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파식적]로도스섬


‘이솝 우화’에 나오는 이야기다. 그리스의 한 허풍쟁이 5종경기 선수가 “원정 갔던 로도스섬에서 놀랍게도 잘했는데, 로도스에 가면 내 모습을 본 사람이 증언해줄 것”이라고 으스댔다. 그러자 옆에 있던 사람이 “여기가 로도스다. 여기서 뛰어보라(라틴어로 Hic Rhodus, hic salta)”고 했다. 이 문장은 진짜 능력은 현장에서 입증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할 때 자주 인용된다. 철학자 헤겔 등도 즐겨 썼던 표현이다.


우화의 배경이 되는 로도스섬은 그리스 본토에서 동쪽으로 363㎞ 떨어졌지만 터키와의 거리는 14㎞에 불과하다. 면적은 제주도보다 조금 작고 지중해성 기후에 연 평균 기온은 섭씨 8~30도여서 사람이 살기에 매우 좋다. 기원전 4세기 무렵 알렉산더 대왕의 동방 원정으로 헬레니즘 시대가 열리면서 동지중해의 교역 중심지로 3세기가량 번창했다. 도시국가임에도 막대한 부와 군사력을 갖췄으며 학문 분야의 명성은 아테네와 맞먹을 정도였다고 한다. 지진으로 사라졌지만 세계 7대 불가사의의 하나였던 ‘로도스 청동 거상’이 세워진 것도 이 당시였다. 로도스가 외침을 격퇴한 후 수호신에 바치려고 30m가량 높이의 아폴로상을 만든 것이다. 로도스의 풍요는 이후 편입된 고대 로마, 동로마 제국 시대로 이어졌다. 십자군전쟁 때는 수도사들 중심으로 운영된 구호기사단이 2세기가량 지배하기도 했다. 이 섬의 대표 유물인 그랜드마스터 궁전은 구호기사단의 요새였다. 이 섬은 16세기에는 오스만제국에 점령됐고, 이탈리아 왕국으로 넘어갔다가 제2차 세계대전 후 그리스령으로 복귀했다.

요즘 로도스 주변을 포함한 동지중해의 지하자원을 둘러싸고 그리스와 터키 등의 반목이 깊어지고 있다. 미국의 지질 조사 결과 이곳에 17억배럴의 석유와 3조4,000억㎥ 규모의 천연가스가 매장된 것으로 드러났기 때문이다. 이곳은 터키와 그리스, 키프로스의 배타적경제수역(EEZ)이 서로 겹친다. 터키가 지난달 자원 탐사에 나선 뒤 관련국들이 해상 군사훈련을 펼칠 정도로 긴장이 고조되고 있다. 자원 발견의 축복이 재앙으로 변하지 않으려면 관련국들이 과욕을 부리지 않아야 할 것이다.

/오현환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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