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롬 파월 미국 연준 의장이 지난 3월 미국 워싱턴DC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코로나19로 인한 경제 충격에 대응하기 위한 금리 인하를 발표하고 있다. 파월 의장은 27일(현지시간) 열린 잭슨홀 미팅 연설에서 인플레이션보다 고용시장에 무게를 두고 통화정책을 펼치겠다고 밝혔다. /로이터연합뉴스
제롬 파월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 의장이 2% 이상의 인플레이션을 용인하겠다면서 장기 저금리를 시사했다. 최소 수년간 금리 인상이 없다는 뜻으로 과잉 유동성 시대가 활짝 열렸다는 분석이 나온다.
27일(현지시간) 미 경제방송 CNBC에 따르면 파월 의장은 이날 각국 중앙은행장들의 연례회의인 잭슨홀 미팅 화상연설에서 “지속적으로 너무 낮은 물가는 경제에 위험하다”며 “우리는 평균 2%의 인플레이션을 추구할 것이다. 인플레이션이 2% 미만으로 떨어진 다음 기간에는 인플레이션을 2% 이상으로 어느 정도 달성하는 것을 목표로 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는 ‘평균물가목표제(Average Inflation Target)’를 도입한다는 의미다. 그동안 연준은 물가상승률이 2%를 넘지 않게 선제적으로 금리를 인상한다는 정책을 고수해왔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연준이 인플레이션 목표치를 바꿈으로써 더 긴 저금리 시대에 진입하게 됐다”고 전했다.
지난 1977년 미 의회는 연준에 물가를 안정화하고 고용을 활성화하라고 주문했다. 연준의 정책목표가 이 두 가지에 있다는 얘기다. 이 중 물가안정은 사실상 중앙은행의 가장 큰 책무였다. 실제 미국은 1980년대 10%에 달하는 고물가를 겪었고 폴 볼커 전 의장은 금리 인상으로 인플레이션을 잡았다. 이후 2012년에는 벤 버냉키 전 의장이 2% 인플레이션 목표를 제시했다. 구체적인 수치가 없던 것에서 명확한 지침을 정한 셈이다.
파월 의장의 잭슨홀 미팅 연설은 이 같은 연준의 오랜 정책방향을 뒤집는 것이다. 2%라는 인플레이션 목표치를 세워놓고 이를 지키려고 했던 데서 한발 물러나 유연하게 적용하겠다는 의미이기 때문이다.
이는 저성장·저물가가 미국뿐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공통된 현상으로 자리 잡는 가운데 고용의 중요성이 갈수록 커지고 있다는 점이 주요 원인이다. 이날 파월 의장은 “경제는 항상 진화하고 있고 우리의 정책 틀도 새로운 도전에 맞게 조정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경제성장과 일자리 창출을 지원하기 위해 우리의 정책도구를 사용해 (고용 확대에) 적극적으로 노력할 것”이라고 말했다. 인플레이션에 대한 우려보다는 고용과 경기진작에 더 무게중심을 두겠다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는 부분이다.
이날 파월 의장은 평균 2% 인플레이션 계산법, 즉 금리 인상 시점을 추측할 수 있는 내용을 공개하지 않았다. 하지만 시장에서는 현 상황을 고려하면 당분간은 물가상승률이 2%를 넘기 어렵다는 입장이다. 체탄 아야 모건스탠리 수석 이코노미스트는 “오는 2022년에 인플레이션이 2%를 넘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중요한 것은 연준이 실업률과 고용을 중시하기로 한 만큼 인플레이션이 2%를 넘더라도 지금의 확장적 통화정책이 유지될 수 있다는 점이다. 파월 의장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 직전 미국이 낮은 인플레이션 속에서도 역대 최저 수준의 실업률을 기록한 것을 염두에 둔 듯 “인플레이션을 야기하지 않고 견실한 고용시장이 지속될 수 있다는 게 우리의 견해”라며 필립스 곡선을 부정하는 투의 발언까지 했다. 필립스 곡선은 실업률과 물가상승률은 역의 상관관계가 있다는 것으로 실업률이 내려가면 물가는 오르고, 실업률이 올라가면 물가는 내려간다는 것이다. 파월 의장은 또 통화정책을 5년마다 재검토하겠다고 했다. 거꾸로 5년 동안은 지금의 방침이 유지된다는 얘기다.
월가에서는 주식 투자자와 주택담보대출을 받은 이들은 혜택을 볼 수 있지만 은퇴자처럼 이자 수입에 의존하는 이들은 장기 저금리에 손해를 볼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날 인플레이션 기대에 장기채권 금리도 상승(가격 하락)했다. WSJ에 따르면 이달 26일 30년 만기 미 국채 금리가 연 1.406%에서 1.497%까지 올랐다. 이날은 1.514%로 1.5%를 넘었다. 문제는 장기채권 금리가 오르면 차입원가가 높아져 기업들의 활동을 위축시킬 수 있다는 점이다. 월가에서는 실업률이 떨어지고 노동자 임금이 상승하면 기업들이 배당과 자사주 매입을 줄이게 돼 주주 이익이 줄어들 게 될 것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뉴욕=김영필특파원 susopa@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