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과대학 정원 확대 등 주요 의료 정책에 대해 신경전을 벌이던 정부와 의료계가 결국 ‘업무개시 명령’과 ‘무기한 총파업’이라는 강수를 두며 거세게 충돌했다. 정부가 26일 오전 8시를 기점으로 수도권에서 집단 휴진에 돌입한 전공의·전임의들에게 업무개시 명령을 발동하자 대한의사협회가 “명령으로 불이익을 볼 경우 무기한 총파업을 강행하겠다”는 입장을 밝힌 것이다.
업무개시명령 내리는 박능후 보건복지부 장관/연합뉴스
26일 박능후 보건복지부 장관은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브리핑에서 “정부는 오늘 오전 8시 기해 서울, 경기, 인천 등 수도권 소재 수련병원에 근무 중인 전공의, 전임의를 대상으로 즉시 환자 진료 업무에 복귀할 것을 명령했다”고 밝혔다.
정부는 그간 의료계 집단 휴진을 둘러싸고 정부는 의료계와 대화를 통해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입장을 밝힌 바 있다. 하지만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 수도권을 비롯해 곳곳에서 빠르게 확산하자 당장의 ‘진료 공백’을 방치할 수 없다는 취지에서 강경 조치를 내린 것이다. 박 장관은 “국민의 생명과 안전에 위험이 발생하지 않도록 업무개시명령 등 필요한 법적 조치를 취할 수 밖에 없다”며 “응급실과 중환자실에서 촌각을 다투는 환자의 생명을 위협하는 진료공백을 방치할 수 없다”고 강조했다.
복지부 측은 최근 정세균 국무총리와 의료계가 대화에 나선 데 이어 복지부 장관과 의협 회장이 만나 ‘의대 정원 통보 등 일방적 정책 추진을 강행하지 않는다’ 등의 내용을 담은 합의문을 마련했지만 끝내 휴진을 막지는 못했다는 입장이다. 박 장관은 “마지막 순간 의사협회와 합의를 이뤄 쟁점 정책 추진과 집단휴진을 중단하고 대화와 협의로 문제를 해결하기로 동의한 적도 있었으나, 전공의협의회의 투쟁 결정에 따라 입장을 번복한 점은 심히 유감스럽다”고 말했다.
복지부는 이날 수도권 수련병원의 응급실과 중환자실부터 현장 조사를 통해 명령을 준수하고 있는지 등을 확인할 방침이다. 또 수련병원의 수술·분만·투석실과 수도권의 응급·중환자실, 비수도권의 수술·분만·투석실 등 필수 진료 부문에 대해 순차적·개별적으로 업무개시 명령을 발령하겠다는 입장이다. 의대생들의 국가시험에 대해서도 본인 여부를 확인하고 취소 의사를 다시 물은 뒤 응시 취소 처리할 예정이다.
복지부는 의료기관의 집단 휴진에 대해서도 엄정하게 대응할 방침을 밝혔다. 박 장관은 “집단 휴진하는 의원급 의료기관 역시 참여율이 10%를 넘어 진료에 차질이 발생한다고 각 지자체에서 판단하면 해당 보건소에서 업무개시명령을 내릴 수 있다”며 “집단행동 과정에서 발생하는 불법 행위에는 엄정하게 대처하겠다”고 말했다.
파업 관련 입장발표하는 최대집 의협 회장/연합뉴스
이에 대해 의료계는 “의사들의 단체행동권을 부정하는 악법”이라며 강하게 반발했다.
정부 의료 정책에 반발해 집단휴진을 예고한 수도권 전공의·전임의들에 정부가 26일 업무개시 명령을 내린 상황을 두고 의협이 “의사들의 단체행동권을 부정하는 악법”이라며 강하게 반발했다.
최대집 대한의사협회 회장은 2차 총파업 첫날인 이날 온라인으로 열린 의협 궐기대회에서 “정부의 업무개시 명령은 의사들의 단체행동권을 부정하는 악법”이라며 “위헌적인 이 법은 소송을 통해 반드시 폐기돼야 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그는 이어 “정부가 내린 업무개시명령에 불응한 후배 의사 단 한 명에게라도 행정처분이나 형사고발 등 무리한 행정조처가 가해진다면 전 회원 무기한 총파업으로 강력히 저항하겠다”고 했다.
의협은 정부가 집단휴진을 공정거래법 위반으로 공정거래위원회에 신고하겠다고 한 것에 대해서도 물러서지 않겠다는 입장이다. 최 회장은 “2014년 원격의료 저지투쟁 당시에도 노환규 회장과 방상혁 기획이사가 고발당했지만, 작년 1심 판결에서 무죄가 났다”며 “집단휴진은 공정거래법 위반이 아니”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의사들의 요구사항을 사회에 관철할 방법이 많지 않아 진료에서 손을 떼는 최종적인 수단을 선택했다”며 “그렇지만 코로나19로 상심했을 국민 여러분께 죄송하다”고 덧붙였다.
한편 정부가 의료기관이 아닌 의사인 전공의·전임의 등 의사에게 업무개시명령을 내린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정부는 2000년 의약분업 사태, 2014년 원격의료 반대 때 업무개시명령을 내렸는데 당시 집단휴진에 참여한 의원급 의료기관이 주된 대상이었다. 업무개시명령을 정당한 이유 없이 따르지 않으면 면허정지 처분이나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3,000만원 이하의 벌금형을 받을 수 있다. 의료인의 경우 의료법 위반으로 금고 이상의 처분을 받으면 의료인 결격 사유로 인정돼 면허가 취소될 수 있다.
/김경미기자 kmkim@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