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 '전교조 합법' 판결] 재계 “해고자 노조가입은 회사복귀 의미…노사관계 악화할 것”

"예상치 못한 판결…인력 부담
노동법 근간 흔드는 판결" 우려
勞 "노조법 개정안 고쳐라" 압박
ILO 비준, 국회 '뜨거운 감자'로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3일 전교조가 고용노동부를 상대로 낸 법외노조 통보처분 취소 소송 상고심에서 원고 패소 판결한 원심을 깨고 원고승소 취지로 사건을 서울고법으로 돌려보냈다.권정오(왼쪽 네번째) 전국교직원노동조합 위원장과 조합원들이 이날 오후 서초동 대법원 앞에서 기뻐하고 있다. /연합뉴스

고용노동부의 전국교직원노동조합(전교조) ‘법외노조’ 통보가 위법하다는 대법원 판결은 실업·해고자의 노조 가입 허용이라는 국제노동기구(ILO) 핵심협약 비준과 직결되는 사안이다. 단순한 교원 노조의 문제를 넘어 우리나라 노사관계 전체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것이다. 대법원이 ‘법외노조 통보’를 할 수 있도록 규정한 노조법 시행령이 헌법 가치인 노동권을 지나치게 제한한다고 판단하면서 현재 국회에 상정된 ILO 핵심협약 비준에도 탄력이 붙을 것으로 보인다.

당장 민주노총은 ‘사용자의 요구를 대폭 수용한 노조법 개정안을 폐기하라’며 여당을 압박했다. 반면 경영계는 “해고자·실업자의 노조 가입이 허용된다는 취지”라며 “노동법의 근간을 뒤흔드는 판결”이라고 밝혔다.


◇재계 “예상치 못한 판결…노사관계 근간 뒤흔들려”=대법원이 3일 ‘고용부가 해직자가 가입돼 있다는 이유로 전교조에 보낸 노조 아님 통보는 적법하다’는 원심을 뒤집고 파기환송 판결을 내리자 전국경제인연합회는 “이번 판결은 근로자가 아닌 자의 노조 가입을 허용하는 경우 노동조합으로 보지 아니한다는 현행 법률 규정과 실질적으로 배치된다”고 반발했다.

ILO 핵심협약 비준의 핵심은 해직·실직자의 노조 가입 허용이다.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 2조 4항은 ‘근로자가 아닌 자의 가입을 허용하는 경우는 노동조합으로 보지 아니한다’고 돼 있다. 교원노조법 역시 이를 준용해 교원노조의 가입 요건을 ‘교원’으로 규정하고 있다. 법령에 따라 고용부가 시행령에 ‘노조 아님’ 처분을 규정했고 박근혜 정부 때인 2013년 해직교사 9명을 조합원으로 둔 전교조에 대해 ‘노조 아님’ 통보를 보냈다. ILO 핵심협약은 결사의 자유를 규정하고 있는데 우리나라 노조법이 해직자의 노조활동을 지나치게 제약한다는 주장은 이때부터 본격화됐다. 김희성 고려대 교수는 “대법원 판결은 결사의 자유라는 헌법 정신과 현행법 중 어느 쪽에 무게중심을 둘 것이냐의 문제”라며 “노동 3권의 취지가 시행령과 부합하느냐의 여부로 판단한 것”이라고 말했다.


재계는 당혹감을 감추지 못하는 눈치다. 대법원은 판결문에서 시행령으로 노동 3권을 제한하는 것이 위법하다며 단결권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았지만 결과적으로는 해고자·실업자의 노조 가입을 인정하는 결과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고용부는 “대법원의 판결 취지에 따라 법외노조 통보 처분을 취소하는 절차를 이른 시일 안으로 진행하겠다”고 밝혔다. 결국 ‘교원 아닌 조합원’이 있는 전교조가 합법 노조의 테두리에 들어오게 되는 것이다.

