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파식적]샤오펀훙

중국 공산당은 1978년 개혁개방 이후 도입된 시장경제 체제가 경제적 풍요를 가져왔지만 사회주의라는 이념적 기반을 약화하고 있다고 판단했다. 특히 1989년 톈안먼 사태 유혈 진압 후 집권한 장쩌민 전 국가주석은 공산당 장기 집권의 정당성을 뒷받침하기 위해 애국주의 교육을 지시한다. 당시 혁명 유적지를 순례하도록 하는 ‘홍색 관광’ 붐까지 일었을 정도다. 이러한 교육을 받으며 성장한 세대가 바로 ‘주링허우(90后·1990년대 태어난 세대)’와 ‘링링허우(00后·2000년대 출생한 세대)’ 등 지금의 10~20대다. 디지털 기기에 친숙하면서 애국주의 교육까지 받은 이들은 중국의 입장을 옹호하며 웨이보 등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활동에도 적극적이다. 이 가운데 극단적 애국주의 누리꾼 집단의 대표적 사례로 ‘샤오펀훙(小粉紅)’이 꼽힌다.


충성 맹세하는 중국 어린이들.

샤오펀훙의 시발점은 2003년 여성문학 발전을 위해 개설된 ‘진장원쉐청(晋江文學城)’으로 알려졌다. ‘작은 분홍색’이라는 의미의 ‘샤오펀훙’은 사이트의 메인 페이지가 ‘펀훙(粉紅)’, 즉 분홍색이라는 점에 착안한 이름이다. 당초 순수한 문학 발전을 표방했지만 극단적 애국주의에 심취한 젊은이들이 주축이 되면서 중국을 비판하는 세력에 강한 적개심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일각에서는 문화대혁명 시절 마오쩌둥 전 주석을 추종한 홍위병과 닮은꼴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가수 이효리씨가 방송에 출연해 “예명으로 ‘마오’ 어때요”라고 말한 후 샤오펀훙 등으로부터 수십만건의 악성 댓글에 시달리다가 최근 SNS 중단까지 선언했다. 사태가 심각해지자 사이버 외교사절단 반크는 중국 누리꾼의 사이버 폭력을 세계에 알리는 디지털 포스터를 제작하는 등 맞대응에 나섰다. 자신이 태어나고 자란 나라를 아끼는 마음은 나무랄 일이 아니다. 하지만 맹목적 민족주의가 중국의 미래를 책임질 젊은이들 사이에 무서운 속도로 확산하고 있다는 점은 매우 우려된다. 자신들만 옳다고 여기고 다른 나라나 민족을 배척하는 국수주의가 얼마나 큰 비극을 가져왔는지 현대사의 수많은 전쟁들이 가르쳐준 교훈을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정민정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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