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터리] 21대 국회가 꼭 해야 할 일

우태희 대한상공회의소 상근부회장


이번 주부터 정기국회가 문을 열었다. 지금까지 전국 상공회의소 회장단은 국회가 새로 구성될 때마다 입법 방향을 제안해왔다. 올해도 상의는 21대 국회 개원에 맞춰 국가 재도약과 선진국 완성을 위한 과제들을 ‘경제계 제언집’으로 묶어 전달했다. 제언집에는 국회가 앞장서서 공동선(共同善)의 국가 비전을 확립해 우리 경제의 역동성을 회복해주기를 바라는 경제계의 염원과 실행 방안이 담겨 있다.

특히 상의 제안 중 ‘선진국형 입법영향평가제’가 이번 국회에서 꼭 실현되기 바란다. 정부입법은 법안 작성, 부처·당정협의, 입법예고, 규제영향평가, 법제처 심사, 차관회의, 국무회의 의결, 대통령 결재 등 8단계를 거쳐 국회 제출까지 통상 5~7개월이 걸린다. 반면 의원입법은 10인 이상 의원이 동의하면 발의되고 검토 절차도 생략 가능해 빠르면 보름 만에 국회에 제출된다. 그러다 보니 20대 국회의 의원발의 법안은 2만3,047건으로 정부입법(1,094건)의 20배를 넘는 역대 최대치를 기록했다.


선진국들은 의원입법도 엄격한 입법영향평가를 받는다. 미국은 의회가 모든 법률을 발의하기 때문에 상임위원회에서 법안심사가 이뤄진다. 미국 상임위는 정부의 의견조회는 물론 의회 조사국과 예산처·회계감사원 등에서 법안을 다층적으로 검토하기 때문에 ‘법안의 무덤’이라고까지 불린다. 영국에서는 의원입법도 정부 규제개혁실과 규제개혁위원회(독립기구)의 사전심의를 거쳐 발의된다. 독일은 입법영향평가를 세분해 사전·병행·사후평가 등 3단계로, 스위스는 사전과 사후평가 2단계로 나눠 실시하고 있다.

우리 국회도 입법영향평가 도입을 과제로 분명히 인식하고 있다. 20대 국회 때는 문희상 전 국회의장이 직접 나서 사전입법영향평가 제도 도입을 위한 국회법 개정을 추진했지만 결국 무산됐다. 의원입법은 다양한 이해관계를 담아야 하는데 입법영향평가제는 경제성 평가 위주여서 다각적 접근이 어렵고 국회의 입법권을 침해할 수 있다는 게 주된 이유다. 사실 입법권 침해 문제는 행정부가 아닌 국회에서 입법영향평가를 하면 해결된다. 21대에 새로 발의된 국회법 개정안은 김태년 대표안이나 정경희 의원안 모두 국회 입법조사처에서 입법영향평가를 하도록 제안하고 있다.

우리 경제가 선진사회로 진입하려면 시대 흐름에 맞지 않는 기존 질서와 시스템은 과감히 바뀌어야 한다. 지금 필요한 것은 단순한 규제개혁을 넘어서 낡은 법·제도의 총체적 재설계와 전체 규제의 틀을 다시 잡는 법·제도의 혁신이다. 규제로 인한 사회적 비용과 소비자 편익을 분석해 편익이 비용보다 클 경우 해당 규제는 당위성을 갖게 된다. 입법영향평가제가 21대 국회에서 도입돼 우리 경제사회 운영시스템의 업그레이드 계기가 되기를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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