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안의 금융’ 지위를 놓고 전통 금융사와 플랫폼 대기업들의 패권전쟁이 본격화하는 가운데 기존 금융사에만 적용되는 과도한 규제를 혁파하고 기울어진 운동장을 바로잡지 않으면 생존조차 불가능하다는 위기의식이 금융 업계 전반에 고조되고 있다. 금융사 최고경영자(CEO)들은 빅테크와의 역차별 해소를 가장 시급히 해결해야 할 과제로 꼽으며 과도한 규제와 빅테크의 위협으로 미래 성장을 담보할 수 없게 됐다고 우려했다. 23일 서울경제가 금융지주·은행·보험·카드·저축은행 등 주요 금융사 37곳의 CEO를 대상으로 진행한 설문조사에서 CEO 10명 중 4명 이상이 가장 시급하게 혁파해야 할 규제로 ‘빅테크와의 역차별(42.9%)’을 꼽았다. 전통 금융사에 과도하게 적용하는 신사업 투자 관련 규제와 무분별한 금융소비자 보호 정책을 완화해야 한다는 응답도 각각 21.4%, 17.1%에 달했다.
주요 금융사들은 일찌감치 빅테크의 금융업 진출에 대비해 디지털트랜스포메이션(DT)에 전폭적으로 투자해왔다. 그러나 네이버·카카오 등 빅테크의 금융영토 확장이 본격화되면서 전통 금융사들은 대등한 경쟁은커녕 플랫폼에 금융상품을 납품하는 하청업체로 전락할 위기에 놓였다. 반드시 쟁취해야 할 최후의 금융 라이선스로 꼽히는 마이데이터(신용정보관리업)의 경우 은행들은 허용 업무를 나열하는 화이트리스트 방식의 은행업 감독규정을 동시에 적용받는 탓에 제한된 업무만 허용될 것으로 보인다. 신용결제업 헤게모니를 위협받고 있는 카드 업계와 영업권 규제가 여전히 발목을 잡는 저축은행들의 위기의식도 만만치 않다.
금융당국이 ‘동일 기능 동일 규제’ 원칙 속에 전자금융거래법을 전면 개정하고 플랫폼 사업자에 대한 규제를 강화하겠다는 방침을 밝혔으나 금융 CEO들의 불만은 여전했다. 간편결제 업체에 대한 건전성 규제 강화, 플랫폼 사업자의 상품정렬 개입 금지 등의 새로운 규율이 마련될 예정이지만 CEO들은 지금까지 당국이 약속한 조치만으로 예상되는 규제 형평성 수준은 10점 만점에 평균 3.9점에 불과하다고 응답했다.
빅테크의 위협이 본격화되면서 금융사의 미래금융 준비 수준을 묻는 질문에서도 자신감이 떨어졌다. 치열해지는 금융영토 경쟁에서 자사의 경쟁력 수준을 묻는 질문에 CEO들은 7점을 줬다. 하지만 빅테크 대비 경쟁력을 묻는 질문에는 6.4점으로 후퇴했고 0점을 매긴 CEO도 있었다.
/서은영기자 supia927@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