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SMC의 '2나노 초격차' 선언에.. 다급해진 삼성전자[양철민의 인더스트리]

TSMC, 22조 들여 신공장 건설해 2024년 양산
삼성 대비 한발 앞선 공정미세화 로드맵 구축
설비투자는 2년새 70% 늘리는 등 '초격차' 행보
'비전 2030' 추진 중인 삼성으로서는 부담
메모리·TV 등에서 1위사업자 제친 저력 발휘할 지 주목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 시장에서 압도적 1위 업체인 대만 TSMC가 업계 최초로 2나노미터(nm·10억분의 1m) 공정 기반 제품 양산을 공식화했다. TSMC의 발 빠른 초미세공정 행보로 오는 2030년 파운드리 시장 1위 등극을 핵심으로 한 삼성전자(005930)의 ‘반도체 비전 2030’ 달성이 쉽지 않을 전망이다. TSMC가 업계 2위인 삼성을 따돌리기 위해 삼성의 ‘초격차’ 전략을 모방한 ‘TSMC식 초격차’를 구사하고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27일 업계 및 외신에 따르면 TSMC는 지난 25일 열린 온라인 기술 심포지엄에서 2나노 공정 기반의 반도체를 2024년에 양산하겠다고 밝혔다. 케빈 장 TSMC 수석부사장은 “2나노 반도체 공장 부지 취득을 위한 협상을 진행 중”이라고 말했다. TSMC는 이를 위해 약 22조원을 들여 신주과학원구에 신규 공장을 건설할 계획이다. TSMC는 지난해 “2나노 공정 연구개발에 65억달러를 투자해 2024년에는 관련 제품 양산이 가능할 것”이라고 밝힌 바 있으나 2나노 관련 로드맵을 구체적으로 공개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TSMC "파운드리 시장 절반은 내 것"
TSMC의 이 같은 공격적 투자는 글로벌 반도체 산업 구조가 팹리스(반도체 설계전문)와 파운드리로 확실히 양분되면서 파운드리 시장이 빠르게 성장하는 것과 관련이 깊다. 미국 AMD가 지난 2008년 파운드리 사업부를 분사해 글로벌파운드리를 설립하는 등 비용 효율화를 목적으로 한 반도체 생태계의 분업구도가 확실히 정착되는 모습이다.

시장조사기관 옴디아에 따르면 전세계 파운드리 시장 규모는 지난 2017년 609억달러 규모에서 내년에는 810억 달러를 넘어설 것으로 보인다. 시장조사기관인 트렌드포스에 따르면 올 3·4분기 파운드리 시장 규모는 전년 동기 대비 14% 증가한 202억 달러로, 올해 전체 파운드리 시장 규모가 800억 달러를 넘어설 것이란 분석도 제기된다.

ASML이 독점 공급중인 EUV 장비

특히 극자외선(EUV) 설비를 갖추고 7나노 이하 반도체를 생산하는 파운드리 업체는 TSMC와 삼성전자 두 곳뿐이라 미세공정 로드맵 강화는 TSMC의 독과점 입지 강화로 이어진다. 네덜란드 ASML이 독점 공급하는 EUV 노광장비는 1대당 가격이 1,500억~2,000억원 가량이라 관련 설비 구축을 위해서는 최소 수조원의 설비 투자가 필요하다. 7나노 공정 까지는 불화아르곤(ArF) 설비와 ‘멀티패터닝’ 기술을 활용해 반도체 생산이 가능했지만 보다 상위 공정에는 EUV 장비가 필수다. 5나노 이하의 초미세 공정은 ‘양자간섭’ 우려까지 나오는 상황이라 수율 최적화도 쉽지 않다.

실제 파운드리 시장 3위 업체인 미국 글로벌파운드리가 지난해 설비투자에 대한 부담으로 EUV 장비를 도입하지 않기로 했으며 반도체 설계·생산을 동시에 하는 인텔은 관련 기술 확보 어려움을 이유로 10나노 공정 기반 제품 출시 일정을 미루고 있다. 이 때문에 인텔이 중앙처리장치(CPU) 등 주요 제품을 TSMC에 위탁생산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는 등 나노 공정 진입장벽이 갈수록 높아지고 있다. 반면 IC인사이츠 보고서에 따르면 10나노 미만 반도체 공정 점유율은 지난해 5%에서 오는 2023년에는 25%로 5배 가량 껑충 뛸 전망이다. 미세 공정 개발력 강화가 매출 상승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는 구조다.

TSMC 설비투자액 2년새 70%↑.. "삼성, 너네만 초격차 하냐?"
이 같은 상황에서 TSMC는 올해 설비투자 예상액을 애초 150억~160억달러에서 10억달러가량 추가로 늘려 잡으며 압도적 입지 구축에 힘쓰고 있다. TSMC의 설비투자액 추이를 살펴보면 2018년 105억달러에서 2019년 149억달러, 올해는 최대 170억달러까지 빠르게 늘고 있다. TSMC는 지난해 ASML이 출고한 EUV 장비를 싹쓸이하며 최근 2년새 설비투자액이 급증하는 모습이다.

TSMC의 대만 사옥.

