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978년 ‘박황 사건’은 대신증권을 존폐 위기로 몰아넣었다. 박황 당시 대신증권 영업부장이 고객 100여명의 돈을 빼돌린 사건이었다. 피해액은 당시 대신증권 자본금(50억원)의 절반에 가까운 24억원이었다. 대신증권은 자본잠식 상태에까지 이르렀다.
대신증권 창업주에겐 특히 뼈아픈 일이었다. “금융업은 신용이 생명”이라는 신조로 회사 이름을 ‘대신(大信·큰 믿음)’이라고 지었던 그였다. 창업주는 당시 투자자들에게 끌려다니다 찢긴 양복 상의를 10년이 넘도록 자신의 집에 걸어놓았다고 한다.
사건이 터지자마자 대신증권 창업주는 사재를 털어 대위변제금을 내놓고 대표이사직에서까지 사퇴했다. 주주들과 임직원들의 끊임없는 권유에 사임 후 3년 뒤 대표직에 복귀하고 나서는 소형차를 타고 다니며 회사 정상화를 위해 뛰어다녔다. ‘신용’을 지키려고 했던 창업주의 노력이 아니었다면 대신증권은 재기할 수 없었다.
대신증권에 라임 사태는 ‘박황 사건’과 닮은꼴이다. 직원의 비위가 문제가 됐고 고객들이 피해를 봤다. 무엇보다 창업주가 그토록 지키고자 했던 회사의 윤리적 가치인 ‘신용’이 훼손됐다. 그러나 현재 대신증권은 라임 사태와 관련해 소극적인 모습을 보이고 있다. 회사 측은 투자 피해자 쪽에서 요구하는 사안을 수용하지 못하고 있다. 정치인들은 대신증권에 “라임 펀드 판매를 주도했던 전 지점장의 개인적 일탈에 책임을 돌리고 있다”고 비판하고 있다.
대신증권은 지난해 당기순손실로 233억원을 기록했다. 라임자산운용과 관련해 394억원 충당부채를 인식한 영향이다. 라임 사태는 대신증권의 경영상에 실체적 위협이 됐다. 무엇보다 창업주가 강조했던 신용이라는 윤리적 정신이 훼손되고 있는 상황이다. 창업주가 유지하고자 했던 기업가정신이 위태로운 상황인 것이다. 대신증권은 “금융업은 신용이 생명”이라는 창업자의 유지를 라임 사태에서도 유지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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