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는 곳간을 메우기 위해 매년 건강보험료를 인상하고 있지만 일부 의료기관이 비급여항목의 가격을 인상하는 등 풍선효과가 나타나 의료소비자의 부담은 여전하다. 게다가 건강보험 적립금이 5년 내에 소진될 것이라는 우려도 나와 지속 가능한 건강보험 정책을 수립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9일 국회예산정책처에 따르면 오는 2023년 우리나라 건강보험 적립금은 지난 2018년 20조5,955억원의 절반 수준인 11조807억원으로 쪼그라들 것으로 전망된다. 일각에서는 2024년에 적립금이 소진될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건강보험 재정 악화의 가장 큰 이유는 고령화다. 병원을 찾는 노인인구가 급격히 늘어나고 생산가능인구는 감소해 지출은 늘어나고 있지만 징수 규모는 줄어들고 있는 것이다. 실제 건강보험공단에 따르면 연간 65세 이상 환자의 총 진료비는 현재 31조6,527억원에서 2025년 57조9,446억원, 2030년에는 87조6,130억원으로 비약적으로 늘어날 것으로 예상된다.
앞으로 돈이 많이 들어갈 것이 뻔한 상황에서 비급여항목을 급격히 줄이는 ‘문재인 케어’는 건보공단의 재정난을 더욱 부추기고 있다. 문재인 케어의 핵심은 자기공명영상(MRI), 초음파 검사, 2인 병실 등의 비급여항목을 급여화해 건강보험 보장률을 2016년 62.7%에서 2023년 80%까지 확대하는 것이다. 정책 시행 이후 하위 40% 저소득층의 의료비 부담이 크게 줄어드는 등 일정 부분에서는 성과를 냈지만 상급병원 쏠림현상과 ‘의료쇼핑’도 함께 급증했다. MRI 사례가 대표적이다. 보건복지부가 지난해 10월 뇌·뇌혈관 등에 MRI 보험 적용을 확대해 환자의 비용 부담이 줄어들자 MRI 기기를 보유한 상급병원에서의 MRI 촬영이 급증했을 뿐 아니라 여러 병원을 돌아다니며 MRI를 촬영하는 사례도 크게 늘었다. 이에 따라 건보 재정 지출이 예정보다 50% 이상 늘었고 복지부는 서둘러 일부 환자에 한해 본인부담률을 높이기로 했다. 국회예산정책처는 6월 내놓은 보고서에서 “보장성 강화 정책으로 건강보험보장률은 증가했지만 의원급 보장률은 감소하고 병원급은 여전히 낮은 수준”이라며 “정부는 중증질환 중심의 보장성 강화로 상급종합병원의 보장률이 상대적으로 크게 개선됐다고 해명하지만 중증질환뿐 아니라 일반진료에서도 보장성이 강화됐으며 이는 상급병원 쏠림현상으로 나타나고 있다”고 지적했다.
전문가들은 건강보험의 안정적 재정 운영을 위해서는 건보료 인상보다 의료비 지출 증가 속도를 관리해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의료계의 한 관계자는 “경재협력개발기구(OECD) 국가의 평균 외래진료 횟수는 7.1회지만 우리나라의 국민 1인당 외래진료 횟수는 16.6회로 두 배가 넘는다”며 “저출산으로 보험료 부담 주체 인구가 줄어드는 만큼 재정지출 증가 속도를 늦추는 방안 마련이 시급하다”고 말했다. /서지혜기자 wise@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