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가 2% 이상 인플레이션을 용인한다는 정책 변화를 보임에 따라 달러 약세가 더 굳어질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시장에서는 이번 달러 약세가 10년 갈 수 있다는 얘기도 흘러나온다.
1일(현지시간) 미 경제방송 CNBC에 따르면 이날 유로화가 달러에 강세를 보이면서 장중 1.2달러선을 돌파했다. 52주 신고가다. 이후 1.19달러대로 조정됐지만 앞으로도 유로화 강세가 이어질 수 있다는 전망이 제기된다. 울프 린달 AG비셋 외환전략가는 “달러화의 추세적 하락은 이제 시작”이라며 “앞으로 1년 새 유로화 대비 달러화가 36%나 폭락할 수 있다”고 내다봤다. 이 경우 1.6달러 수준까지 가게 된다.
달러인덱스도 하락세다. 주요통화 대비 달러화의 가치를 보여주는 달러인덱스는 지난 7월 4% 폭락한 데 이어 지난달에도 1.25% 떨어졌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팬데믹(세계적 대유행)으로 달러화가 강세를 보였던 3월과 비교하면 약 10%가량 낮아졌다. 이와 관련해 크레디트스위스는 “역사적으로 달러 약세는 (시작되면) 9~10년 동안 지속됐다”고 밝혔다.
달러 약세의 원인은 1차적으로 유럽과 중국 등 주요국의 경기회복 속도가 빠르다는 데 있다. 핌코의 조아킴 펠스 글로벌이코노믹 어드바이저는 “달러 약세는 기본적으로 미국보다 다른 나라의 경기회복이 빠르기 때문”이라며 “다음 6~12개월 동안은 달러 약세가 지속될 것”이라고 점쳤다.
코로나19 대응과정에서 기록 중인 사상 최대 규모의 재정적자도 한몫하고 있다. 미 연방정부의 2020회계연도(2019. 10~2020. 9) 첫 10개월 동안의 적자만 무려 2조8,100억달러(약 3,428조원)에 달한다. 현재 공화당은 1조3,000억달러, 민주당은 2조2,000억달러 규모의 추가 경기부양책을 놓고 논의를 지속하고 있다. 재정적자 확대와 그에 따른 국가부채 증가는 달러화의 추가 약세 요인이다. 그레그 젠슨 브리지워터 공동 최고투자책임자(CIO)는 “어떻게 쓰느냐에 따라 다르지만 미국은 최소 1조달러 규모의 새 부양책이 필요하다”고 했다.
이런 상황에서 연준의 정책 변화는 결정타가 됐다는 게 월가의 시각이다. 연준이 물가안정보다 고용을 중시하면서 장기간 저금리를 유지하겠다는 뜻을 재확인해 달러가 계속 약세를 보일 수밖에 없는 환경이 됐다는 것이다. BNP파리바의 다니엘 카지브 외환전략헤드는 “연준의 평균물가목표제 움직임이 치명타”라고 지적했다. CNBC는 “시장에서는 제롬 파월 연준 의장이 평균 인플레이션을 목표로 하는 새 정책을 발표하면서 달러 하락세가 강해졌다고 한다”며 “미국이 늘어나는 적자에 고전하는 것도 한 원인”이라고 분석했다.
시장에서는 오는 11월 미국 대선이 달러화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도 눈여겨보고 있다. 우선 바클레이스는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승리하면 무역에 대한 불확실성과 중국과의 긴장 고조 가능성에 안전자산으로서의 달러화 수요가 늘어날 것으로 보고 있다. 달러가 다시 강세를 보일 수 있다는 뜻이다. 반면 조 바이든 전 부통령이 이길 경우 약달러 흐름이 지속될 것이라는 게 바클레이스의 분석이다.
하지만 연준의 통화정책을 고려하면 누가 이기든 달러 약세는 막지 못한다는 분석이 우세하다. 베녹번글로벌포렉스의 마크 챈들러 수석 시장전략가는 “연준이 있는 한 달러화는 약세를 유지할 것”이라며 “누가 선거에서 승리하는지는 중요하지 않다”고 지적했다. BMO 전략가인 존 힐 역시 “달러 약세는 현재 일반적으로 매우 일치된 의견”이라며 “연준은 짧은 기간만 비둘기파적이지 않고 구조적이고 오래갈 것”이라고 전했다.
/뉴욕=김영필특파원 susopa@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