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요 시중은행들이 신규 사모펀드의 수탁을 거부하고 나섰다. 문제 많은 사모펀드를 판매하지 않겠다는 데서 나아가 아예 사모펀드에서 발을 빼겠다는 것이다. 당장 사모펀드 운용사들은 펀드 자산을 수탁은행에 맡기지 못해 신규 펀드 설정을 대부분 중단한 것으로 알려졌다. 2일 금융권에 따르면 옵티머스운용의 수탁은행인 하나은행에 대한 금융감독원의 검사 착수가 이뤄진 지난달 초부터 은행들의 수탁거부가 잇따르고 있다. 수탁은행제도는 운용사가 고객재산과 회사자금을 섞어 투자하는 일종의 ‘물타기’를 막기 위해 수탁회사에 맡겨 변칙 운용을 막겠다는 취지로 도입됐다. 옵티머스 사태의 경우 금감원은 판매사와 수탁사의 상호 감시체계가 미비한 것으로 보고 현장 검사에 착수한 데 이어 수탁은행에 운용 과정을 감시해야 할 의무를 강화했다. 이때부터 은행권의 수탁거부가 속출하기 시작했다. 단순 ‘금고지기’인 수탁업무에도 책임이 강화되자 아예 사모펀드는 수탁하지 않겠다는 방침을 세운 것이다.
최근 업력 20년의 한 종합자산운용사는 수탁 주거래 은행과 사모펀드 설정을 논의 중이었지만 이 같은 방침 아래 협의가 무산됐고, 한 글로벌자산운용사는 기존에 출시한 해외계열사 펀드에 투자하는 재간접펀드를 새로 설정하려다 역시 수탁이 거부됐다. 단순히 영세하거나 신생 사모운용사에 대한 거부에 그치지 않고 종합운용사·글로벌운용사 등 업력과 트랙레코드(운영실적)가 입증된 곳까지 수탁을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초대형 투자은행(IB) PBS본부를 통해 간접적으로 은행과 체결했던 수탁업무 역시 중단된 상태다. 은행 입장에서는 큰 수익도 안 되는데 사모펀드의 무한책임자가 되자 사실상 ‘손절’에 나선 셈이다. 은행 관계자는 “사모펀드 수탁 수수료율은 2bp(0.02%) 수준”이라며 “1조원을 수탁받으면 2억원을 버는데 사고가 터지면 판매사라서 대규모 배상을 해야 하고, 수탁사라서 또다시 책임을 져야 한다”고 말했다.
상황이 이런데도 금융당국에서는 이렇다 할 움직임이 없다. 금융권 관계자는 “사모펀드가 맡았던 기업자금 조달이 경색될 수 있는데 금감원은 관망하는 모습”이라고 했다. 실제 7월 말 기준 코스닥벤처펀드 설정액 2조9,700억원 가운데 83.8%(2조4,900억원)가 사모펀드에서 조달됐다. 특히 수탁거부 여파로 사모운용사들이 큰 어려움을 겪을 수도 있다.
이에 대해 금감원의 한 관계자는 “수탁은행의 펀드 책임이 강화되면서 내부통제, 변호사 선임 등 대책을 마련하는 과도기적 상황에서 수탁거부가 나타나고 있는 것으로 파악했다”며 “수탁 위탁 업무와 관련 별도 감독규정은 따로 없어 상황을 지켜보고 있다”고 말했다.
/송종호·이지윤기자 joist1894@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