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요일 아침에]왜 '풍자의 시대'인가

‘시무 7조’ 등 청원은 꽉막힌 언로 탓
당국發 공박에 지식인들 발언 꺼려
불편한 진실·소수의견 다 포용하고
밤새 상소문 읽던 옛 성군 본받아야


최근 조선시대의 상소문 형식을 빌려 정부 정책을 풍자한 청와대 청원이 세간의 화제다. 진인 조은산이 시무 7조를 주청하는 내용의 상소문은 촌철살인의 문장으로 현 정부의 부동산정책과 세금·인사제도를 신랄하게 풍자하고 있다. ‘영남 만인소’를 빗대 정부를 풍자한 청원 역시 청와대 참모진 등 여권 인사들의 도덕적 불감증과 외교·안보정책 실패 등을 날카롭게 비판했다. 현재와 과거를 넘나드는 풍자의 위력을 새삼 실감하게 만든다. 기실 우리 사회를 주름잡는 586 정치인들은 대자보 세대다. 과거 학창시절 대자보를 통해 정권을 풍자하며 대중의 억눌린 마음을 표출했다. 이제는 기득권층으로 지목돼 풍자의 대상이 되다니 아이러니라 하지 않을 수 없다.


원래 풍자란 정치적 현실과 세상 풍조의 폐해를 우회적으로 비판한 것으로 시국이 어수선하고 민심이 술렁일 때일수록 각광받기 마련이다. 대중들로서는 일종의 해방구이자 카타르시스를 느끼는 셈이다. 그런데 왜 하필이면 지금인가. 한 대학교수는 동료 교수들과 현 정부 정책을 토론하는 자리에서 문득 군사독재 시절 운동권 모임이 이러지 않았을까 생각했다고 한다. 대놓고 정책을 비판하는데 몸을 사릴 수밖에 없는 분위기라는 것이다. 요즘 학계 인사나 전문가들에게 민감한 주제에 대한 의견을 물으면 완곡한 거절의사를 표시하는 경우가 많다. 설령 기자와 만나더라도 말을 가리거나 비보도를 전제로 조심스럽게 얘기한다. 행여 뜻하지 않은 구설에 휘말릴 수 있다며 공개적인 발언이 부담스럽다는 것이다. 물론 허공에 던지는 메아리라는 탄식도 빠지지 않는다. 현직에서 물러난 인사들이 자유롭지 않겠냐고 하겠지만 꼭 그렇지도 않다. 사모님들로부터 쓸데없이 떠들고 다니지 말라는 경고를 받았다며 웃음으로 얼버무리고 언급을 회피하기도 한다. 이래저래 자기 검열이 기승을 부리는 세상이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 이후 세계 각국마다 마음에 들지 않는 언론 보도에 ‘가짜뉴스’라는 낙인을 찍고 있다. 러시아는 지난 3월부터 정부의 견해와 다른 글을 삭제하도록 강제하는 내용의 가짜뉴스 금지법을 운영하고 있다. 홍콩에서는 방송에서 정치 풍자 프로그램조차 보기 어렵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백악관 수성을 위해 ‘충격과 공포(shock and awe)’ 전략을 동원하면서 곳곳에 가짜뉴스 딱지를 붙인다. 우리는 어떤가. 정책당국은 마음에 안 드는 보도라도 나오면 온갖 트집을 잡기에 급급하다. 엊그제 한국경제학회는 경제학자의 76%가 수도권 집값 급등이 부동산정책의 실패 탓이라고 응답했다는 조사결과를 내놓았다. 부동산정책은 잘 작동하고 있다며 일부 투기세력과 과거 정권의 잘못으로 돌리는 정부의 주장을 정면으로 반박한 것이다. 아직은 ‘가짜뉴스’라는 정부발 공박이 없다.

정부가 툭하면 불편한 진실을 감추고 소수의견을 외면하는 데 급급하니 시장에서 통하는 정책이 나올 리 없다. 현 정부는 출범 초부터 조만간 성과가 나온다며 시간을 갖고 지켜봐 달라고 거듭 주장해왔다. 시장과 따로 노는 부동산정책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비판받지 않는 권력은 부패한다는 격언은 일찍이 잊은 것일까. 부동산정책 주무장관은 국회에서 ‘시무 7조’를 읽어봤느냐는 질문에 고개를 가로저었다. 옛날 성군들은 밤을 새워 방방곡곡에서 올라온 상소문을 읽고 일일이 비답(批答)을 내렸다. 물론 승정원에서 상소문을 추리거나 요약하는 일도 없었다. 심지어 기생이 올린 상소문에도 비답을 내렸다고 한다. 고려의 유학자 최승로는 왕에게 올린 시무 28조에서 “백성을 걱정하는 생각을 끊지 않으면 곧 복은 구하지 않아도 스스로 이르고 재앙은 가시지 않아도 스스로 소멸할 것”이라며 그렇게만 한다면 왕업이 어찌 오직 100년에 그치겠느냐고 충언했다. 입만 열면 20년, 30년 집권론을 부르짖는 여권 인사들이 귀담아들어야 할 대목이다. 정상범 논설위원 ssang@sedaily.com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