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로 뉴욕주가 셧다운되면서 한산해진 뉴욕 거리의 모습 /AP연합뉴스
신종 코로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는 상업용 부동산 투자 시장의 지형을 크게 변화시켜 놓고 있습니다. 주택 시장도 적지 않은 영향을 받고 있는데요. 지난 수년 간 기관투자자들이 선호하는 투자처는 ‘멀티패밀리(Multifamily)’, 우리나라로 치면 임대 아파트였습니다. 밀레니얼 세대가 전 세계적으로 핵심 소비집단으로 부상하면서 이들이 선호하는 주거 형태인 도심과 가깝고 편의시설을 갖춘 멀티패밀리에 대한 인기가 높아졌죠. 그런데 코로나19는 멀티패밀리와 같은 공동주택에 대한 인식을 바꿔놓고 있습니다. 전염병에 취약하기 때문입니다. 실제2003년 사스 사태 당시 전 세계 774명의 사망자 중 무려 42명(5.4%)이 홍콩 아모이가든아파트 한 곳에서 나오기도 했습니다. 이에 최근 공동주택 기피 현상이 나타나고 대신 한적한 교외의 단독주택에 눈길을 돌리는 이들이 늘어나고 있습니다. 상업용 부동산 투자업계에서도 단독주택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는데요. 최근 주목할만한 사례가 하나 있습니다.
블랙스톤, 단독주택 투자에 다시 뛰어들다
트리콘 레지덴셜이 소유한 미국 텍사스의 단독임대주택 /사진=트리콘 레지덴셜
전 세계 부동산자산운용 규모 1위인 블랙스톤은 최근 비상장 리츠인 ‘BREIT’를 통해 ‘트리콘 레지덴셜(Tricon Residential)’에 3억달러를 투자했습니다. 1988년에 설립된 트리콘 레지덴셜은 8월 현재 기준 미국과 캐나다 지역에 위치한 2만 1,582채의 단독임대주택과 7,789가구 규모의 멀티패밀리를 소유하고 있으며, 현재 3,695가구 규모의 멀티패밀리를 개발하고 있습니다. 개발 중인 자산(4%)를 제외하고 단독임대주택이 74%, 멀티패밀리가 22%를 차지합니다.
트리콘 레지덴셜의 연혁
블랙스톤의 이번 투자는 코로나19이후 바뀌고 있는 주택 시장의 흐름이 반영되어 있습니다. 사실 미국에서 단독임대주택 투자는 기관투자자가 쉽게 접근하기 어려운 시장으로 꼽히는데요. 자산이 여러 곳에 분산되어 있어 포트폴리오를 관리하는 게 어렵기 때문입니다. 이 시장을 처음으로 개척한 기관투자자가 바로 블랙스톤입니다. 블랙스톤은 지난 2012년 사모 부동산 펀드인 ‘블랙스톤 리얼 에스테이트 파트너스 VII(BREP VII)’를 통해 인비테이션 홈즈를 설립하고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주택 가격이 폭락한 틈을 타 단독 주택을 대거 사들였습니다. 이후 블랙스톤은 2017년초 인비테이션 홈즈를 뉴욕증권거래소(NYSE)에 상장했으며, 이후 스타우드 웨이포인트 홈즈를 인수해 미국 단독 임대 주택에 투자하는 미국 최대의 리츠로 만들었습니다. 블랙스톤은 상장 후 인비테이션 홈즈 지분을 여러 차례에 걸쳐 매각하면서 작년 말 투자 회수를 완료했습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에 따르면 블랙스톤은 인비테이션 홈즈 배당금과 주식 매각으로 투자금 대비 두 배 이상의 수익을 거뒀습니다.
