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가 국민을 '초딩' 취급해 시시콜콜 간섭하면 불행한 사회"[청론직설]

['행복학 권위자' 서은국 연세대 심리학과 교수]
집단주의 성향 강한 한국, 타인 '지적질' 휘둘리지 말아야
코로나19 방역 중요하지만 기본권 과도한 침해 않도록
행복사회에선 국가가 국민 조력자...'익명 관객' 넘어야
돈은 '사막의 물병'과 같아...갈증 해소 뒤엔 '잉여'일 뿐
생존과 번식이 인간 궁극 목표...행복은 목적 아닌 수단

서은국 연세대 심리학과 교수가 2일 연세대 연구실에서 서울경제와 만나 “코로나19로 인해 개인의 자유가 침해받으면서 행복감이 줄어드는 현상이 매우 우려된다”고 말했다. /권욱기자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가 장기화하며 우울감을 호소하는 시민들이 급증하고 있다. 한국트라우마스트레스학회가 “코로나19로 인해 국민의 우울 정도가 매우 심각한 수준”이라고 경고할 정도다. 코로나19로 촉발된 답답한 일상을 극복하고 행복감을 느끼며 살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세계 100인의 행복학자 중 한 명으로 손꼽히는 서은국 연세대 심리학과 교수를 만나 인류의 오랜 화두인 행복이란 과연 무엇인지, 또 행복해지기 위해 어떻게 해야 하는지 견해를 들어봤다. 서 교수는 2일 서울경제와의 인터뷰에서 “행복은 목적이 아닌 수단”이라며 “인간은 행복하기 위해 사는 것이 아니라 살기 위해 행복감을 느끼게끔 설계돼 있다”고 말했다. 서 교수는 “코로나19 확산을 막기 위해 방역을 철저히 하고 (방역 수칙 위반 시) 법적 대응 등 정부로서 필요한 역할을 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지만 역설적으로 코로나19로 인해 개인의 자유가 침해받으며 행복감이 줄어드는 현상은 매우 우려된다”고 말했다. 그는 “행복감이 높은 국가에서는 정부가 국민의 조력자로 인식하고 눈높이를 수평적으로 맞추는 반면 그렇지 못한 국가는 국민을 ‘초딩(초등학생)’ 취급하며 시시콜콜 간섭하는 경향이 있다”며 대한민국이 어떤 국가에 속하는지 되돌아볼 필요가 있다고 했다.

-‘행복’이라는 주제에 깊은 관심을 갖게 된 특별한 계기가 있는가.

△학부 때 우연히 행복학의 대가로 알려진 에드 디너 교수의 논문을 접한 후 흥미를 느꼈다. 사실 심리학에서 행복을 학문적으로 연구한 역사 자체도 오래되지 않았다. 심리학은 원래 인간의 부정적 경험, 즉 불안·우울증 등 정신병리적 측면에 집중하던 분야인데 디너 교수는 그 반대편에 있는 긍정적 경험, 즉 행복에 대한 연구 필요성을 최초로 제기했다. 디너 교수 밑에서 미국 일리노이대 석·박사 과정을 밟았는데 당시 우리 연구실이 세계에서 유일하게 행복을 연구하던 랩이었다.

-행복과 불행의 차이는 뭔가.

△불과 수십 년 전만 해도 불행하지 않은 상태를 행복이라 인식하고 앞에 닥친 문제만 해결하면 행복해질 수 있다는 ‘소극적 행복관’에 젖어 있었다. 하지만 ‘적극적 행복관’으로 보면 행복과 불행은 질적으로 다른 심리 현상이다. 수도꼭지를 예로 들자. 그동안 수도꼭지를 왼쪽으로 돌리면 뜨거운 물이, 오른쪽으로 돌리면 차가운 물이 나오는 것처럼 마음을 어떻게 먹느냐에 따라 행복할 수도, 불행할 수도 있다는 주장이 주류를 이뤘다. 하지만 행복심리학에서는 본질적으로 다른 현상으로 본다. 요즘도 목욕탕에 가면 차가운 물이 나오는 수도꼭지와 뜨거운 물이 나오는 수도꼭지가 따로 있는 것처럼 행복과 불행이 질적으로 다른 심리 현상이라는 얘기다. 인간의 뇌도 행복이 나오는 수도꼭지를 틀어야 행복해질 수 있다.

