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인간의 개성에는 창조주의 지워지지 않는 흔적이 새겨져 있다. 모든 사람은 존중되어야 한다. 하느님께서는 모든 사람을 사랑하기 때문이다.”
마틴 루터 킹 목사는 암살되기 1년 전인 1967년 이런 글을 남겼다. 미국 침례교 목사이자 흑인 인권운동가가 쓴 이 글은 이는 페미니즘과 동성애자 권리 운동에서도 흔히 인용된다. 킹 목사의 양성평등 원칙은 성경에 그 기원을 두고 있지만, 대다수 기독교인들의 눈에는 기독교 자체에 대한 공격으로 비친다. 그 자체가 모순이고, 역설인 것이다.
책 ‘도미니언’은 기독교가 어떤 과정을 거쳐 서구 사회와 서양인의 정신을 지배하게 되었는지, 그리고 그 결과 세상이 어떻게 변화했는지를 다뤘다. 책은 오늘날 서구는 기독교 세계가 발전해 변모한 사회라기보다는 기독교 세계의 연속이라고 정의한다. 종교와 세속의 분리, 일부일처제, 법률과 과학은 물론이고, 계몽주의, 인권, 민주주의, 마르크스주의 같은 근대의 진보적 개념과 심지어 무신론에조차 기독교의 그림자가 드리워 있다고 말한다.
책은 기독교의 역사를 관통하는 핵심 키워드로 모순과 역설을 꼽는다. 십자가형은 고대 로마에서 가장 고통스럽고 경멸받는 ‘최고의 형벌’이었다. 그래서 예수의 처형 이후 십자가형을 당한 사람을 신으로 숭배하는 것은 로마인들에게 매우 혐오스럽고도 기괴한 일이었다. 그러나 수백 년 뒤 십자가형은 죄악과 죽음에 대한 승리의 상징이 되었으며, 1,000년이 지나자 인류사상 가장 유명하고 위대한 헌신과 연민의 아이콘이 되었다. 마태오 복음서 20장 16절에 등장하는 ‘꼴찌가 첫째가 되고 첫째가 꼴찌가 될 것이다’ 라는 기독교의 핵심적 가르침은 그 자체로 역설이었고, 이후 모든 상하주종 관계에서 이 역설은 힘을 발휘하고 있다. 모순은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당국에 의해 처형된 하느님을 따르는 기독교 교회는 이제 반대로 박해하는 사회를 감독하고 있다고 책은 꼬집는다.
이러한 모순과 역설은 한편으로 중세 이후 지배적 세력이 된 기독교 교회와 대항해 시대 이후 전 세계를 지배하게 된 서유럽의 지위 변화에 크게 기인한다. 과거 기독교는 박해받는 소수 세력으로 혁신적이고, 진보적인 영향을 끼쳤지만, 그들이 주류 지배세력이 되자 기독교의 가르침에 스스로 발목을 잡히는 형국이 됐다. 책은 중세 이후 서양의 갈등은 가르침과 모순되는 행위에 대한 당사자 자신의 고뇌이자, 예수의 가르침을 온전히 실천하려는 자들과 그 가르침을 자신들의 필요에 맞게 달리 받아들인 자들 사이의 일종의 교리 해석 싸움이었다고 평가한다. 4만3,000원. /최성욱기자 secret@sedaily.com