폴 크루그먼
지난 6월 비영리 웹사이트 운영사인 ‘팩트체크(Factcheck.org)’는 “조 바이든이 근거 없는 선거 음모론을 띄우고 있다”고 지적했다. 공인들의 발언과 언론 보도의 사실 확인을 담당하는 이 단체는 “유권자들의 우편투표를 막기 위해 도널드 트럼프가 연방우체국(USPS)의 재정지원을 차단하려 한다”는 바이든의 주장에 대해 “우편제도 개편에 관한 트럼프의 입장을 11월 대선과 연결할 만한 증거는 없다”고 결론 내렸다. 그러나 며칠 전 팩트체크는 트럼프의 발언 내용을 근거로 “바이든의 주장이 옳았다”고 입장을 바꿨다.
USPS를 둘러싼 논란이 터지자 낸시 펠로시는 휴회 중인 하원의 조기 소집을 위해 하계 귀향 활동 중인 의원들을 의사당으로 불러들이고 있다. 헌정 위기로 연결될 수 있는 두 가지 중대 사안을 시급히 처리해야 한다는 이유에서다. 하나는 수백만 건의 우편투표가 개표 과정에서 누락될 가능성이고 다른 하나는 마감시한을 넘겨 도착한 우편투표로 최종 개표결과 발표가 지연될 경우 트럼프가 일방적으로 자신의 승리를 선언하며 백악관에 그대로 눌러앉을 가능성이다.
이러한 악몽을 막으려면 긴급 조치를 통해 연방 우편제도의 온전성을 확보해야 한다. 그러나 우편제도에 대한 트럼프의 공세는 이보다 훨씬 거대하고 장기적인 노림수를 담고 있다. 우편제도의 개편 시도는 미국을 하나로 묶어주는 기구들 전체에 대한 공세의 일부이다.
연방헌법이 의회에 ‘우체국과 우편물수송로 설치’에 필요한 구체적인 권한을 부여한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었다. 건국의 아버지로 불리는 미국의 국부들은 합중국이라는 불안정한 국가 개념을 현실화하는 데 전국적인 우편제도가 결정적인 도움을 줄 것으로 확신했다. 실제로 설립 초기 단계에 USPS가 담당한 핵심 업무는 신문 배달이었다. 이는 미국인들이 정보를 공유해 서로 연결하기 위한 방법이었다.
지금 우리가 알고 있는 우편서비스는 하루아침에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숱한 입법과 전례의 축적을 통해 점진적으로 진화한 것이다. 우체국이 도시의 가정집에 우편물을 직접 배달하기 시작한 것은 1863년 이후의 일이었다. 지방에 영구 무료 배달 서비스가 시작된 해는 그보다 훨씬 뒤인 1913년이다. 그 이전까지만 해도 지방의 고객들은 담합으로 높은 우송료를 부과하는 민간기업 카르텔에 의존해야 했다.
이런 변화는 미국인들 사이의 상호접촉은 물론 외부세계와 교류를 촉진한다는 한 가지 공통적인 주제를 갖고 있었다. 연방우체국은 ‘공평하고 보편적인 서비스 의무’ 외에 국가를 하나로 묶어주는 ‘국민 결속’과 ‘시민 포용’을 3대 목표로 내건다.
역사적으로 연방우체국은 도시지역에 집중된 경제성장의 과실이 오지의 주민들에게도 돌아갈 수 있도록 연결하는 작업을 담당했다. 우편망 확대로 가능해진 우편주문의 폭발적인 증가가 지방 주민들의 삶의 질을 크게 개선했다는 주장은 결코 과장된 것이 아니다. 또 민간 배달 업체들의 질 낮은 고비용 서비스에 의존하는 농촌 지역에서 우편배달은 여전히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다.
비단 지방의 주민들만이 아니다. 약이 필요해도 약국을 직접 방문할 수 없는 숱한 미국인들에게 연방우체국은 말 그대로 생명선이다. 실제로 보훈병원을 운영하는 연방보훈부는 전체 외래환자 처방전의 80%를 우편으로 발송한다.
우편투표 논란이 일자 우파의 단골 주자들은 USPS를 돈이나 까먹는 불량 사업체로 매도하고 나섰다. 그러나 건국의 아버지들이 연방우체국 관련 조항을 헌법에 포함한 것은 영리를 염두에 둬서가 아니었다. USPS는 그보다 훨씬 크고 광범위한 국가적 목표에 이바지하기 위해 설립됐다.
농촌에 전기를 보급하기 위해 1930년대에 연방기구로 창설된 지역전력화사업청(REA) 역시 국민통합과 경제개발이 설립 목적이었다. REA는 1949년부터 농촌 전화전신망 확대를 위한 지원을 시작했다. 주와 주를 연결하는 주간고속도로시스템(Interstate Highway System)의 경우 실제로 국민통합을 강화하는 효과를 보였다.
물론 현대 경제에 모든 서비스에서 ‘보편적 서비스 의무’를 기대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대다수 미국인은 USPS가 그 자체로 완전한 시민권(full citizenship)의 중요한 구성요소이기 때문에 누구나 이용할 수 있어야 한다고 믿는다. 안타깝게도 트럼프와 그의 주변인들은 이 같은 믿음을 공유하지 않는다. 무엇보다 ‘완전한 시민권’이라는 개념 자체를 믿지 않을지도 모른다. 바로 이것이 이번 선거를 훔칠 최상의 방법이 아닌 줄 뻔히 알면서도 우체국을 무력화하려는 의도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