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삼호중공업이 건조한 세계 최초 LNG추진 대형 컨테이너선. /사진제공=한국조선해양
‘반가운 규제도 있다.’
올해부터 발효된 국제해사기구(IMO)의 강력한 환경규제(황산화물 함유량을 3.5%에서 0.5% 이하로 감축)를 대하는 한국 조선업계의 반응이다. 1990년대 유조선의 선체를 단일 선체에서 이중 선체로 바꾸도록 한 ‘이중탱커’ 규제 이후 20여년 만에 가장 강력한 규제였지만, 국내 업체들은 미소를 지었다.
한국 대형 조선 3사가 액화천연가스(LNG)를 연료로 하는 선박 등 친환경 선박 부문에 일찌감치 투자해 세계 최고 수준의 기술력을 보유하고 있기 때문이다. 국내 조선업계는 글로벌 환경 규제 강화가 노후 선박 교체 시기를 앞당겨 새로운 돌파구가 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글로벌 환경규제에 LNG추진선 인기
IMO 2020 규제를 피하려면 선사들은 배의 연료를 LNG로 통째로 바꾸든지 선박에 탈황장치(스크러버)를 설치해야 한다. 그러나 주요 기항지들이 스크러버 설치 선박의 입항을 제한하면서 선사들의 무게추는 LNG를 연료로 쓰는 LNG 추진선 쪽으로 기울고 있다. 스크러버를 설치하는 방법은 저렴한 비용과 비교적 짧은 장착기간 때문에 빠른 대응을 선호하는 선사들의 선택을 많이 받았다. 가격이 싼 연료인 벙커C유를 사용할 수 있다는 장점도 한몫했다. 하지만 오염물질을 바다에 버리는 구조라는 점 때문에 자국 인근 해안에서 스크러버를 장착한 선박 운항을 금지하는 국가가 점차 늘었고, 결국 규제를 피하기 위한 가장 확실한 대안으로 LNG추진 방식에 대한 수요가 늘고 있는 것이다.
LNG 연료는 기존 벙커C유보다 황산화물은 90% 이상, 질소산화물은 80% 이상, 이산화탄소는 15% 이상 배출이 줄어든 친환경 고효율 에너지로 꼽힌다.
친환경 선박 발주는 큰 폭으로 늘고 있다. 조선·해운 분석기관인 클락슨에 따르면 지난해 LNG 추진 방식의 선박 발주량은 전체 발주량의 17%로 전년보다 10%포인트 올랐다. LNG운반선을 포함하면 이 비율은 31%에 달한다. 2000년대 5~6% 수준에서 2배 이상 늘어난 것이다.
韓, LNG운반선, 세계 수주비율 80% 달해
업계는 2025년부터 시행 예정인 IMO의 이산화탄소 배출규제까지 고려하면 LNG추진선이 장기적 대안이 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클락슨·로이드 선급 등은 2025년에 세계 신규 발주 선박 시장의 60.3%를 LNG연료추진선이 차지할 것으로 내다보기도 했다. 1990년대 IMO가 유조선 이중 탱커 규제를 내놓은 뒤 실제 선박 해체량이 크게 늘고, 이는 신규 발주로 이어졌다. 1992년부터 2003년까지 1.43억DWT(선박 자체 무게를 제외하고, 순수하게 화물을 적재할 수 있는 t수)가 해체됐고, 해체로 인한 운임이 증가하면서 1996년부터 2005년까지 2억7.000DWT가 신규 발주됐다.
전문가들은 한국 조선소들의 LNG 추진선 건조 경쟁력을 세계 최고 수준으로 평가한다. 특히 건조 경험 및 노하우, 주요 기자재 제작 역량을 핵심 경쟁력으로 꼽는다. LNG를 연료로 사용하기 위하여 액체 상태인 천연가스를 추진장치에서 사용 가능한 압력과 온도로 준비하는 LNG연료공급시스템이 필요하다. 국내 대형 3사(현대중공업·대우조선해양(042660)·삼성중공업(010140))는 모두 독자적인 LNG 연료 공급 시스템을 구축했고, 전용 엔진 적용 사례를 다수 보유하고 있다.
핵심 기자재인 LNG 화물창 건조 능력도 세계 최고 수준이다. 국내 조선소들은 선체와 화물창을 일체화한 ‘멤브레인’ LNG 화물창을 개발해 이 시장을 선점했던 일본을 넘어설 수 있었다. 선주들이 일본의 모스 타입보다 적재 용량이 40% 더 큰 멤브레인을 선호하며 한국은 1990년대 후반부터 세계 시장을 지배했다. 자연 발생하는 증발가스를 100% 액화해 화물창에 집어넣는 ‘완전재액화시스템(FRS)’도 한국 조선산업이 LNG운반선에서 격차를 유지하는 동력이기도 하다. 최근 한국의 글로벌 LNG운반선 수주비율은 80%를 넘어섰다. 2018년에는 글로벌 LNG선 발주량 72척 중 66척을 수주, 2019년에는 60척 중 48척을 차지했다.
中, 기술개발·제휴 등으로 맹추격
주요 경쟁국인 중국은 자국 발주 물량을 기반으로 LNG추진선 건조 경험을 축적하며 반격을 준비하고 있다. 하지만 2018년 LNG운반선 사고와 2019년 LNG추진선 인도 지연으로 신뢰도 확보에 차질을 겪고 있다. 중국 국영기업 후동중화조선이 건조한 LNG운반선인 글래드스톤호(Gladstone)가 인도된 지 19개월만인 2018년 6월 호주 인근 해역에서 고장으로 멈췄고, 중국선박공업(CSSC)은 프랑스 선사 CMA-CGM이 발주한 LNG연료추진 2만3,000TEU 초대형 컨테이너선 9척 인도를 기술 부족으로 1년 이상 무더기 지연하고 있다. 일본 조선업계 또한 2013년 컨테이너선 침몰로 수주에 어려움을 겪으며 장기 침체에 직면했다. 정기대 포스코경영연구소(POSRI) 연구원은 “글로벌 조선업계가 LNG추진선 시대로 개편되면서 한국 조선업이 시장 개척의 호기를 잡게 될 것으로 보인다”면서 “수주 범위(대형 컨테이너, 대형 탱커, 대형 벌커) 확대는 물론, 기자재 사업도 확대 예상된다”고 말했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한국 조선업이 손뼉만 치고 있을 여유가 없다고 지적한다. 중국 조선업계는 한국 추격을 위해 제작 기술은 물론 관련 부품 분야까지 투자를 확대하고 있고 선주사들에는 대규모 금융지원을 미끼로 수주를 받아 건조 경험을 쌓고 있다. 부족한 기술력을 메우기 위한 움직임도 속도를 내고 있다. 중국 장쑤양쯔강조선그룹은 지난해 일본 미쓰이그룹 계열사와 함께 장쑤양쯔미쓰이조선을 설립, 2022년 중형 LNG 운반선 건조를 목표로 하고 있다. 중국 선박공업집단도 산하 연구소를 동원해 초대형 LNG선 설계·개발을 시작했다.
전문가들은 IMO 2050 시대에 대비해야 한다고 한목소리를 낸다. 탈(脫) LNG시대가 됐을 때 차세대 선박핵심기술을 선점하지 못하면 조선분야 리더십과 기술적 주도권 확보가 어려워질 수 있다는 것이다. 정기대 연구원은 “경제성과 안정성을 강화한 스마트 선박 기술을 비롯해 암모니아·전기·수소전기연료전지 등 다양한 추진에너지에 대한 대비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한동희기자 dwise@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