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경이 만난 사람]석영철 "전기차 등 5대산업 데이터플랫폼 구축…3년내 민간 공개"

■석영철 한국산업기술진흥원장
포스트코로나 '산업지능화'가 핵심, 기업 신사업 길잡이로
한국판 뉴딜에 해외 공략도 담아야…혁신 TF 구성 지원
글로벌 공급망 재편…외국기업 유치·리쇼어링 기회 잡아야

[서경이 만난 사람]석영철 한국산업기술진흥원 원장./권욱기자

“오는 2023년까지 전기차 부품과 바이오 및 섬유 소재, 웨어러블, 개인 간 거래(P2P) 등 5대 산업의 데이터 플랫폼을 구축해 기업 등 민간이 활용할 수 있게 공개할 계획입니다.”

석영철 한국산업기술진흥원(KIAT) 원장은 23일 “각 산업에서 발생하는 데이터를 인공지능(AI)으로 분석해 기업이 새로운 부가가치를 찾을 수 있게 하는 ‘산업 지능화’가 포스트 코로나 시대를 대비한 핵심 산업 전략”이라며 이같이 밝혔다. 석 원장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 후 단순히 대면 접촉을 디지털로 대체하기 위해서가 아닌 ‘산업 지능화’를 통해 제조업의 체질을 근본적으로 바꿔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가 주도하는 산업별 데이터 플랫폼은 제품 개발과 생산·물류·유통 등 각 단계에서 발생하는 데이터를 모아 분석해주는 도구로 기업이 신규 사업 모델을 탐색하는 길잡이가 될 것으로 전망된다.

석 원장은 또 “모든 한국판 뉴딜 사업에는 ‘글로벌 퍼스펙티브(시각)’를 더해야 한다”고 강조해 해외시장 진출과 연계된 신사업들에 관심을 촉구하는 한편 다음달 구체적인 산업 혁신 계획을 발표하겠다고 말했다. 그는 “코로나19 사태로 기업들이 글로벌 공급망 구축에서 경제성 이상으로 안전성을 중시하게 됐다”며 “일본에서 소재·부품·장비산업의 독립은 시간이 갈수록 확고해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대담=손철 경제부 차장 runiron@sedaily.com

석 원장은 서울 역삼동 기술센터에서 서울경제와 1시간가량 진행한 인터뷰에서 산업 지능화와 한국판 뉴딜의 성공을 우선 강조했다. 그는 노동 생산성 측면에서도 산업 지능화가 긍정적 효과를 가져올 것으로 예상하며 “이전에도 산업 활동에서 데이터는 늘 생성됐지만 이를 수집하고 가공하는 노력은 미진했다”고 안타까워했다. 석 원장은 “한국이 노동 시간에 비해 생산성이 저조했던 이유도 결국 ‘산업 지능화’가 뒷받침되지 못했기 때문”이라며 “주요 산업마다 데이터 플랫폼을 구축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전기차 부품업의 경우 배터리나 카메라 등에서 발생하는 데이터, 자동차 운행 과정의 주행거리 등 정보, 노선별 교통량 또는 날씨와 상관관계 등이 축적되면 전기차 부품의 성능을 개선함과 동시에 이를 금융회사와 함께 보험 상품으로 개발해 부가 수익을 낼 수도 있다”고 설명했다.

석 원장은 또 정부가 추진하는 ‘한국판 뉴딜’ 정책에 대해 코로나19 위기를 극복하고 4차 산업혁명으로 이어져온 산업 지형 변화에 부응할 수 있는 방안이라고 기대를 표하면서도 “한국판 뉴딜에는 꼭 글로벌 시장에 대한 관점이 중요한 부분으로 고려돼야 한다”고 제안했다. 그는 “한국판 뉴딜 사업들은 전 분야에서 해외시장 진출을 가미해야 큰 성과를 거둘 수 있을 것”이라며 “5,000만 인구에 불과한 내수시장만 겨냥해서는 자칫 ‘우물 안 뉴딜’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한국판 뉴딜에 관련된 사업들은 시작부터 해외 진출을 염두에 두고 설계될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국내 산업기술정책의 기획과 기술 사업, 연구 기반 구축 등을 전담하는 기술진흥원도 한국판 뉴딜에 발맞춰 지난달 ‘혁신태스크포스(TF)’를 내부적으로 꾸렸다. 석 원장을 단장으로 한 혁신TF는 적극 행정, KIAT 뉴딜, 일자리, 포스트 코로나 4개 분과로 구성됐다. 지난 6월 기술진흥원이 포스트 코로나로 촉발된 산업구조 전환에 대응하기 위해 △신산업 육성 활성화 △주력산업 활력 제고 △소부장 경쟁력 강화 등 3대 중점과제를 추진하겠다고 밝힌 바 있는데 이들 과제도 한국판 뉴딜 사업 활성화에 초점을 맞춘다는 계획이다.


석 원장은 “현재 고비만 넘기면 된다는 위기극복형 혁신으로는 부족하고 언제 닥칠지 모르는 위기에 대비해 상시 혁신체제로 전환해야 한다”면서 “혁신TF의 경우 각 분과별로 민간 전문가와 심도 있는 논의를 통해 다음달 구체적인 산업혁신 계획을 선보일 예정”이라고 말했다.

