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나 매각 협상 결렬...구조조정→재매각 수순 밟을 듯

아시아나항공 인수합병(M&A) 협상이 결렬 수순에 돌입했다.

채권단이 대규모 추가 지원을 제안했지만 HDC현대산업개발이 아시아나항공에 대한 재실사 요구를 고수하며 이견을 좁히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아시아나항공은 산업은행 중심의 채권단 관리에 들어갈 가능성이 높아졌다.


3일 재계와 금융권에 따르면 HDC현산은 전날 산은에 e메일을 보내 12주간의 재실사를 요구했다. 채권단이 이미 거절한 재실사 카드를 현산이 다시 꺼내 들면서 결국 아시아나항공 인수 계약이 결렬 수순을 밟는 게 아니냐는 관측이 제기된다. 채권단은 이르면 이번주 계약해지를 통보할 것으로 전해졌다.★관련기사 6면

채권단의 한 관계자는 “현산이 e메일로 최종 답을 보냈다고 보고 있다”며 “추가 액션이 더 나오지 않는다면 방향은 잡힌 것 같다”고 말했다. 앞서 산은은 지난달 3일 현산의 재실사 제안을 일축하면서 현산 측이 진정성을 보이지 않으면 인수 무산이 불가피하다는 입장을 밝힌 바 있다.

협상 결렬로 채권단은 ‘플랜B’를 마련할 것으로 보인다. 아시아나항공에 대한 채권단 관리, 기간산업안정기금 투입, 감자를 포함한 구조조정 방안 등이 담길 것으로 알려졌다.

향후 협상 당사자인 금호산업과 현산은 이행보증금 반환 문제를 두고 치열한 법정다툼을 벌일 것으로 전망된다. 현산 컨소시엄은 지난해 12월 금호산업이 보유한 아시아나항공 구주 30.77%를 3,228억원에 인수, 2조1,772억원 규모의 유상증자 진행 등 총 2조5,000억원을 제시했다. 이 중 인수가액의 10%인 2,500억원을 이행보증금으로 냈다.

아시아나항공의 인수합병(M&A) 무산은 사실상 예견된 일이었다. HDC현대산업개발과 산업은행·금호산업 간 이견이 수개월째 좁혀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금호산업과 채권단이 몇 달째 현산에 협상 테이블에서 만나자고 제안했으나 현산은 ‘서면 협상’ 원칙을 고수하며 응하지 않았다. 결국 양측이 자신들만의 주장만을 반복하는 가운데 아시아나항공의 재무구조는 더욱 악화됐다.


현산은 줄곧 ‘재실사’를 요구했다. 겉으로는 아시아나항공과 금호산업에 대한 신뢰가 무너졌다는 이유를 댔지만 속내는 ‘노딜’ 선언을 위한 명분 쌓기에 불과했다는 해석이 나온다.

재실사 명분으로 아시아나항공의 재무가 악화된 점, 부실 계열회사에 대한 자금지원, 외부감사인의 부정적인 감사의견 등을 들었다. 아시아나항공을 인수하더라도 경영 정상화를 위해서는 인수자금보다 더 많은 자금이 추가로 필요하다고 본 것이다. 현산은 딜 무산시 법적 소송으로 번질 가능성도 염두에 둔 것으로 풀이된다. 지난 2008년 대우조선해양 M&A 당시 한화의 계약 지연으로 딜이 무산되며 이행보증금 반환소송이 제기됐다. 당시 대법원은 “확인 실사 기회를 갖지 못했다”는 한화의 주장을 받아들여 이행보증금 일부와 지연이자를 돌려주라는 판결을 내렸다.

이번 딜 무산으로 채권단은 ‘플랜B’를 가동할 것으로 보인다. 아시아나항공은 2010년에 이어 10년 만에 채권단의 자율협약에 돌입할 가능성이 크다. 이 경우 채권단은 출자전환 등을 통해 아시아나항공의 지분을 취득해 최대주주로 올라 경영진 쇄신과 구조조정 등 체질개선에 나서게 된다.

산은은 아시아나항공의 영구채 8,000억원을 보유하고 있다. 이를 출자전환할 경우 지분율이 37%까지 올라가 금호산업(31%)보다도 많아진다.

채권단은 대주주인 금호산업 지분에 대한 무상감자 논의도 시작했다. 또 아시아나항공의 자본금을 줄이는 무상감자를 실시함과 동시에 신규 자금 지원을 통해 회사 경영 정상화에 나서는 안을 논의하고 있다. 아시아나항공의 무상감자는 옛 금호산업과 금호타이어의 경영 정상화 과정과 유사할 것으로 예상된다.

채권단과 아시아나항공은 이르면 이번 주 기간산업안정기금도 신청할 것으로 보인다. 기안기금 지원 금액은 올해까지 최대 2조원가량으로 추정된다. 아시아나항공의 자금난이 장기간 지속되고 있는데다 현산의 인수 무산까지 겹쳐져 자산유동화증권(ABS) 채무불이행, 대규모의 채무 조기상환이 발생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이를 막기 위해 채권단은 일종의 ‘보증’ 의미로 정부 차원의 지원을 이끌어낼 방침이다.

업계 관계자는 “아시아나항공은 지난 2·4분기 화물 운송으로 ‘반짝’ 실적을 냈으나 지속 가능성은 낮아 심각한 상황”이라며 “채권단은 자율협약을 실시한 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종결 등 상황이 나아지면 재매각에 나설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한편 채권단은 현산의 재실사 요청에 함구하고 있다. M&A 무산에 대한 책임론이 불거질 수 있어서다. /김능현·박시진기자 nhkimchn@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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