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은산이 블로그에 올린 글 일부. /블로그 캡쳐
조선시대의 ‘상소문’ 형식을 빌어 문재인 대통령에 직언하는 내용을 담은 국민청원 ‘시무 7조’를 쓴 진인(塵人) 조은산이 30일 시인 림태주의 ‘하교’에 반박하는 글을 올렸다. 하교(下敎)는 신하가 올린 상소문에 임금이 답하는 것이다.
림태주는 자신의 ‘하교’ 글과 조은산의 반박글이 화제가 되자, 31일 오전 자신의 페이스북에서 해당 글을 삭제했거나 비공개 처리했다.
조은산은 자신의 블로그에 ‘백성 1조에 답한다’라는 제목의 글을 올렸다. 앞서 림태주는 조은산의 ‘시무 7조’를 “언뜻 그럴 듯 했으나 호도하고 있었고, 유창했으나 혹세무민하고 있었다. 편파에 갇혀서 졸렬하고 억지스러웠고, 작위와 당위를 구분하지 못했고, 사실과 의견을 혼동했다. 나의 진실과 너의 진실은 너무 멀어서 애달팠고, 가닿을 수 없어서 없이 처연해서 아렷다”라고 비판했다.
이에 조은산은 “도처에 도사린 너의 말들이 애틋한데 그럼에도 너의 글은 아름답다. 그러나 그 안에 것은 흉하다”고 했다. 그러면서 ‘너의 백성은 어느 백성이냐. 가지고도 더 가지려고 탐욕에 눈 먼 자들을 백성이라는 이름으로 퉁 치는 것이냐’는 림태주의 지적에 다시 “너의 백성 1조는 어느 쪽 백성을 말하는 것이냐”고 반문했다.
이어 “고단히 일하고 부단히 저축하여 제 거처를 마련한 백성은 너의 백성이 아니란 뜻이냐”며 “나는 오천만의 백성은 곧 오천만의 세상이라 하였다. 그렇다면 너의 백성은 이 나라의 자가보유율을 들어 삼천만의 백성뿐이며 삼천만의 세상이 이천만의 세상을 짓밟는 것이 네가 말하는 정의에 부합하느냐”고 목소리를 높였다.
조은산은 “나는 가진 자의 세금을 논하지 않았다. 나는 가진 자의 세율을 논하였고 민심의 척도라 정의했다”고 설명하면서 “너는 편전과 저잣거리에서 분분한다지만 정작 너는 지상파 채널에서 무엇을 볼 수 있느냐. 전 대통령에게 분해 대사를 읊던 전 정권 시절 개그맨들은 어디서 분분하고 있는지 나는 궁금하다”고 적었다.
림태주가 페이스북에 올렸던 글. 현재는 삭제됐거나 비공개 처리됐다. /페이스북 캡쳐
그는 “피를 토하고 뇌수를 뿜는 심정으로 상소를 썼다. 정당성을 떠나 누군가의 자식이오 누군가의 부모인 그들을 개와 돼지와 붕어에 빗대어 지탄했고 나는 스스로 업보를 쌓아 주저앉았다”며 “너는 내가 무엇을 걸고 상소를 했는지 가늠조차 할 수 없다”고 분통을 터트리기도 했다.
림태주가 대통령과 국민을 목동과 양떼에 비유해 ‘열 마리 양 가운데 한 마리를 잃은 목동이 그 한 마리를 찾아 헤매는 것이 이성적이지 않다고 생각하는 것이냐. 나에겐 그것이 지극한 이성이고 마땅한 도리’라고 한 데 대해선 “감히 아홉의 양과 길 잃은 양, 목동 따위의 시덥잖은 감성으로 나를 굴복시키려 들지 말라”고 쏘아붙였다.
그러면서 “나는 다섯에서 스물의 나이에 이르기까지 난방이 되는 집에서 살아 본적이 없으며 단칸방에서 온 가족이 몸을 맞대었고 중학교에 다닐 무렵부터 배달일을 시작해 공사판을 전전하여 살아남았다”고 자신의 과거를 회상했다. 또 “나는 정직한 부모님의 신념 아래 스스로 벌어먹었으며 가진 자를 탓하며 더 내놓으라 아우성치지 않았고 남의 것을 탐하지 않았다. 그것이 네가 말하는 조은산의 진실이고 삶이었다”고 강조했다.
이어 “너는 나의 가난을 아는가 목동은 나에게 따스한 구들장을 내어주었는가. 어두운 차로를 급히 내달리던 어느 소년의 위태로운 밤에 목동은 어디 있었는가. 너라도 하나의 별이 되어 그의 앞길을 비춰주었는가”라고 물으면서 “나는 나의 순수했던 가난이 자랑스러워 힘껏 소리 높여 고한다. 비켜라 강건한 양에게 목동 따위는 필요 없다”고 했다.
글을 마치며 조은산은 “시인 림태주의 글과 나 같은 못 배운 자의 글은 비교할 것이 안 된다”며 “정치적 입장을 배제하고 글을 평가해주길 바란다”고 당부했다. 림태주를 향해선 “건네는 말을 이어받으면서 경어를 쓰지 못했다”며 “내가 한참 연배가 낮다. 진심으로 사죄드린다”고 전했다.
한편 림태주는 1994년 계간 ‘한국문학’으로 등단했으나, 시집은 내지 않아 ‘시집 없는 시인’으로 알려져 있다. 지난 2014년 펴낸 산문집 ‘이 미친 그리움’에는 조국 전 법무부장관의 추천사를 실기도 했다. 림태주와 조 전 장관은 림태주가 SNS에 아들을 위해 쓴 충고글이 인터넷에서 화제가 된 것을 계기로 인연을 맺은 것으로 알려졌다.
/조예리기자 sharp@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