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의사 2차 총파업 첫날인 26일 서울 서초구 서울성모병원에서 전공의들이 피켓 시위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정부-의료계가 ‘2차 집단 휴진’ 당일인 26일 새벽까지 대화해 도출한 잠정합의안이 전공의들의 반대로 타결되지 못했다는 정부 주장에 대한의사협회가 강하게 반박했다. 이날 보건복지부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상황이 안정될 때까지 의과대학 증원 등 정부 정책을 중단하는 대신 의료계는 집단 휴진을 철회해달라는 내용의 ‘의·정 합의’를 도출했지만 전공의 단체인 대한전공의협의회(대전협)가 반발해 무산됐다는 입장을 밝혔다. 하지만 의협 측은 “일부 언론과 정부에서 말하는 내용은 단지 정부의 ‘제안’일뿐 ‘합의’가 아니었다”며 정부의 주장을 정면으로 반박했다.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박능후 복지부 장관과 최대집 의협 회장은 전날 저녁부터 이날 새벽까지 비공식 대화를 이어가며 해결책을 모색했다. 양측은 상황이 심각해지고 있는 코로나19 사태에 대응하기 위해 의과대학 증원 정책 등 신설 의료 정책 추진을 중단하고 의료계는 집단 휴진을 철회한다는 합의에 이르기도 했지만 끝내 최종 타결에는 이르지 못했다. 그렇기에 의협은 이날부터 28일까지 예고했던 2차 집단 휴진에 돌입했다.
업무개시명령 내리는 박능후 보건복지부 장관/연합뉴스
하지만 합의가 결렬된 이유에 대해서는 정부와 의료계의 입장이 전혀 다르다. 정부는 의협과 정부가 어느 정도 합의에 도달했지만 ‘정책의 완전한 철회 없이는 파업을 중단할 수 없다’는 전공의들의 반발에 의협 역시 합의문에 대한 동의를 철회했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이날 복지부는 지난 24일 국무총리-의협 간담회 이후 진행된 복지부 장관-의협 협의 내용 등을 자세히 소개하며 ‘합의문’을 공개하기까지 했다. 그러면서 복지부는 “엄중한 코로나19 사태를 고려해 수차례에 걸쳐 양보와 대화를 위한 노력을 했지만, 의협과 대전협은 정책의 철회 또는 원점 재검토만을 주장하다 결국 합의된 내용을 번복하는 등 진정성과 책임성 있는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고 강하게 비판했다.
반면 최대협 대한의사협회 회장은 “정부에서 말하는 것은 협상 과정에서 정부 측이 먼저 제안한 ‘정부 제안문’일뿐이며 의협과 정부가 함께 제시한 ‘합의문’이 아니었다”고 반박했다. 그는 “정부 제안을 받아들이기 전에 무기한 총파업 중인 전공의들의 의견을 듣는 것이 필요하다고 정부에도 전달했다”고 강조했다. 그 결과 대전협이 내부 대의원 회의를 거쳐 “정부가 끝내 정책을 추진하겠다는 걸로 이해했으며 파업을 지속하겠다”는 기존 입장을 유지하자 의협도 해당 제안문을 받아들이지 않았다는 것이다. 김중엽 서울대병원전공의협의회장은 “대의원들이 모여서 장시간 토의한 결과, 잠정 합의안은 사실상 보류만 하겠다는 내용으로 판단했다”며 “업무개시명령 등 모든 가능성을 다 생각하더라도 여기서 대충 타협할 수는 없다고 생각해 파업은 그대로 진행키로 했다”고 말했다.
파업 관련 입장발표하는 최대집 의협 회장/연합뉴스
지난 밤의 의·정 대화가 무산됨에 따라 의협은 이날부터 28일까지 사흘간 제2차 집단휴진을 강행하고 있다. 전공의들은 이미 지난 21일부터 무기한 파업에 돌입한 상태다. 이에 정부는 이날 오전 8시를 기해 서울·경기·인천 등 수도권 소재 수련병원 95곳에 근무 중인 전공의와 전임의에 대해 진료에 복귀하라는 업무개시 명령을 발동했다.
의협은 정부의 업무개시 명령에 대해서도 ‘악법’이라며 강력하게 반발하고 있다. 최 회장은 “정부의 업무개시 명령은 의사들의 단체행동권을 부정하는 악법”이라며 “위헌적인 이 법은 소송을 통해 반드시 폐기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이어 “정부가 내린 업무개시명령에 불응한 후배 의사 단 한 명에게라도 행정처분이나 형사고발 등 무리한 행정조처가 가해진다면 전 회원 무기한 총파업으로 강력히 저항하겠다”고 했다.
최 회장은 정부가 집단휴진을 공정거래법 위반으로 공정거래위원회에 신고하겠다고 한 것에 대해서도 물러서지 않겠다는 입장이다. 최 회장은 “2014년 원격의료 저지투쟁 당시에도 노환규 회장과 방상혁 기획이사가 고발당했지만, 작년 1심 판결에서 무죄가 났다”며 “집단휴진은 공정거래법 위반이 아니”라고 강조했다. 최 회장은 이날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서도 “감옥은 내가 갈 테니 후배 의사들은 소신을 굽히지 말고 끝까지 투쟁해달라”며 의사들에게 정부 조치에 굴하지 말고 집단행동을 이어나갈 것을 촉구했다.
최대집 회장 페이스북 캡처
한편 정부가 의료기관이 아닌 의사인 전공의·전임의 등 의사에게 업무개시명령을 내린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정부는 2000년 의약분업 사태, 2014년 원격의료 반대 때 업무개시명령을 내렸는데 당시 집단휴진에 참여한 의원급 의료기관이 주된 대상이었다. 업무개시명령을 정당한 이유 없이 따르지 않으면 면허정지 처분이나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3,000만원 이하의 벌금형을 받을 수 있다. 의료인의 경우 의료법 위반으로 금고 이상의 처분을 받으면 의료인 결격 사유로 인정돼 면허가 취소될 수 있다.
/김경미기자 kmkim@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