서은국 연세대 심리학과 교수가 2일 연세대 연구실에서 서울경제와 만나 “코로나19로 인해 개인의 자유가 침해받으면서 행복감이 줄어드는 현상이 매우 우려된다”고 말했다. /권욱기자

-진화론의 관점에서 행복의 기원을 연구한 점이 매우 인상적이다.

△진화론의 관점에서 보면 감정이나 심리도 생존을 위한 도구다. 갑자기 닥치는 위험에 대처해 살아남기 위해서는 외부 환경에 대한 불안을 갖고 있어야 한다. 결국 인간의 신체뿐 아니라 감정이 작동하는 방식도 생존 및 재생산(번식)과 직결된 것이다.

-아리스토텔레스 식으로 말하면 행복은 인간이 추구하는 숭고한 가치인데 이러한 철학적 접근이 무의미해진 셈인가.

△엄밀히 말하면 행복은 실존하지 않는, 인간의 머리로 만들어낸 관념일 뿐이다. 행복과 가장 관련성이 높은 감정은 쾌감이다. 먹고 자는 것, 사랑, 취직, 승진 등 인간을 기쁘게 하는 모든 것들이 넓은 의미의 쾌감이다. 사람마다 다르게 조합된 쾌감 덩어리가 바로 ‘플레저(pleasure·즐거움)’다. 인간의 감정을 신호등으로 비유하면 인간은 ‘행복 전구’를 켜기 위해 애를 쓰며 살아간다. 쾌감을 유발하거나 유발할 것으로 기대되는 것들, 예를 들어 맛있는 음식이나 간절히 기다렸던 취직, 사랑하는 연인 등 행복 전구를 켜는 모든 것이 플레저의 범주에 들어간다.

-행복이 목적이 아닌 수단이라는 얘기인가.

△다른 생물처럼 인간 역시 생존하고 번식하기 위해 살아가게끔 설계돼 있다. 그런데 인간처럼 뇌 구조가 복잡한 고등생명체의 경우 ‘행복’이란 신호등은 매우 유용한 도구다. 일종의 소프트웨어인데 우리 자신은 인식하지 못하지만 생존과 번식을 위한 숱한 과제를 해결하면서 얻는 그때그때의 쾌감을 행복감으로 느끼도록 설계돼 있다. 그래서 맛있는 음식을 먹을 때, 사랑하는 사람을 만날 때, 기다리던 합격 소식을 들을 때 행복감을 느끼는 것이다. 그래야만(행복감을 느껴야만) 식사를 하고 연애를 하면서 생존과 번식이라는 궁극의 목표를 달성할 수 있기 때문이다.

-현대인들에게 물질적 성취는 행복의 중요한 전제조건이라는 주장도 있는데.


△행복 전구를 켜는 대표적 수단이 돈이라고 인식하는데 돈은 ‘시원한 물병’에 비유할 수 있다. 사막에 있을 때는 엄청난 행복감을 제공하지만 사막을 벗어나 갈증을 느끼지 않을 땐 그만큼의 행복감을 주지 않는다. 아주 빈곤한 상황에 놓여 있는 사람에게 물질은 행복과 관련성이 높다. 하지만 기본적 결핍이 해결된 후에는 돈이란 ‘잉여의 물’에 불과하다.

-우리나라는 선진국 대열에 진입했지만 행복지수가 매우 낮은 편이다.

△대한민국은 물질의 가치가 상대적으로 높은 사회다. 대부분 사람이 자신의 소득 수준에 비해 행복하지 않다고 생각하고 비관하며 살고 있다. 결핍한 사회가 아닌데도 행복하지 않다는 ‘결핍의 행복관’에 젖어 있는 것이다. 해방 이후 급격한 산업화 과정을 거치면서 불안했던 삶에 안정감을 줬던 경제력이 미래의 행복을 보장할 것이라는 착각 속에서 여전히 머물러 있는 것이다.

서은국 연세대 심리학과 교수가 2일 연세대 연구실에서 서울경제와 만나 “코로나19로 인해 개인의 자유가 침해받으면서 행복감이 줄어드는 현상이 매우 우려된다”고 말했다. /권욱기자

-그런 착각 속에 머물러 있는 이유는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비교문화를 연구하는 학자들은 우리나라를 비롯한 동북아시아 국가를 유교적 가치관, 즉 집단주의적 성향이 강한 사회로 묶는다. 수직적이고 가부장적이면서 매우 규범화된 사회다. 당연히 타인과 사회의 잣대가 나의 기준보다 우위에 놓여 있다. 집단주의적 사회에서는 내가 내 인생을 어떻게 사느냐가 아니라 다른 사람의 눈에 내가 어떻게 보이느냐가 중요하다. 얼마나 행복한 삶을 살고 있는지가 어느 동네 몇 평짜리 아파트에 거주하는지, 어떤 브랜드 자동차를 타고 다니는지로 판가름나는 셈이다. 이런 잣대로 타인을 판단한다는 사실을 모두가 인식하고 있으니 당연히 물질에 집착하게 되지 않겠는가.