TSMC의 이 같은 투자 행보는 지난해 삼성전자가 업계 최초로 EUV 공정 기반의 7나노 반도체를 양산하며 TSMC의 입지를 위협한 것과 관련이 깊다. 당시 TSMC는 ArF 노광장비와 멀티패터닝 기술을 활용해 7나노 제품을 양산하며 삼성전자의 도발에 대응했지만, 회로선폭의 선명도가 삼성전자 대비 떨어진다는 지적이 제기되며 선두사업자로서의 입지가 흔들렸다.


삼성전자의 점유율 추이 또한 TSMC가 초격차 전략에 나선 배경 중 하나다. 지난 2017년 옴디아의 파운드리시장 점유율 관련 자료에 따르면 TSMC의 점유율은 50.4%인 반면 삼성전자 점유율은 6.7%에 불과했다. 당시 점유유율 산출 시 삼성전자 시스템LSI 사업부 발주 물량을 제외하긴 했지만, 이를 감안하더라도 삼성전자 파운드리 사업부의 존재감이 3년새 크게 높아진 것은 사실이다.

삼성 "우리가 꺾은 1등이 몇개더라.. 진짜실력 보여줄께"
삼성전자는 TSMC의 발 빠른 공정 미세화 움직임을 숨 가쁘게 추격하고 있다. 삼성전자는 지난해 EUV 노광장비 기반의 7나노 반도체를 세계 최초로 양산하는 등 선단공정에서 TSMC 대비 다소간 우위를 보이고 있지만 여타 부문에서는 여전히 격차가 크다.

트렌드포스에 따르면 삼성전자의 올 3·4분기 파운드리 점유율은 전 분기 대비 1.4%포인트 하락한 17.4%에 그친 반면 TSMC는 2.4%포인트 오른 53.9%의 점유율을 기록했다. TSMC가 애플·AMD·엔비디아 등 다양한 고객군을 확보한 반면 삼성전자 파운드리 사업부는 모바일 애플리케이션프로세서(AP) ‘엑시노스’를 설계하는 삼성전자 시스템LSI 사업부와 관련한 매출 비중이 높기 때문이다.

올 상반기 출시된 갤럭시S20의 AP로는 퀄컴의 ‘스냅드래곤865’이 주로 탑재 된 반면 ‘엑시노스990’은 일부 국가향 모델에만 탑재된데다, 갤럭시S20 판매 부진까지 더해져 시스템LSI사업부 발주 물량이 줄었다. 삼성전자는 ‘갤럭시노트20’의 AP로도 퀄컴의 ‘스냅드래곤865+’를 주로 탑재해 엑시노스 발주 물량이 반등하지 못했다. 특히 미국 제재로 화웨이의 팹리스 자회사인 하이실리콘의 TSMC 발주 물량이 줄어든 상황에서, TSMC 점유율이 되레 높아진 점은 삼성 입장에서 뼈아픈 부분이다.

같은 미세공정 수준이라도 TSMC 반도체의 트랜지스터 집적도가 삼성전자 제품 대비 10% 이상 높다는 지적도 넘어야 할 산이다. 핀펫(Fin-Fet) 기술 최고실력자이자 TSMC 등에서 근무했던 량몽송 전 삼성전자 부사장이 3년전 중국 파운드리 업체인 SMIC로 이직하는 등 중국의 ‘인재 빼가기’에 대한 방비책 마련도 숙제다.

삼성전자 평택 EUV 라인.
삼성전자는 이 같은 상황속에서도 5나노급 반도체를 올 하반기 본격 양산하고 최근 2세대 4나노 공정 개발에 착수하며 TSMC와 격차를 좁힌다는 계획이다. 또 3나노 공정부터는 삼성전자 자체 기술인 ‘멀티브릿지채널(MBC) 펫’ 공정을 추가로 적용해 TSMC 대비 확실한 기술 우위에 서겠다는 방침이다. 삼성전자와 TSMC 모두 3나노 제품은 2022년께 양산한다고 밝힌 상태다.

삼성전자는 메모리반도체에서는 일본 NEC·히타치를, TV 시장에서는 일본 소니 등 글로벌 1위 사업자들을 제친 경험이 풍부한만큼 TSMC 추월이 가능할 것으로 보고 있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오는 2030년 파운드리 부문 1위 등극을 위해 전사적 차원의 지원을 아끼지 않고 있어 ‘역전’이 불가능한 것만은 아니다.

특히 삼성전자는 올해 반도체설비 투자액 대부분을 파운드리에 집중할 것으로 전망된다. 삼성전자는 올 상반기에만 반도체 부문 시설투자에 14조7,000억원을 집행했으며 연간으로는 30조원 가량의 투자가 예상된다.

IC인사이츠에 따르면 올해 삼성전자의 D램 부문 설비투자액은 49억달러(약 5조8,000억원) 가량으로, 낸드플래시와 시스템 LSI 부문 투자까지 합치면 10조원 가량을 메모리 및 시스템 반도체 부문에 투자할 것으로 전망된다. 삼성전자 메모리 사업부 매출에 D램 매출이 70% 가량을 차지하는 데다 시스템LSI 사업부는 설비 보다는 인재 경쟁력이 압도적으로 중요하기 때문이다. 이같은 분석에 근거해 삼성전자가 올해 파운드리 부문 설비투자로만 20조원가량을 집행할 경우 TSMC(170억달러)와 비슷한 수준의 투자를 단행하게 돼 점유율 좁히기가 가능할 전망이다. /양철민기자 chopin@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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