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때 그 사건이 한국 역사의 흐름을 바꿨다.

■[책꽂이]108가지 결정
함규진 지음, 페이퍼로드 펴냄
고조선 시대부터 21세기 현대까지
대한민국 역사는 숱한 결정의 결과
민족 정체성, 공동체 의식 키우거나
북방으로의 진출 포기 계기 되기도

세종대왕역사문화관 내부. 세종의 애민정신과 한글창제 등 문화와 과학의 산물들에 관한 기록이 남아있다./서울경제DB

인간의 삶은 갈등과 결정의 연속이다. 결정은 결코 독립적이지 않으며, 하나의 결정이 또 다른 결정을 부른다. 그리고 이 결정들이 모여 역사라는 큰 흐름을 바꾼다. 또한 어떤 결정은 역사의 물줄기를 바꾸기도 한다. 대한민국 역사의 흐름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친 결정은 무엇일까.

대학교수, 중고교 교사, 민관 연구소 연구원 등 우리 시대 역사학자 105명이 고대에서 현대에 이르기까지 한민족의 운명에 큰 영향을 미친 주요 결정 108가지를 추려내 책으로 펴냈다. 이 작업에 참여한 역사학자 중에는 올해 별세한 이이화 선생을 비롯해 이덕일, 신용하, 전현백, 박노자 등의 전문가도 포함돼 있다. 역사학자들의 의견을 집대성하는 역할은 함규진 서울교대 교수가 맡았다.


■민족 정체성·공동체 의식을 키운 결정

이들이 꼽은 한민족 역사에 가장 큰 영향을 끼친 사건은 1443년 세종대왕의 한글 창제다. 한글이라는 고유 문자 체계는 민족 집단의 의사 소통을 완성했다. 또한 한글은 누구나 쉽게 배우고 쓸 수 있는 문자였기에, 기초적인 인권 수단이 됐다. 아울러 같은 글자를 쓰고 읽는다는 공동체 소속감이 한글 덕분에 싹텄다.

2위는 1366년 이성계의 위화도 회군이 꼽혔다. 기원전 194년 위만의 쿠데타에서 1979년 12.12사태에 이르기까지 한국사의 고비마다 쿠데타가 있었다. 그 중에서도 이성계의 위화도 회군은 조선 건국으로 이어졌을 뿐 아니라 우리 민족이 북방에서 발을 빼는 계기가 됐다. 또한 이성계가 세운 조선은 오늘날 한국의 전통이라 불리는 대부분을 창출했다.

세 번째로 가장 많이 주목 받은 648년 나당동맹이다. 이를 통해 신라가 백제를 물리치면서 한반도의 고대 국가들이 마침내 통합됐고, 한반도를 중심으로 하는 민족 정체성이 생성되기 시작했다. 다른 한편으로는 중국 문화권의 변방 국가가 되는 계기가 됐다. 이어 4위는 1961년 5.16 쿠데타, 5위는 1894년 동학농민운동이 차지했다.


박정희 전 대통령 재임 당시 국군의 날 행사장에서 펼쳐진 카드섹션./사진출처=위키피디아

■가장 많이 중대 결정을 내린 인물은?

그렇다면 한민족 역사에서 가장 많이 중대 결정을 내린 인물은 누구일까.

세종대왕과 박정희 전 대통령이 공동 1위였다. 세종대왕은 한글 창제, 대마도 정벌, 4군 6진 개척, 갑인자 주조, 숙신옹주 친영, 공법 개혁 등의 사건을 주도했고, 박 전 대통령은 5.16 쿠데타, 경부고속도로 착공, 베트남 파병, 한일회담, 한글전용, 10월 유신을 결정했다. 이어 3위에는 조선 태종과 선조, 이승만 전 대통령이 이름을 올렸다. 이밖에 고려 태조 왕건과 광종, 고종, 조선의 광해군과 정조, 흥선대원군, 김일성 전 북한 국가주석, 김영삼 전 대통령, 김대중 전 대통령 등이 2가지 이상 중요한 결정을 내린 인물로 꼽혔다.

이처럼 대부분의 주요 결정권자는 왕이나 대통령 등 최고통치권자였다.

하지만 역사를 조금 더 깊이 들여다보면 지배계층이 아니었던 인물도 역사에 영향을 준 결정을 내렸다. 노비 신분이었지만 앞장 서 독도를 수호한 안용복, 대동여지도를 제작한 김정호, 한국 천주교를 창설한 이승훈 등이 이에 해당한다. 동학농민운동, 광주민주화운동 등 다수의 민중이 주체가 된 결정적 사건도 있었다.

책은 2008년 초판의 리커버 판이다. 초판 후 12년의 세월이 흐르는 동안 새로운 사건들이 발생 된 데 따라 책 내용도 일부 수정됐다.

제75주년 광복절을 하루 앞둔 8월 14일 서울 서대문독립공원 내 대형태극기 앞에서 시민들이 사진을 찍고 있다./권욱기자

저자는 “이 책을 쓰고, 편집하고, 인쇄하고 독자들이 읽는 시점에서도 중요한 역사적 결정은 이루어지고 있다”며 “그 모든 일을 새로이 모아 ‘새로운 결정판’을 내고 싶은 생각 또한 간절하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저자는 “그 때는 지금보다 더 긍정과 자랑에 차서 책을 내게 될까? 그것은 아무도 모른다”며 “이는 우리 모두의 손에 달려 있다”고 덧붙였다. 1만8,000원.
/정영현기자 yhchung@sedaily.com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