재계 관계자는 “민간 부문의 일반 노조의 경우에도 해고자가 가입된 노조에 대해 행정관청이 법외노조 통보를 할 수 있는 법률적 근거가 없게 된다”며 “해고자·실업자의 노조 가입이 허용된다는 취지의 판결로 인식될 수 있으며 우리 노사관계의 기본 틀이 전반적으로 뒤흔들리게 될 수 있는 중차대한 사안”이라고 지적했다. 정부는 해고·실직자의 노조 가입을 허용하더라도 노조 전임자 활동은 제한하고 있어 큰 문제가 없다는 입장이지만 재계는 폭력행위 등으로 해고된 조합원이 대거 노조에 가입하면 노사 관계가 더욱 악화할 것이라고 우려하고 있다. 한 완성차 업체 관계자는 “해고자가 기업 노조에 가입하면 사실상 채용을 허용하는 게 전제된다”며 “실질적으로 복직을 시켜줘야 하는 의무가 주어지고 이는 회사의 인력관리에도 큰 부담을 준다”고 말했다.

◇“노조법 개정안 새로 제출하라”며 목소리 높인 민주노총=전교조와 전교조 상급단체인 민주노총은 이날 대법원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정부가 국회에 제출한 ILO 핵심협약 비준 관련 노동법 개정안이 사용자단체의 주장을 대폭 반영했다며 수정을 요구했다. 민주노총은 “정부가 사용자의 요구를 대폭 수용한 노동 개악 법안을 제출했으니 그 의도와 진심이 어디에 있는지 명약관화하다”며 “국제규범, 일반 상식에 맞는 개정안을 제출하라”고 주장했다.

민주노총의 요구는 재계의 요청사항을 일부 반영한 집단적 노동관계법(노조법 등) 개정안을 노동계에 유리하도록 되돌리라는 뜻이다. 지난해 고용부가 △단체행동 시 사업장 내 생산 시설과 주 업무시설 점거 금지 △단체협약 유효기간 2년에서 3년으로 연장 등을 포함한 노조법 개정안을 발표했을 때 “ILO 핵심협약의 비준은 비정상적 노사관계를 국제 기준으로 올리는 것이므로 사용자와의 타협 대상이 아니다”며 해고·실직자의 노조 가입 등 노동계에 유리한 내용만 담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김재하 민주노총 비상대책위원장은 “정부가 제출한 입법안에는 독소조항이 많다”고 지적했다.

◇ILO 핵심협약 비준, 정기국회 ‘뜨거운 감자’로 부상=대법원 판결이 ‘노조할 권리’를 우선시하는 방향으로 나오면서 공은 국회로 넘어가게 됐다. 전문가들은 이번 정기국회에서 더불어민주당이 ILO 핵심협약 비준을 추진할 것으로 전망했다. 20대 국회까지만 해도 여소야대의 정국 상 ILO 핵심협약 비준안과 집단적 노동관계법 개정안이 통과되기 어려웠지만 21대 국회는 민주당이 176석을 차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소속 윤준병 민주당 의원은 “아직 입법의 우선순위를 정하지는 않았지만 ILO 핵심협약은 유럽연합(EU)과의 외교관계도 있어 엄중함을 인식하고 있다”며 “정부에서 입법안을 제출했기 때문에 심도 있게 논의하고 문제가 없다면 이른 시일 내에 처리할 것”이라고 말했다.

20대 국회에서 ‘재계의 요구도 균형적으로 반영해야 한다’고 주장했던 국민의힘의 입장은 크게 바뀌지 않았지만 방어는 쉽지 않아 보인다. 환노위 간사인 임이자 국민의힘 의원은 “재계 쪽에서 주장하는 파업 시 대체근로 허용, 부당노동행위 처벌 규정 삭제 등도 함께 논의해야 한다”며 “노사의 요구 사항을 균형감각을 갖고 봐야 한다”고 말했다. 박지순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ILO 핵심협약 비준과 관련한 노조법·교원노조법 개정안이 국회에 상정돼 있는 상황에서 대법원이 입법 작용을 기다렸으면 좋았을 것이라는 아쉬움이 남는다”고 말했다.
/변재현·김능현기자 humbleness@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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