코로나19로 주목받는 단독주택
영국 콘월 지역의 주택 /사진=라이트무브
블랙스톤이 단독임대주택 투자에 다시 뛰어드는 건 코로나19 이후 주택 시장의 분위기가 크개 달라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지난 몇 년간 기관투자자들에 가장 인기 있는 투자상품 중 하나는 미국 멀티패밀리였습니다. 글로벌 부동산컨설팅 회사 CBRE에 따르면 미국 멀티패밀리 공실률은 지난해 3·4분기에 3.6%로 25년래 가장 낮은 수준을 기록할 정도였습니다.
하지만 코로나19가 이후 사람들이 전염병에 취약한 공동주택이 아닌 교외에 위치한 단독주택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습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에 따르면 코로나19가 본격 확산된 3월 이후 뉴욕을 떠나 교외지역인 코네티컷으로 이주하는 사람들이 전년동기 대비 2배 이상 늘었습니다. 코네티컷은 올해 5월까지 신규주택 허가가 1,900여건 신청됐는데 이는 5년 만에 최대치이기도 합니다. 지난 7월에는 뉴욕 대부분의 지역에서 주택 거래가 크게 늘었는데 맨해튼만 감소하기도 했죠. 미국만의 현상도 아닙니다. 지난 7월 영국 부동산 거래 규모는 2008년 3월 이후 최대치를 기록했는데요. 대부분의 지역에서 주택 가격이 상승했습니다. 단 한 곳, 런던만 빼고요. 코로나19 이후 원격 근무의 확산, 전염병에 대한 두려움 등으로 데번이나 콘월과 같은 교외 지역으로 이주하는 이들이 늘면서 교외 지역의 주택 거래는 크게 늘어난 반면 런던을 빠져나가는 사람은 늘었기 때문입니다.
멀티패밀리와 단독임대주택에 투자하는 리츠의 주가도 이 같은 흐름을 반영하고 있습니다. 단독임대주택리츠인 인비테이션홈즈의 주가는 코로나19 사태가 본격화된 이후 3월 중순 주당 16.13달러까지 떨어졌다가 지난 28일 주당 28.66달러로 마감해 연초 주가(1월 2일 기준 주당 29.47달러)를 거의 회복했습니다. 반면 멀티패밀리 리츠 중 대장주인 에쿼티 레지덴셜의 주가는 연초 대비 28.5% 하락한 수준입니다. 이번에 블랙스톤이 투자한 트리콘 레지덴셜의 경우 캐나다 토론토증권거래소에 상장되어 있는데 지난 28일 주당 11.01캐나다달러로 거래를 마쳐 연초 대비 4.8% 상승했습니다.
에쿼티 레지덴셜(왼쪽)과 인비테이션홈즈의 연초 이후 주가 흐름
투자자들도 이 같은 현상에 민첩하게 반응하고 있습니다. 모건스탠리는 코로나19 이후 주목해야 할 투자처로 단독주택을 꼽으며 단독임대주택리츠인 ‘인비테이션홈스’를 추천하기도 했습니다. 블룸버그는 최근 미국 전역에 8만채의 단독임대주택을 가지고 있는 인비테이션홈즈가 추가로 8만채를 확보하기 위해 나섰다고 보도하기도 했죠. 또 JP모건체이스는 코로나19 사태 확산 이후 아메리칸홈즈포렌트(American Homes 4 Rent)와 손잡고 2,500개의 단독 임대 주택을 건설하기 위한 조인트벤처(JV)를 설립하기도 했습니다. 국내 기관투자가 중 한 곳도 최근 단독임대주택리츠인 ‘아메리칸홈스포렌트’에 투자했고요. 이런 가운데 과거 단독임대주택에 투자해 큰 성공을 거뒀던 블랙스톤도 다시 한번 단독임대주택 투자를 시작하는 겁니다. 전 세계 모든 기관투자자들의 주목을 받고 있는 블랙스톤의 이번 투자가 상업용 부동산 투자 업계에 어떤 신호를 줄지 관심 있게 지켜봐야 할 것 같습니다.
/고병기기자 staytomorrow@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