-코로나19 재확산으로 국민 불안이 커지는 가운데 정부의 통제 범위도 매우 커진 것 같다.

△거칠게 표현하면 정부가 국민을 ‘초딩(초등학생)’ 취급하며 시시콜콜 간섭한다. 그렇게 해도 되는 권리와 그렇게 해야 하는 역할이 주어진 것처럼 착각하는 것 같다. 행복감이 높은 국가의 공통점은 국가가 국민 눈높이를 수평적으로 맞추고 조력자의 역할에 머물려고 노력한다. 우리나라처럼 국민 위에 군림하면서 내려다보지 않는다. 단적으로 코로나19 확진자가 발생했다고 하루에 수십 통의 재난문자가 쏟아지는 나라가 정상인가. 내가 살고 있는 지역의 재난문자는 필요하지만 전혀 상관없는 다른 지역의 문자까지 쏟아내고 이걸 국민을 지키기 위한 조치라고 강조한다. 코로나19 방역에 도움이 되는 게 아니라 오히려 불필요한 불안을 조장하고 타인을 불신하게 만든다. 이렇게 국민들이 무감각해지다 보면 어느 순간 진짜 위기가 왔을 때 (국가가) 양치기 소년이 된 것처럼 제대로 대처하기 힘들 수 있다.

-코로나19 팬데믹에 따른 어쩔 수 없는 정부의 행태 아닌가.

△코로나19가 갖는 특수성은 인정해야 한다. 정부 차원에서 철저하게 방역해서 확산을 막는 것은 매우 중요하고 필요한 일이다. 하지만 최근 들어 개개인의 자유와 기본권에 대한 존중과 배려가 희석되며 획일화된 사회로 가는 것은 매우 우려스럽다.

-우리나라와 북유럽을 비교한다면.

△몇 년 전 행복 연구를 위해 덴마크에 출장을 갔던 일이 있었다. 덴마크는 행복지수가 매우 높은 국가에 속한다. 당시 대면조사를 진행하면서 ‘일상에서 혐오하는 인간상이 어떤 것이냐’고 물었는데 공통적인 답변이 ‘남의 인생에 참견하는 사람’ 즉 ‘지적질’을 하는 사람이었다. 한대 얻어맞은 느낌이었다. 우리 사회는 전 국민이 자신의 기준으로 남을 평가하고 지적질하는 것을 당연시한다. 이런 사회는 지옥이다. 모든 사람에게 긍정적 평가를 받는 사람은 없다. 그런데도 타인의 기준에 맞추기 위해 자신의 자유의지를 억누르면서 극도의 불안과 스트레스 속에 살아가는 것이다.

-우리 사회가 행복해지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

△우리는 알지도 못하는 ‘익명의 관객’을 만족시키기 위해 인생을 허비하고 있다. 그렇게 해도 남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관객은 매일 바뀌고 그들은 내 인생에서 중요하지 않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한다. 사회 전체적으로는 저(低)신뢰 국가를 고(高)신뢰 국가로 높이는 노력을 해야 한다. 공정과 정의가 훼손되고 타인도 국가도 믿을 수 없는 사회에서는 희망이 없다.
/정민정 논설위원 jminj@sedaily.com



1966년 서울에서 태어나 연세대 심리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일리노이대에서 행복학 분야 권위자인 에드 디너 교수의 지도를 받아 박사학위를 받았다. 미국 캘리포니아대 어바인캠퍼스에서 교수 생활을 시작했고 2003년부터 연세대 심리학과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2006~2009년 연세대 심리학과 인간행동연구소장을 맡았다. 전 세계에서 가장 활발하게 인용되는 행복심리학자 중 한 명으로 ‘세계 100인의 행복학자’에 선정되기도 했다. ‘행복의 기원’ ‘아이가 사라지는 세상(공저)’ 등 다수의 저서가 있다.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