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인수 숙명여대 교수
미국의 46대 대통령 선거가 오는 11월3일로 다가왔다. 선거결과가 세계 경제질서에 미치는 영향이 크기 때문에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재선 여부에 전 세계의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불과 한 달 전만 해도 각종 여론조사에서 민주당의 조 바이든 후보가 10%포인트 이상 앞서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러나 지난 8월17일 CNN 여론조사에서 그 격차가 4%포인트로 대폭 줄었다. 특히 플로리다·미시간 등 경합주 15곳에서 바이든 49%, 트럼프 48%로 나타나 1%포인트 차이밖에 나지 않았다.
지난 대선 경험에 비춰보면 여론조사 결과를 전적으로 믿기는 어렵다. 그러나 미국의 독특한 선거제도와 여론 추이를 감안하면 트럼프의 재선 가능성이 한층 커진 것은 사실이다. 남은 기간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의 2차 팬데믹에 대해 어떻게 대처하는가가 가장 큰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미국의 코로나19 확진자 수는 8월22일 기준으로 560만명을 넘어 전 세계 확진자의 24.3%를 차지하고 있다. 미국의 확산세가 정점을 지났다는 평가도 있지만 재확산 가능성은 얼마든지 있다.
오바마케어 폐지와 초기 대응 실패로 방역후진국을 만들었다는 비난을 받고 있는 트럼프 대통령은 백신 개발과 확보를 통해 9회말 역전홈런을 노리고 있다. 틈만 나면 중국 책임론을 거론하면서 아직 개발되지도 않은 코로나19 백신 8억회 투여분을 입도선매했다. 미국은 이미 코로나19 백신 개발과 확보에 100억달러 이상을 투입했다.
테워드로스 아드하놈 거브러여수스 세계보건기구(WHO) 사무총장이 주장한 것처럼 빠른 팬데믹 종식과 경제활동 재개를 위해서는 몇몇 국가의 전체 국민보다는 전 세계의 고위험군을 보호하는 것이 우선돼야 한다. 즉 효과적인 팬데믹 대응은 집단적이어야 하기 때문에 백신을 공유하는 것이 각국의 이익에 부합한다. 이를 위해 WHO는 회원국에 글로벌 백신 공급 메커니즘인 ‘코백스(COVAX)’ 가입을 독려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국을 비롯한 대부분 선진국들은 ‘백신 민족주의’에 열을 올리고 있다. 자칫하면 ‘백신의 무기화’가 진행될 가능성도 있다. 러시아가 자체 개발해 세계 최초로 등록한 코로나19 백신 ‘스푸트니크 V’는 3상 임상시험을 거치지 않았기 때문에 안전성과 효율성이 담보되지 못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중동국들을 포함한 여러 나라가 임상 참여와 물량확보에 나서고 있다. 미국 대선 이후에는 질병·보건·방역 등 신흥 안보위협에 대처하기 위한 협력방식 등의 문제가 새롭게 대두될 것이다.
바이든 민주당 후보는 ‘비정상’을 ‘정상’으로 되돌려놓겠다는 슬로건을 내세우면서 외교·안보·경제·이민 등 대부분 분야에서 트럼프 대통령과 대척점에 서 있다. 그러나 중국에 대해서는 오히려 더 강경한 ‘트럼프 플러스’ 입장을 취하고 있다. 최근 공개한 ‘2020 민주당 강령’에서 경제문제는 물론이고 중국이 민감해하는 인권·환경 문제에서도 유럽연합(EU) 등과의 ‘다국적 협력’을 통해 강력하게 중국을 압박하겠다는 점을 분명히 하고 있다. 결국 누가 되든 미국의 중국 때리기는 더 심해질 것으로 봐야 한다.
트럼프 행정부는 중국의 지식재산권 도용과 기술이전 강제, 과도한 정부보조금에 의존하고 있는 국영기업 문제를 더 이상 방관하지 않겠다는 의지가 확고하다. 17일에도 화웨이가 사실상 모든 종류의 반도체를 공급받지 못하도록 ‘수출관리규정’을 재개정했다. 미국은 공산당 체제 유지, ‘중국제조 2025’를 통한 핵심기술 확보, 하나의 중국(일국양제 폐기) 등 중국의 핵심이익을 본격적으로 공격하기 시작했다. 중국을 배제한 미국 중심의 ‘경제번영네트워크(EPN)’를 통한 연합공동체 결성을 촉구하고 인공지능(AI) 등 민감기술 보호를 위한 강력한 ‘다자간 행동(MAST)’을 주도하고 있다.
미국 대선 이후 누가 되더라도 글로벌 공공재를 책임질 의지가 없기 때문에 국제질서의 불확실성은 더욱 커질 것이다. 그러나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안보’ 영역이 ‘첨단기술’은 물론 ‘방역’까지 확대될 것이라는 점이다. 특정 국가에 대한 과도한 의존도를 줄이고 여러 국가와의 선택적 협력을 확대해나가기 위해서는 방역은 물론 디지털 기술을 포함한 첨단기술 분야에서 스스로의 핵심역량을 키워 ‘전략적 자율성’을 확보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특히 첨단기술 산업 분야를 중심으로 새로운 형태의 경제블록이 만들어질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정부는 물론 기업들도 이에 대한 철저한 대비를 해나가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