석 원장은 코로나19 사태로 ‘글로벌 밸류체인(GVC)’이 급변하는 상황에서 이를 최대한 기회로 활용, 국내 기업 유턴과 외국인 기업 유치 확대를 이룰 수 있을 것으로 기대했다. 각국은 최근 해외에 진출한 기업을 다시 본국으로 복귀시키는 리쇼어링(reshoring) 등 글로벌 공급망 재편 작업이 한창인데 이처럼 판이 흔들릴 때 한국이 좋은 위치를 선점할 기회를 갖고 있다는 것이다. 그는 “한국은 과거 해외 주요 제조사의 납품사로 선정되는, 즉 글로벌 공급망에 참여하는 것만으로 기뻐했던 시절이 있었으나 (코로나19로) 이제는 우리에게도 기회가 온 것”이라며 “글로벌 산업 관계를 정밀하게 파악해 기존 제조업뿐 아니라 디지털 접목으로 고부가가치를 더한 첨단 부품, 서비스를 제공한다면 코로나19가 안정된 후 ‘한국이 공급망 주요 포스트를 선점하고 있다’는 평가를 받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석 원장은 공급망 재편과 관련해 국내 대기업의 인식 역시 변화할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그는 “비용이 저렴한 개발도상국에서 부품을 공수해오던 글로벌 제조기업들은 공급망의 신축성과 유연성을 높이는 방향으로 전략을 수정하고 있다”며 “국내 부품업체들의 수요처인 대기업도 단순히 경제성만을 따져 중국·동남아 등 인건비가 낮은 생산기지를 활용하는 방식에서 벗어날 필요가 있다”고 권했다. 앞으로는 부품 조달이 중단될 우려가 적은 공급 안전성이 아웃소싱의 중요한 기준이 될 수밖에 없다는 진단이다.

정부도 이 같은 인식 아래 지난달 한국을 ‘세계 첨단산업 공장’으로 탈바꿈하고 차세대 첨단기술을 확보하는 내용을 핵심으로 한 ‘소재·부품·장비(소부장) 2.0’ 전략을 내놓은 바 있다. 오는 2022년까지 차세대 전략기술을 확보하는 데 5조원 이상을 집중 투입하고 특히 바이오·시스템반도체·미래차 등 ‘빅3 산업’에는 2조원 규모의 투자를 내년에 집행할 예정이다.

소부장 2.0은 또 외국인 투자와 해외 진출 기업들의 국내 유턴 역시 첨단 산업 분야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첨단 분야 투자에 대한 세액공제 범위를 넓히고 첨단 산업 유치 및 유턴에 소요되는 보조금과 인프라에 5년간 1조5,000억원을 지원하는 형태다. 기존 산업단지 같은 경제특구를 첨단투자지구로 지정해 외국인 투자와 유턴을 집중하겠다는 계획도 담았다. 석 원장은 “우리나라 방역 물자와 시스템, 즉 ‘K방역’이 해외에서 주목받는 것은 방역 산업 자체의 해외 진출 기회임과 동시에 다국적 기업과 글로벌 연구소를 국내로 유치할 수 있는 계기”라며 “코로나19로 떠오른 한국의 강점을 잘 살려야 한다”고 역설했다.

기술진흥원도 국내 첨단 산업의 기술력 제고를 위해 민관 공동으로 1조8,000억원 규모의 산업기술정책 펀드를 운영하고 있다. 이 중 올해 결성된 펀드는 4개, 2,785억원 규모다. 14개 비수도권 지역에 기술이전 사업화를 추진하는 중견·중소기업이 투자 대상인 지역사업 활력 펀드를 비롯해 일본의 수출규제로 중요성이 부각된 소재·부품·장비 기업이 투자 대상인 기프트(GIFT) 2호 펀드, 데이터·네트워크·AI 등의 자금 지원을 목적으로 하는 디지털 산업혁신 펀드 등이다.

기존 전통산업들이 위기를 맞으면서 신산업 육성의 중요성도 어느 때보다 커졌다. 기술진흥원은 국내 대표적 신산업 육성책인 산업통상자원부의 산업융합 규제 샌드박스와 중소벤처기업부의 규제자유 특구를 관리하는 전담 기관이다. 지난해 초부터 시행된 산업융합 규제 샌드박스는 올해 상반기까지 총 59건의 신사업을 승인했고 규제자유특구 역시 지난해 4월 첫 시행 이후 지난달까지 총 126개 신사업을 승인하고 21개 특구를 지정하는 등 성과를 거뒀다. 6월에는 해외에 체류 중인 국민이 애플리케이션에 병증 등을 기록하면 국내 의료진이 전화 또는 화상으로 진료할 수 있는 비대면 진료·상담 서비스 2건이 최초로 산업융합 규제 샌드박스 사업에 선정되기도 했다. 코로나19로 재외국민의 치료권이 위협받자 의료계 반발에 막혀 십수년째 허용되지 않고 있는 원격 의료가 시범 사업으로나마 허가된 상징적인 사례다.

그러나 이 같은 규제 완화 사업은 승인 건수를 늘리는 양적 성장에 치중했다는 비판도 제기된다. 석 원장은 이에 대해 “신사업을 시장에 진입시켰다고 끝이 아니라 사업화 이후에도 지원이 이어져야 한다”며 “규제 샌드박스를 통과한 업체들이 시범 사업에 필요한 자금 지원이나 실험적 사업들로 인한 사고 발생 시를 대비한 책임보험 가입 등이 절실하다는 의견이 많은 만큼 이 같은 측면에서 지원책을 내놓기 위해 준비하고 있다”고 말했다. /정리=조양준기자 사진=권욱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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