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훈(왼쪽) 국가안보실장과 양제츠(오른쪽) 중국 공산당 외교담당 정치국 위원이 지난 22일 오전 부산 웨스틴조선호텔에서 회담하고 있다. /연합뉴스
“한국 측도 다자간 국제협력을 강화하고 다자주의와 자유무역을 수호하기를 희망합니다.”
중국의 외교정책을 이끄는 양제츠 중국 공산당 외교담당 정치국 위원이 지난 22일 부산 웨스틴조선호텔에서 서훈 국가안보실장을 만나 이 같은 입장을 전달했다고 중국 신화통신이 23일 보도했다.
미중 갈등이 날로 격화되는 상황에서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외교 책사’인 양 위원이 미국의 압박에 동참하지 않는 유연한 외교를 당부한 것으로 해석된다. 우리를 향한 미중 양국의 구애가 표면화되면서 두 강대국 사이에 낀 ‘줄타기 외교’는 더 아슬아슬해지고 있다.
청와대에 따르면 양 위원과 서 실장은 22일 오전9시30분부터 4시간 동안 회담을 가진 데 이어 오후1시30분부터 3시20분까지 오찬 협의를 진행했다. 6시간을 함께한 양 위원과 서 실장은 밝은 표정으로 “좋은 대화였다”고 입을 모았다. 양측은 회담에서 △시 주석의 조기 방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대응 협력 △경제교류 확대 등을 심도 있게 논의했다고 강민석 청와대 대변인이 전했다.
서훈(왼쪽) 국가안보실장과 양제츠 중국 공산당 외교담당 정치국 위원이 지난 22일 오후 부산 웨스틴조선호텔에서 회담을 마친 뒤 보도진 질문에 답하고 있다. /연합뉴스
특히 눈에 띄는 대목은 ‘미중 갈등’에 관해 양 위원이 언급한 부분이다. 양 위원은 최근 미중 관계에 대한 현황과 중국 측 입장을 설명했다고 강 대변인은 밝혔다. 신화통신 역시 양 위원이 미중 관계에 있어 원칙적인 입장을 상세히 설명했다고 전했다. 서 실장은 이에 대해 “미중 간 공영과 우호협력 관계가 동북아 및 세계의 평화와 번영에 중요하다”는 입장을 밝혔다.
우수근 콘코디아 국제대 대외교류 부총장은 “양 위원은 한국이 미국 편에 서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뜻을 전한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하면서 “반면 서 실장은 다소 애매모호하게 미중 갈등 문제는 미중 양국이 해결해야 할 문제라는 입장을 전달한 것으로 해석된다”고 밝혔다. 외교가에서는 양 위원이 중국에 대한 ‘지지’까지는 아니더라도 최소한 ‘중립적 태도’를 우리에게 요청했을 가능성이 클 것으로 보고 있다.
갈등을 격화하는 미중 정상. /연합뉴스
이날 청와대가 공개한 양측의 논의 역시 주로 ‘경제’와 관련한 것으로 미중 갈등 속 한중 관계를 더 끈끈히 하려는 중국 측의 의도도 엿보인다. 양측은 △한중 자유무역협정(FTA) 2단계 협상 가속화 △역내포괄적경제동반자협정(RCEP) 연내 서명 △제3국 시장 공동진출 △신남방·신북방 정책과 ‘일대일로’의 연계협력 시범사업 발굴 △인문교류 확대 △지역 공동방역 협력 △세계무역기구(WTO) 사무총장 선거 등에 대해 의견을 교환하면서 폭넓은 공감대를 이뤘다고 강 대변인은 전했다.
일각에서는 미중 갈등의 최대 화두인 ‘화웨이 살리기’ 문제가 이날 회담 테이블에 올랐을 가능성도 높다는 관측이 나온다. 앞서 로버트 스트레이어 미국 국무부 부차관보는 한국의 LG유플러스를 꼭 집어 지목하면서 화웨이 장비의 사용 중단을 요구하기도 했다.
양측은 코로나19 확산 사태가 안정화되는 대로 시 주석의 방한을 조기 성사시키기로 합의했으나 방한 시기를 ‘연내’로 못 박지는 않았다. 중국 측은 다만 ‘한국은 시 주석이 우선적으로 방문할 나라’라는 입장을 내놓았다. 양 위원은 또 서 실장이 조기에 중국을 방문해줄 것을 요청했고 외교 채널을 통해 이를 협의하기로 했다.
이희옥 성균관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양 위원의 방한을 계기로) 한국의 경제적 이익을 극대화할 수 있는 방안이 뭔지 찾아야 한다”면서 “북한의 비핵화를 위한 중국의 역할도 적극적으로 주문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윤홍우·허세민기자 seoulbird@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