해 설비투자로 전년 매출(31억1,600만달러)의 2배가 넘는 67억 달러를 집행하겠다고 밝히는 등 화웨이와 거래를 끊은 대만 TSMC의 자리를 대체하겠다는 계획이다. SMIC의 최첨단 공정은 TSMC 대비 3년 이상 뒤진 14나노에 불과하지만 이번 투자 확대를 기반으로 빠르게 7나노까지 업그레이드한다는 계획이다.
중국은 화웨이의 자회사 하이실리콘을 대체할 팹리스 육성에도 속도를 내고 있다. 칭화유니그룹 산하의 유니SOC는 최근 TSMC와의 거래 단절로 모바일 애플리케이션프로세서(AP) ‘기린’ 생산 중단을 검토 중인 하이실리콘 인력을 대거 흡수하며 기술력을 업그레이드 하고 있다. 유니SOC는 5G 통신 통합 AP인 ‘T7520’ 등을 생산 중이며 지난 2017년 IC인사이츠가 선정한 세계 ‘톱10’ 팹리스 업체에 이름을 올릴 정도로 나름 기술력을 인정 받고 있다. 무엇보다 스티브 추 유니SOC 최고경영자(CEO)가 하이실리콘 최고전략책임자(CSO) 출신이라 중국 당국의 ‘보이지 않는 손’ 등을 바탕으로 양사간 인력 이동이 계속될 가능성이 높다. 중국은 메모리 반도체 부문은 한국인력을, 팹리스와 파운드리 부문에서는 대만 인력을 각각 선호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이 같은 중국의 꺾이지 않는 반도체 굴기는 삼성전자·SK하이닉스에게 큰 위협이다. D램 대비 상대적으로 기술 진입장벽이 낮은 낸드플래시 부문에서는 중국 업체들도 어느정도 성과를 내고 있는 것으로 알려진데다, 내수용 제품에는 자국 반도체 기업 육성을 위해 품질이 조악한 메모리 반도체를 일부 사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파운드리와 모바일 AP는 삼성 ‘반도체 비전 2030’의 핵심 사업부문이라는 점에서 이 또한 피해가 예상된다. 실제 화웨이는 자국산 부품만을 사용해 제품을 내놓는 일명 ‘난니완’ 프로젝트를 최근 시작하며 이 같은 우려를 부추기는 모습이다.
중국의 반도체 굴기는 미국의 견제에 연이어 실패하고 있다. 중국 칭화유니그룹은 지난 2015년 글로벌 D램 3위 업체인 마이크론 인수에 나섰지만 미국 당국의 불허로 무위에 그쳤다. 대만 UMC와 D램 생산에 나섰던 중국 푸젠진화 또한 미국이 ‘기술 유출’ 혐의를 제기하며 반도체 장비 수출을 막아 관련 시장 진출에 실패했다. 다만 중국이 △반도체 특허도용 △인력 빼가기 △중국 정부의 묻지마 지원 등을 바탕으로 다양한 반도체 굴기 방안을 시도하고 있어 안심할 수 없는 상황이다.
/양철민기자 chopin@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